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갔어요
산수화 속으로 들어간 우리의 일상
[94] 끝없는 내일 展
한결같은 산과 물 닮고 싶어 화폭에 자연 담아낸 조상들
색다른 산수화 그려낸 유근택 화가
그림에 컴퓨터 같은 생활용품 그려 현실에 얽매인 삶 나타내고자 했어요
가을이 깊어가면서 나무에 단풍이 들어 온 산이 울긋불긋해졌어요. 이맘때면 예쁜 단풍을 보려고 산에 오르는 사람도 많지요. 산에 오르는 건 무척 힘든 일인데, 어른들이 왜 일부러 등산을 하는지 잘 이해되지 않는 어린이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저절로 산을 좋아하게 된대요. 등산을 즐기는 어른들에게 산을 좋아하는 이유를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시는 분이 많아요. "사람이 하는 일은 세월이 흐르면 모두 변하지만, 산은 변하지 않고 늘 그대로란다."
그래서일까요? '인류의 스승'으로 불리는 중국 사상가 공자(孔子)도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한다(智者樂水 仁者樂山)"는 말을 남겼어요. 공자는 이어서 이런 말도 덧붙였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움직이고, 어진 자는 고요하다. 그러니 지혜로운 자는 즐겁게 살고, 어진 자는 오래 산다." 논어(論語)에 실린 이 말은 사람의 성격이나 행동을 물이나 산에 비유한 것이에요. 물을 닮은 사람은 흐르는 물처럼 막힘 없이 자유롭게 다니며 늘 새로운 것을 보니 즐겁게 산다는 이야기겠지요. 반면에 산을 닮은 사람은 항상 높은 곳에 이상을 두고 마음을 가다듬으며, 물질적 욕구에 흔들리지 않는 중후한 태도를 가졌기 때문에 오래오래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뜻일 거예요.
물은 흐르는 것 외에도 여러 속성이 있어요. 우선 표면이 맑습니다. 그래서 그 위에 다른 것의 모습을 비추어 볼 수 있지요. 또한 물은 넓고 깊어요. 그래서 다른 것들을 품어 안을 수도 있습니다. 맑고 깊은 물 같은 사람이란 자기 말만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다른 사람의 속마음까지 잘 헤아리는 사람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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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품1 - 유근택, ‘산수, 떠내려온’, 2014.
작품 1·2를 보세요. 이런 그림을 '산수화(山水畵)'라고 해요. 산과 물을 그린 그림이라는 뜻이지요. 화가들이 산과 물을 그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예요.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옛 화가들은 변하지 않는 영원한 자연의 세계를 마음속의 이상향으로 생각하면서 산수를 그리곤 했답니다. 오늘날에도 그런 전통을 이어 산수를 그리는 화가가 많아요. 그들은 산수화를 통해 산과 물의 아름다운 모습을 오래도록 마음속에 담아두고 싶다거나, 혹은 산과 물의 됨됨이를 닮고 싶은 마음을 표현합니다.
그런데 오늘 소개할 화가 유근택은 조금 색다른 산수화를 그려요. 어느 날 그는 장엄한 자연 속에서 크게 심호흡하며 몸과 마음을 가다듬을 요량으로 여행을 떠났다고 해요. 하지만 하필 그 무렵에 댐에서 물을 빼는 바람에 호수의 물이 줄어 주변 풍경이 매우 실망스럽게 바뀌어 있었지요. 그가 보기에 더욱 이상하였던 것은 그 풍경 아래에서 여흥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림 속에서라면 전혀 어울리지 않을 낯선 장면이었지요. 하지만 유근택 화가는 그런 모습까지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오히려 옛 그림 속의 산수를 보면서, 저곳에서는 시간이 흐르지 않으며 사람이 실제로 발 디딜 공간조차 없는 것처럼 느꼈대요. 그는 신선(神仙)이 살 것 같은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산수가 아닌, 우리 일상 속의 산수를 화폭에 담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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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품2 - 유근택, ‘산수’, 2014.
작품 1은 낮, 작품 2는 밤의 모습을 그렸어요. 언뜻 보면 마치 산이 거꾸로 매달린 듯 물 위에 드리워서 어느 쪽이 진짜 산인지 헷갈릴 정도예요. 두 그림의 앞쪽에 한 남자가 서서 경치를 구경하는 모습이 눈에 띄네요. 저 멀리 사공도 없는 나룻배가 한 척 떠내려 오는데, 그 안에는 옷장, 변기, 컴퓨터 등이 가득 실렸어요. 이 물건들은 평소 남자가 사용하던 것이지요. 어딜 가더라도 평소 생활이나 습관들이 뒤따라온다는 뜻 같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란 쉽지 않은 모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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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품3 - 유근택, ‘산수, 당신의 끝없는 내일’, 2014.
OCI미술관 (02)734-04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