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세계사

오렌지색, 왜 네덜란드 상징 되었을까?

입력 : 2014.11.14 05:44 | 수정 : 2014.11.14 08:49

[네덜란드의 독립]

에스파냐 지배받은 16세기 네덜란드
펠리페 2세의 신교도 탄압 심해지자 종교 자유·독립 외치는 폭동 일어나

독립한 북부 지역 다스린 오라녜家… 영어로는 'Orange'라고 쓴대요

조선 효종 4년(1653년), 파란 눈에 피부가 하얀 사람들이 제주도 바닷가에 표류했어요. 네덜란드에서 대만을 거쳐 일본의 나가사키로 가던 중 태풍을 만나 제주도로 오게 된 하멜(Hendrik Hamel·1630~1692) 일행이었습니다. 하멜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조선 정부는 그에게 화약이나 무기를 다루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보내주지 않았어요. 군사훈련과 온갖 노동에 시달리다가 14년 만에 일본으로 도망친 하멜은 네덜란드에 돌아가 조선에서의 생활을 담은 '하멜 표류기'라는 책을 써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당시로써는 베일에 싸였던 신비로운 동양의 나라 조선을 처음으로 서양에 소개한 책이었거든요.

축구 경기를 보며 오렌지색 옷을 입고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네덜란드 국민 모습이에요.
축구 경기를 보며 오렌지색 옷을 입고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네덜란드 국민 모습이에요. 오렌지색은 네덜란드의 상징 색인데, 왕위를 계승하는 오라녜(Oranje·영어로‘orange’) 가문의 이름에서 비롯되었어요. /Corbis 토픽이미지
하멜이 표류한 지 36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와 네덜란드는 활발히 교류하는 사이가 되었어요. 얼마 전 방한한 빌럼 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 부부는 경복궁에서 하멜이 효종을 만나는 장면을 재연한 행사에 참가했다고 해요. 여러분은 '네덜란드' 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나요? 튤립, 풍차, 운하, 나막신 같은 것들이 생각나겠지만, 네덜란드는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우리나라와 4강 신화를 함께 일군 축구 감독 히딩크의 나라이기도 해요. 네덜란드는 축구 강국으로 유명한데, 유난히 눈에 띄는 주황색 유니폼을 입은 네덜란드 선수와 국민을 '오렌지 군단'이라는 별명으로 부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오렌지가 자라기에는 너무 기온이 낮은 네덜란드에 왜 '오렌지 군단'이라는 별명을 붙였을까요?

16세기 네덜란드는 지금의 네덜란드뿐 아니라 벨기에·룩셈부르크·프랑스 북부까지 포함하는 지역이었어요. 항구를 따라 상업과 무역이 크게 발달하여 경제적 번영을 누렸으며, 유럽의 그 어느 지역보다 사상이 자유로운 곳이었지요. 바다를 막는 간척사업을 할 정도로 강인한 정신력도 가졌고요. 특히 북부 지역에는 근검절약을 강조하는 칼뱅의 신교 사상이 깊이 뿌리내렸어요. 문제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에스파냐의 펠리페 2세가 이곳을 지배한다는 것이었지요.

펠리페 2세는 네덜란드를 신교로부터 지키기 위해 강력한 가톨릭 정책을 펼쳤어요. 네덜란드를 가톨릭 국가로 만들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결혼까지 감행하고, 신교도를 탄압하는 종교재판을 열었어요. 상업을 하는 사람에게는 막대한 세금을 거두었고요. 신교도들이 종교의 자유를 외치며 저항하자, '거지떼'라고 부르며 탄압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아예 거지 밥그릇 등을 반란의 상징으로 삼아 폭동을 일으켰어요. 성당으로 몰려가 마리아 상을 부수고 유리창을 깨며 성경책을 불태웠지요.

이 폭동을 잠재우기 위해 펠리페 2세는 알바 공작을 총독으로 파견하였는데, 그는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잔인한 사람이었어요. 잘 훈련된 군사 1만명을 거느리고 잔혹하게 사람들을 짓밟았지요. 분쟁 재판소에서 반란군 재판을 열어 신교도 수천명을 학살하였다고 해요. 분쟁 재판소는 '피의 재판소'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했습니다. 반란군을 이끌던 오라녜공(公) 빌럼 1세는 재판을 피해 독일로 도망가야만 했어요. 가혹한 공포정치가 계속 이어지자, 종교를 넘어 '정치적 자유'가 더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에스파냐로부터 독립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에요. 독일에서 돌아온 오라녜공의 지휘 아래 많은 사람이 독립 투쟁을 벌였답니다.

네덜란드 독립을 이끈 오라녜공(公) 빌럼 1세.
네덜란드 독립을 이끈 오라녜공(公) 빌럼 1세. /위키피디아
1579년 북부의 7개 주는 위트레흐트 동맹을 맺고, 1581년 7월 22일 독립을 선언했어요. 오라녜공 빌럼 1세는 네덜란드의 초대 총독이 되었고요. 그는 가톨릭 신자에게 권총으로 암살당할 때까지 '네덜란드 자유의 수호자' 역할을 했답니다. 이후 에스파냐의 무적함대가 영국에 격퇴당해 세력이 약해지고, 네덜란드는 해상 강국으로 발전하였어요. 네덜란드는 이후 왕정(王政)으로 정치 형태를 바꾸었는데, 오라녜 가문에서 왕위를 계승하고 있습니다. '오라녜(Oranje)'를 영어로 '오렌지(Orange)'라고 쓰는데, 이 때문에 오렌지색이 네덜란드 왕가와 국가를 상징하게 된 것이에요. '오렌지 군단'이란 별명도 여기서 탄생했답니다.

네덜란드 남부의 사정은 좀 달랐어요. 가톨릭 세력이 강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남부는 독립한 북부와 달리 계속해서 에스파냐의 지배를 받았거든요.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서 오스트리아, 프랑스,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다가 19세기에 룩셈부르크와 벨기에가 되었지요.

얼마 전 OECD 회원국 가운데 '아동의 삶 만족도'가 가장 높은 나라로 네덜란드가 꼽혔다는 뉴스가 나왔어요. 복지제도가 잘 갖춰진 네덜란드는 돈이 많은 것을 큰 자랑거리로 여기지 않으며 불우한 이웃을 위해서 써야 한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다고 해요. 우리나라 경상도와 강원도를 합친 면적보다 작은 나라이지만, '평등'을 존중하는 마음만큼은 큰 나라입니다.



공미라 세계사 저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