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금동신발, 백제 왕의 강한 힘 보여준 선물

입력 : 2014.11.03 05:29 | 수정 : 2014.11.03 09:06

마한을 구성한 소국 중 하나였던 백제… 점차 세력 키워 마한의 여러 나라 지배
나라에 충성하던 지방 우두머리 죽자 귀한 금동신발을 장례용품으로 보내 국가 초기에 왕 권위 알리고자 했어요

얼마 전 전라남도 나주에 있는 정촌 고분에서 백제의 금동신발이 발굴되었어요. 지금으로부터 1500여년 전 백제 사람들이 만든 것으로 짐작되는 이 금동신발은 용머리 장식에 연꽃무늬와 도깨비 얼굴까지 새겨졌지요. 금동신발이란 금으로 겉을 입히거나 장식한, 구리로 만든 신발이에요. 그동안에는 무령왕릉이나 황남대총 등 주로 백제와 신라 왕들의 무덤에서 출토되었어요. 그런데 백제나 신라의 왕들이 살았거나 무덤이 있는 곳도 아닌 전남 나주 지방에서 왜 백제의 금동신발이 발견되었을까요? 그 이유를 알아보러 1500여년 전 백제로 역사 여행을 떠나 봐요.

◇백제 왕실이 하사한 특별한 물건

400년대 후반, 한반도 남쪽의 영산강 유역에 살던 어느 세력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백제 왕실에 전해졌어요.

"폐하, 옛 마한 지역 중 한 곳을 다스리며 우리 백제 왕실에 충성해온 인물이 숨졌다고 하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로다. 장례를 치를 때 쓸 수 있는 특별한 물건을 내리도록 하라."

[뉴스 속의 한국사] 금동신발, 백제 왕의 강한 힘 보여준 선물
/그림=이창우
"어떤 것이 좋겠사옵니까? 옷이나 관을 내릴까요?"

"그보다 더 특별한 물건이 좋겠구나. 우리 백제 왕실의 권위도 보여주고, 받는 이에게도 매우 뜻깊은 물건이 될 수 있게 말이다."

"그렇다면 금동신발을 내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옳거니! 그게 좋겠구나. 금동신발을 보내면 백제 사람의 우수한 금속기술을 알릴 수 있고, 우리 왕실의 정성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백제 왕실은 옛 마한 지역 세력가의 죽음을 애도하며 금동신발을 하사하였어요. 이 금동신발은 세력가의 무덤에 함께 묻혔지요.

◇삼국시대 이전 마한의 일부였던 백제

400년대 후반은 백제가 한강이 있는 한성(漢城·지금의 서울) 지역에 도읍을 두고 세력을 넓히던 시기예요. 고구려·신라와 함께 고대 삼국을 이룬 백제는 제8대 고이왕 때인 260년경 국가 체제를 정비하고 왕권을 강화하였지요. 이후 제13대 근초고왕 때인 370년 무렵에 영토를 크게 넓혔으며, 제15대 침류왕 때인 384년에는 불교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다가 475년에 백제는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밀려 웅진(熊津·지금의 충남 공주)으로 도읍을 옮겼어요.

마한(馬韓)은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이 등장하기 전에 한반도 중남부 지역에서 세력을 이루었던 삼한(三韓) 중 하나였어요. 주로 지금의 충청도와 전라도, 경기도 일부 지역에 위치한 54개의 작은 나라로 구성되었지요. 백제도 처음에는 마한의 여러 나라 가운데 하나였답니다.

◇백제의 지배 받으며 점차 사라진 마한

[뉴스 속의 한국사] 금동신발, 백제 왕의 강한 힘 보여준 선물
/그림=이창우
당시 마한을 대표한 나라는 오늘날 충북 청주와 충남 천안 일대에 자리했던 '목지국(目支國)'이었어요. 목지국의 영향 아래 있던 백제는 점점 세력을 키워 나중에는 목지국과 마한의 여러 나라를 자기 세력 밑에 두었지요. 마한 지역의 세력가들도 백제의 백성이 되거나 백제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요.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백제가 온조왕 때인 서기 9년에 마한을 멸망시켰다는 기록이 나오지만, 당시 백제는 나라가 세워진 지 얼마 되지 않아 국가로서의 모습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어요.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백제가 고대 국가의 모습을 갖추고 세력을 넓히던 제9대 책계왕 때부터 제13대 근초고왕 시기인 300~370년 무렵에 마한의 여러 나라가 백제의 지배를 받으며 역사에서 사라져갔다고 짐작해요. 전남 지역에 자리했던 마한의 일부 세력은 그보다 더 뒤인 400~500년대까지 남았던 것으로 짐작하기도 하고요.

그중 영산강 유역에 살던 어느 옛 마한 세력가의 무덤에서 백제 금동신발이 발견된 것이에요. 그 무덤이 전라남도 나주의 정촌 고분이고요. 그 지역이 백제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백제 왕실에서 귀한 물건을 장례용품으로 쓰라고 보내준 것으로 추측됩니다.

◇지방 세력에 왕실 힘 과시한 백제

백제의 금동신발은 공주나 부여의 백제 왕릉 또는 서산·익산·나주·고창 등의 큰 무덤에서 주로 발견되었어요. 이렇게 백제의 도읍이 아닌 지방의 큰 무덤에서 발견된 금동신발은 백제가 세력을 키워 남부 지방으로 영토를 넓히고 나서 각 지방을 다스리던 세력가에게 내린 것으로 짐작해요. 백제가 왕권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지방의 우두머리나 세력가를 받아들이면서 왕의 힘을 과시하고 믿음을 주고자 귀한 선물을 하사한 것이지요.

금동신발은 큰 행사 때 의식용으로 사람이 신었을 수도 있지만, 신발의 크기나 형태 등을 볼 때 주로 무덤 안에 시체를 안치할 때 함께 넣어 매장하는 물품이었다고 추측해요. 죽은 이가 다른 세상으로 갈 때 사용하라는 뜻으로 말이에요. 이번 나주 정촌 고분에서 발견된 금동신발은 백제는 물론 마한의 역사에 대해 공부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어요.


[함께 생각해봐요]

백제 제13대 근초고왕은 346년에 즉위하여 30년간 백제의 전성기를 이끈 왕이에요. 영토를 확장하고 도읍을 넓혔으며, 역사서를 편찬하고 해상무역을 발전시키는 등 다양한 업적을 남겼지요. 근초고왕 재위 당시 백제의 모습을 더 탐구하여 보세요.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
감수=전덕재 교수(단국대 사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