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뚜기 떼의 습격
하늘 뒤덮은 재앙, 메뚜기 떼가 나타났다
입력 : 2014.11.04 05:30
| 수정 : 2014.11.04 06:26
한 무리 최대 100억마리인 메뚜기 떼… 하루에 몸 두배 달하는 농작물 먹어
중국, 굶주린 사람들 도적떼로 변해… 송나라 땐 메뚜기 쫓는 신도 받들어
군대 출동시켜 습격 막은 세종대왕, 예방법 기록한 조선 실학자도 있어
1938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펄 벅의 소설 '대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남쪽 하늘에 검은 구름처럼 지평선 위에 걸려 있더니, 이윽고 부채꼴로 퍼지면서 하늘을 뒤덮었다. 그들이 내려앉은 곳은 졸지에 잎사귀 하나 볼 수 없는 황무지로 변했다.'
중국 농촌을 습격한 메뚜기 떼 모습을 묘사한 내용이에요. 상상만 해도 정말 끔찍하지요? 그런데 이런 메뚜기 떼 습격은 소설 속에서나 볼 수 있는 희귀한 사건이 아니랍니다. 2011년 호주에서는 몸길이가 평균 8㎝나 되는 괴물 메뚜기 떼가 몰려다니며 농장과 목초지를 엉망으로 만들었거든요. 지난 8월에도 아프리카 남부 마다가스카르 섬에 메뚜기 떼가 출몰하여 큰 피해를 줬고요. 마다가스카르 섬에는 벌써 3년째 메뚜기 떼 습격이 계속되고 있어요. 다른 아프리카 지역도 메뚜기 떼로 큰 피해를 보고 있는데, 아프리카의 메뚜기 떼는 하루 평균 30~40㎞를 이동하며, 한 무리의 숫자가 많을 때는 100억 마리도 넘는다고 해요. 이들은 하루에 자기 몸무게의 두 배에 달하는 농작물을 먹어치우기 때문에 메뚜기 떼가 지나간 자리에는 풀 한 포기 남지 않습니다.
이러한 메뚜기 떼 습격 기록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어요. 구약성경의 출애굽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을 풀어달라는 모세의 부탁을 이집트 왕이 들어주지 않자 하느님이 이집트에 10가지 재앙을 내려요. 그중 여덟째 재앙이 바로 메뚜기 떼의 습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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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정서용
당나라 태종 때에도 메뚜기 떼가 수도 장안을 뒤덮은 적이 있었지요. 이때 태종은 들판에 나가 메뚜기 떼를 향해 "곡식 대신 차라리 내 심장을 갉아먹으라"고 외쳤대요. 그리고 메뚜기를 잡아 산 채로 삼켰다고 해요. 얼마나 큰 피해를 보았는지, 중국에는 메뚜기 떼를 쫓아내는 신(神)도 있답니다. 송나라 때 여진족을 물리쳤던 용맹한 장수가 죽은 후에 신으로 받들어졌는데, 중국 사람들은 그에게 기도하면 메뚜기 떼의 습격을 피할 수 있다고 믿었어요.
우리나라에도 오래전부터 메뚜기 떼의 습격이 있었습니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가 8번, 백제가 5번, 신라가 19번에 걸쳐 메뚜기 떼 습격으로 큰 피해를 보았다는 기록이 나와요. 571년 고구려 평원왕은 메뚜기 떼가 나타나자 건설 중이던 궁궐의 공사를 중지시켰고, 720년 신라 성덕왕은 메뚜기 떼로 인해 백성이 큰 고통을 당하자 지금의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지위가 가장 높은 관리를 물러나게 하였지요. 그런가 하면 고려 현종은 메뚜기 떼가 나타나자 먹는 음식을 줄이고 말과 행동을 조심하였으며, 고려 고종은 종교의 힘을 빌려 메뚜기 떼 습격을 막으려 했어요. 조선 세종은 메뚜기 떼를 잡기 위해 군대를 출동시키기도 했답니다.
한편 옛날 왕들은 자신에게 덕(德)이 없기 때문에 메뚜기 떼가 나타난다고 생각했어요. 조선 효종은 메뚜기 떼 피해가 심해지자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으니 자신을 꾸짖어달라는 글을 신하들에게 보냈을 정도예요. 중종 때는 메뚜기 떼가 나타나자 신하들이 임금이 반성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였고요.
메뚜기 떼의 습격으로 백성의 삶이 어려워지자 조선 후기 실학자인 서유구는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라는 책에 메뚜기 떼 발생을 예방하는 방법을 기록하였어요. 농작물을 심을 때 메뚜기가 먹지 않는 작물을 함께 심고, 겨울철에 메뚜기 알을 찾아 없애며, 메뚜기 떼가 논밭에 오지 못하도록 긴 장대에 울긋불긋한 천을 매다는 등의 방법이었지요.
'메뚜기도 여름이 한철'이라는 옛말이 있어요. 메뚜기는 여름철에 들판에서 자기 세상을 만난 듯이 번성하지만, 한철이 지나면 사라져 버린다는 말이에요.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일이 잘되어 우쭐대고 의기양양할 때도 있지만, 언젠가는 메뚜기와 같은 운명을 맞을 수 있지요. 그래서 우리는 늘 겸손한 태도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