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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의학 발달하지 않았던 구한 말… 한국 최초의 의사 만들어 낸 선교사

입력 : 2014.11.06 05:28 | 수정 : 2014.11.06 09:01

[39] 올리버 에비슨

19세기 말 조선에서는 해외 선교사들이 들어와 의료 활동을 펼쳤습니다. 영국에서 태어나 캐나다에서 자란 올리버 에비슨(1860~1956)도 그중 한 명이었지요. 하지만 에비슨은 보통의 의료 선교사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조선인은 조선인 의사가 치료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의학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거든요. 그의 말을 들은 다른 선교사들은 조선에서 의사를 키워내는 일은 불가능하다며 반대하였지요. 당시 조선은 근대화가 늦어져 의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수학이나 과학 같은 과목을 가르칠 수 있는 학교조차 없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그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불과 10여년 만에 에비슨은 우리나라 최초의 의사들을 배출합니다. 에비슨이 무슨 마법이라도 부린 것일까요?

에비슨은 1893년 제중원의 4대 원장으로 조선 땅을 밟았습니다. 당시 의사가 없어 문을 닫다시피 했던 제중원을 재정비하여 수많은 환자를 치료하였으며, 고종의 주치의로도 활동하였지요. 1895년 청·일전쟁 중에 콜레라가 크게 번지자 서울 지역 방역 사업의 총책임자로 임명되기도 하였습니다. 에비슨이 조선인 의사를 키워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이 무렵이었어요. 방역 사업은 성공적이었지만, 몇 명 안 되는 서양인 선교사로는 많은 환자를 치료하는 데 한계가 있었거든요. 에비슨은 조선인 의사가 전국에서 개업하여 활동해야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였지요.

올리버 에비슨이 한국인 조수 박서양의 도움을 받아 수술하는 모습 사진
올리버 에비슨이 한국인 조수 박서양의 도움을 받아 수술하는 모습이에요. 에비슨은 조선인 의사를 양성하여 우리나라에 서양 의술이 보급되는 데 큰 역할을 하였지요. /문화재청

1899년 에비슨은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제중원의학교(훗날 '세브란스의학교'로 개명)에서 정규 의학교육을 실시합니다. 하지만 곧 벽에 부딪히고 말아요. 영어로 된 교과서로는 배우는 속도가 너무 느렸기 때문이에요. 이때 그는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어요. 방역 사업을 할 때 많은 사람이 한글로 된 홍보지를 보고 쉽고 빠르게 위생에 대해 배우는 모습에서 한글이 가진 힘을 똑똑히 보았거든요. 많은 노력 끝에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한글 교과서가 차례로 만들어졌습니다. 다른 선교사들이 수십 년은 족히 걸릴 것이라던 의사 양성을 앞당긴 저력은 바로 한글이었어요.

1908년 제중원의학교 제1회 졸업식이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의사 7명이 의사면허를 받았지요. 그들은 조선인의 건강을 돌보고 후학을 양성하는 일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았으며, 모두 독립운동에 몸을 던졌어요. 찬란한 문화유산을 가진 한국인에 대한 믿음과 모든 문명을 받아들이는 가장 훌륭한 도구인 한글의 힘을 이해한 에비슨의 혜안이 낳은 기적이었습니다.

그 후 에비슨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간호사를 배출하는 데에도 기여하였으며 세브란스의학교와 연희전문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며, 한국인 교수를 여럿 채용했어요. 그리고 1934년 주위 반대를 뿌리치고 세브란스의학교 교장 자리를 외국인 선교사가 아니라 한국인 오긍선에게 물려주고 은퇴하였지요. 마지막까지 한국인이 가진 힘을 믿은 것이에요. 에비슨이 일군 세브란스의과대학과 연희전문학교는 1957년 연세대학교로 합쳐져 오늘날까지 그 역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1분 상식] '제중원'은 어떤 곳인가요?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나 명성황후의 조카인 민영익이 크게 다쳐 생명이 위태로울 때 미국인 의사 앨런의 치료로 목숨을 건지게 되었습니다. 이 일로 왕실의 신임을 얻은 앨런은 고종에게 병원을 세울 것을 제안하였지요. 이에 따라 1885년 4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왕립 무료 병원인 ‘광혜원(廣惠院)’이 탄생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중원(濟衆院)’으로 이름을 바꿉니다. 제중원은 올리버 에비슨이 원장으로 있는 동안 운영권이 미국 북장로교 선교회로 바뀌면서 사립 병원이 되었어요. 그리고 1904년 미국 사업가인 세브란스의 후원을 받아 현대식 종합병원인 세브란스병원으로 재탄생하였습니다.

고진숙 어린이 책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