미술관에 갔어요

희망 담은 '천국의 문'… 금빛 찬란히 빛나요

입력 : 2014.12.05 05:38 | 수정 : 2014.12.05 09:09

[95] 천국의 문 展

15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페스트 물리친 기념으로 만든 문
평생 세례당 문 조각한 기베르티, 27년간 배경까지 정성들여 제작
미켈란젤로, '천국의 문'이라 불러

어느새 12월이 되었어요. 이맘때면 연초에 계획한 일을 다 실천했는지 한 해를 돌아보게 됩니다. 더불어 이렇게 추운 날씨에 어렵고 힘들게 지내는 이웃이 없는지 주변을 살펴보기도 하지요. 올해는 서로에게 더욱 따스한 위로를 해주어야 해요. 세월호 침몰 사건 등 우리 국민에게 상처를 준 사건이 많았으니까요.

그래서일까요? 우리 마음에 위로를 주는 전시도 열리고 있습니다. 지난여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하여 우리 국민의 슬픔을 어루만져 주었는데, 당시 방한 기념으로 이탈리아 피렌체의 산 조반니 세례당에 있는 '천국의 문'(작품 1)이 함께 들어와 전시되고 있어요. 상처 입은 한국 사람들이 직접 그 문을 보고 희망과 치유의 빛을 느낄 수 있도록 말이에요.

 로렌초 기베르티, ‘천국의 문’ 작품 사진
작품 1 - 로렌초 기베르티, ‘천국의 문’, 피렌체 산 조반니 세례당 동문, 1452.

오래전 유럽에서 페스트(pest·흑사병)라는 전염병이 돌아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목숨을 잃은 적이 있어요. 페스트를 물리친 뒤 이탈리아 피렌체 장인 조합은 이를 기념하여 청동으로 된 문을 만들기로 합니다. 다시는 이런 참혹한 병에 사람들이 희생당하지 않도록 간절히 기원하면서 세워진 문이 바로 '천국의 문'이지요. 해가 뜨는 동쪽에 놓인 '천국의 문'은 동판으로 만들어졌는데, 양쪽 문을 각각 5칸씩 나누어 총 10개의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청동 위에 금을 입혀서 해가 뜰 때면 더욱 찬란하게 빛나요. 그래서 아침에 이 문을 보러 산 조반니 세례당을 찾는 관광객이 많다고 해요.

로렌초 기베르티, ‘천국의 문’의 세부 작품 사진
작품 2 - 로렌초 기베르티, ‘천국의 문’의 세부.

15세기 초 피렌체에서는 이 문을 책임지고 만들 최고의 예술가를 공개 모집했어요. 샘플로 보내온 수많은 작품 가운데 조각가 로렌초 기베르티 것이 돋보였지요. 작품 2에서 보듯, 인물의 선이 물 흐르듯 부드럽고 움직임이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조각임에도 그림처럼 섬세하게 배경을 묘사하였거든요. 르네상스 거장 미켈란젤로가 이 문을 보고 나서 그 아름다움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대요. "이 문을 감히 천국의 문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겠다"고 했다지요. 그래서 이 문은 '천국의 문'이라고 불리게 되었답니다.

'천국의 문'은 기베르티라는 한 예술가의 생애가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기도 해요. 기베르티는 1425년에서 1452년까지 약 27년 동안 이 문을 만드는 데 정성을 쏟았어요. 게다가 그 이전에 21년간 북쪽 문을 만든 것을 감안하면, 무려 48년 동안이나 세례당의 문을 제작한 셈이에요. 이 일에 평생을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래서 후대 사람들은 그의 업적을 기리며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기베르티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만든 문이 하늘을 향해 열리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라고요.

니콜로 바라비노, ‘선한 행위를 바탕으로 하는 자선’ 작품 사진
작품 3 - 니콜로 바라비노, ‘선한 행위를 바탕으로 하는 자선’, 19세기.

작품 3은 성모를 그린 그림이에요. 피렌체 대성당 입구에는 이 그림을 바탕으로 만든 모자이크화(작품 4)가 있답니다. 성모는 손에 두루마리를 펼쳐들었는데, 거기에는 '카리타스(caritas)'라고 쓰여 있어요. 카리타스는 그리스도교적 사랑을 이웃에게 베푼다는 뜻입니다. 성모의 발아래에는 피렌체의 부유한 가문을 나타내는 장식들이 보입니다. 그림의 오른쪽에 선 사람들은 각 가문을 대표해서 온 것 같아요. 그들 너머에는 금화가 든 항아리가 쓰러져 있군요. 이것은 부자들이 재산을 이웃과 나누기 위해 이곳에 왔다는 의미일 겁니다. 그림 왼쪽에는 성직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서 있고, 그 발치에는 책과 문서통이 놓여 있군요. 무언가 문자로 기록해 둔다는 암시일까요? 아마도 지금 부자에게서 자선을 베풀겠다는 약속을 받으려는 것 같습니다.

피렌체 대성당 정문 입구의 반원형 모자이크 사진
작품 4 - 피렌체 대성당 정문 입구의 반원형 모자이크.

성모 옆에는 12월마다 어린이 여러분이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이 서 있어요. 이 사람의 이름은 성 니콜라우스인데, 이 그림에서처럼 흰 털이 달린 빨간 옷을 입고 빨간 모자를 쓴 채 큰 자루를 들고 다녔대요. 어린이들을 특히 사랑하여 배고픈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고, 착한 일을 한 어린이에게 선물을 주기도 한 인자한 사람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누군가가 떠오르지요? 맞아요. '산타클로스' 전설이 바로 성 니콜라우스에서 유래하였다고 해요. 그러고 보니 산타클로스가 착한 어린이에게 선물을 주는 크리스마스가 멀지 않았네요. 날씨가 무척 춥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12월이 되길 바라요.

국립고궁박물관 (02)780-8635

이주은 교수(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