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세계사

히틀러 때문에 탄생한 '국민 자동차'

입력 : 2014.11.28 05:29 | 수정 : 2014.11.28 09:09

히틀러, 싸고 튼튼한 차 만들라고 지시… 국민차 '폴크스바겐' 제작되었어요
우표 사면 자동차 준다고 약속했지만 그 돈은 전부 전쟁 비용으로 쓰였죠
매일 타는 차에도 역사 숨어 있답니다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발명품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컴퓨터, TV, 냉장고, 휴대전화, 비행기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자동차'를 빼놓을 수 없을 거예요.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이 매일 자동차를 이용한답니다. 하지만 자동차는 환경오염 등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기도 해요. 그래서 최근엔 연료 소비가 적은 소형차나 환경오염을 일으키지 않는 그린카(green car)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답니다. 지난 8월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도 "가장 작은 한국차를 타고 싶다"며, 4박5일간 소형차를 타고 우리 국민을 만났지요. 작은 차에 탄 사람의 큰 인품이 돋보였습니다. 오늘은 우리 생활 속 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자동차에 얽힌 역사 이야기를 들려줄게요.
폴크스바겐을 생산하던 독일 공장 모습이에요.
폴크스바겐을 생산하던 독일 공장 모습이에요. 히틀러의 말을 믿고‘나도 차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 독일 국민의 꿈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허무하게 사라졌지요. /Corbis 토픽이미지
폴크스바겐은 자동차 공학자인 페르디난드 포르셰(사진 왼쪽)가 히틀러의 명령을 받아 만들었대요.
폴크스바겐은 자동차 공학자인 페르디난드 포르셰(사진 왼쪽)가 히틀러의 명령을 받아 만들었대요. /Getty Images 멀티비츠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과학자, 발명가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장난감처럼 태엽을 감아서 움직이는 자동차를 만들었어요. 움직일 때마다 태엽을 감아주는 건 쉽지 않았겠지요? 아주 멀리 가기도 어려웠을 테고요. 1600년경 네덜란드의 시몬 스테빈은 바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풍력 자동차를 발명했는데, 이 자동차는 바람의 반대 방향으로는 절대 달릴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어요. 최초의 자동차로 널리 인정받은 것은 프랑스의 니콜라 퀴뇨가 1769년에 만든 증기 자동차예요. 앞바퀴 하나와 뒷바퀴 2개로 시속 5㎞의 속도를 냈는데, 브레이크가 없어서 처음 운전하던 날 교통사고를 내고 말았대요. 그래서 사람을 죽이는 기계로 알려지면서 널리 활용되지 못했어요. 독일의 칼 벤츠와 고트리브 다임러가 가솔린 엔진을 장착한 자동차를 발명하기 전까지 자동차는 쇠로 만든 당나귀 취급을 받기 일쑤였지요. 두 사람이 만든 다임러-벤츠사(社)는 메르세데스 벤츠를 생산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자동차 회사가 되었답니다.

20세기 초, 미국의 포드사에서 자동차를 대량으로 생산하기 시작했지만, 가격이 비싸 누구나 가질 수는 없었어요. 게다가 이 무렵 전 세계에 경제 대공황이 광풍처럼 불어닥쳐 유럽 경제는 속수무책으로 스러져 갔습니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여 어마어마한 배상금을 물어줘야 했던 독일은 실업자가 증가하면서 소련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를 만들어 보겠다는 움직임까지 등장하여 사회가 무척 혼란스러웠어요. 그러다가 1933년 나치당(Nazis·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당)의 우두머리인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1889~1945)가 독일 총리 자리에 오르면서 큰 변화가 나타났어요. 히틀러는 '무너진 독일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하여 잃어버린 땅을 되찾고, 사회주의로부터 독일을 지키며, 경제공황의 위기를 극복해 아리아인의 영광을 되찾자'고 연설하였어요. 사람들은 히틀러의 연설에 열광하였고, 이를 위해 여러 가지 조치가 취해졌어요. 600만명이 넘는 실업자를 다 구제할 수는 없었지만, 무기 공장이나 군대, 도로 공사 등에 많은 사람을 투입하였지요. 독일의 자동차 전용 고속도로인 '아우토반'의 기초를 닦으며 산업을 일으켰어요.

히틀러는 경제가 살아났다는 증거를 보이기 위해 전에 없던 '국민차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자동차 공학자로 이름이 높았던 페르디난드 포르셰를 만나 누구나 부담 없는 가격으로 살 수 있는 튼튼하고 안전한 차를 만들라고 지시하였지요. 그런데 여기에 특별한 조건이 추가되었어요. 첫째 성인 2명과 어린아이 2~3명이 충분히 탈 수 있을 것, 둘째 시속 100㎞의 속도로 달릴 수 있을 것, 셋째 연비가 뛰어날 것, 마지막으로 가격이 1000마르크 이내일 것이었지요.

제2차 세계대전 후 승용차로 다시 태어난 폴크스바겐은 오늘날 가장 사랑받는 차 중 하나가 되었어요.
제2차 세계대전 후 승용차로 다시 태어난 폴크스바겐은 오늘날 가장 사랑받는 차 중 하나가 되었어요. /블룸버그
1938년 드디어 자동차가 완성되었어요. 한눈에 보아도 동글동글한 귀여운 외관에 시속 97㎞까지 안정적으로 달릴 수 있는 앙증맞은 작은 차였어요. 히틀러는 이 차에 'KdF (Kraft durch Freude)-wagen'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였습니다. '기쁨의 힘 자동차'라는 뜻이지요. 자동차를 만든 포르셰는 '국민차'라는 뜻의 독일어로 '폴크스바겐(Volkswagen)'이라 불렀고요.

히틀러는 독일 국민에게 저축운동을 통해 900마르크의 우표를 사면, 이 자동차를 한 대씩 받을 수 있다고 선언하였어요. 부의 상징이었던 자동차를 누구나 가질 수 있다는 말에 독일 국민 모두가 너 나 할 것 없이 우표를 사들였지요. 하지만 이 돈은 고스란히 제2차 세계대전의 전쟁 비용으로 들어가 버렸어요. 폴크스바겐은 전쟁터에서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었고요. 결국 국민차의 꿈은 지키지 못할 약속으로 허무하게 사라져 버렸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은 또다시 독일의 패배로 막을 내렸어요. 히틀러의 지시로 폴크스바겐을 설계한 포르셰는 전범으로 2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였지요. 하지만 전쟁 후 승용차로 재탄생한 폴크스바겐은 우수성을 인정받으며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됩니다. 그리고 다양한 디자인과 성능으로 진화하여 오늘날 가장 인기 있는 자동차 중 하나가 되었답니다. 우리가 매일 타는 자동차에도 여러 가지 역사가 얽혀 있다니, 참 신기하지요?



공미라 세계사 저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