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세계사

여자도 학교에 가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입력 : 2014.10.31 05:10 | 수정 : 2014.10.31 09:08

[여성 교육의 역사]

최연소 노벨평화상 수상자 '말랄라', 여자 어린이의 배울 권리 주장했어요
과거엔 여성 교육·사회진출 허용 안 돼… 제1차 세계대전 후 지위 향상되었어요
용기 있게 행동하면 권리 찾을 수 있어

지난 10일 파키스탄의 여성 인권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Malala Yousafzai)가 인도의 카일라시 사티아르티(Kailash Satyarthi)와 함께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공동 지명되었어요. 올해 열일곱 살인 그녀는 노벨상이 생긴 이래 가장 어린 수상자예요. 말랄라는 '여자 어린이도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는 운동을 전개하였답니다. 여성이 교육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우리로서는 이런 운동을 왜 벌이는지 이해하기 어렵지요.

말랄라가 태어나고 자란 파키스탄의 스와트밸리는 2007년 이슬람 근본주의 운동 조직인 탈레반이 점령한 지역이에요. 이곳에서 탈레반은 서양 문화를 없애고, 이슬람 고유의 문화를 지킨다는 이유로 여성을 억압하는 조치를 취했어요. 여성이 교육받을 권리를 없애고, 여성들끼리는 외출도 하지 못하게 하였지요. 만약 딸을 학교에 보내는 사람이 있다면 강하게 처벌하였고요.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탈레반의 정책에 저항하며, ‘여자 어린이도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였어요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탈레반의 정책에 저항하며, ‘여자 어린이도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였어요. /AP 뉴시스

말랄라는 11세 때 이러한 탈레반의 정책에 저항하여 영국 BBC방송 블로그를 통해 여자 어린이도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공개적으로 연설하고, '가난한 소녀 학교 보내기'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15세 때 학교에서 돌아오던 중 탈레반이 쏜 총에 머리를 맞아 목숨까지 잃을 뻔하였지요. 말랄라는 몇 차례 뇌수술 끝에 기적처럼 살아나 여성 교육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여성이 교육을 받지 못하고 사회에 진출할 수 없다면, 인간으로서 기본 권리까지 빼앗긴다는 것을 어린 소녀가 온몸으로 보여준 것이에요.

사실 과거에는 여성 교육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어느 시대에나 교육은 존재하였지만, 여성은 그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지요. 인류 문명이 발생한 메소포타미아에서 처음으로 학교교육이 등장하였는데, 여자가 교육받았다는 기록은 없어요. 고대 그리스의 스파르타에서는 여자도 교육을 받았으나 그것은 전사의 후예를 길러내기 위한 교육일 뿐이었습니다. 동서양의 역사를 살펴보면, 대부분 여성은 자녀 양육과 집안일에 필요한 기술을 배우는 게 전부였어요. 학교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좋은 일자리도 얻지 못했고요. 남자와 결혼해야만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정치에도 참여할 수 없었고, 남편의 지위에 따라 여성의 지위가 결정되었어요.

제1차 세계대전 때 공장에서 탄피를 만드는 여성들의 모습이에요. 당시 여성들은 전쟁에 동원된 남성들을 대신하여 군수물자를 만들고 나라 경제를 이끌었지요
제1차 세계대전 때 공장에서 탄피를 만드는 여성들의 모습이에요. 당시 여성들은 전쟁에 동원된 남성들을 대신하여 군수물자를 만들고 나라 경제를 이끌었지요. /Corbis/토픽이미지

근대에 들어서는 교육받는 여성도 생겨났지만, 남성과 똑같이 정치에 참여할 수는 없었어요. 프랑스혁명(1789)과 미국 독립혁명(1776) 중 발표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독립선언문' 어디에도 여성 인권에 대한 내용은 없었습니다.

'전쟁'과 '인권'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지만, 정말 이상하게도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인권을 갖게 된 데는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의 힘이 컸어요. 4년간 계속된 이 전쟁은 유럽 전체 인구의 2%가 참전하는 총력전(總力戰·국가가 가진 모든 분야의 힘을 기울여서 수행하는 전쟁)으로 진행되었거든요. 무기를 들고 싸울 만한 성인 남자는 대부분 전쟁터로 나갔다는 뜻이지요. 남자들이 떠난 공장의 빈자리는 여자와 어린아이, 노인으로 채워졌어요. 이런 상황에서 여성들은 전쟁에 필요한 물품을 만들고 경제를 이끌어가야 했지요. 전쟁 후 새롭게 만들어진 민주주의 국가에서 여성의 지위는 예전보다 향상되었고,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도 갖게 되었어요.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여성들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라가 독립하면서 기본권을 누리게 되었고요.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신사임당이나 허난설헌 같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여성은 교육을 받지 못했어요.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이전에는 거의 문맹이나 다름없었고요. 게다가 유교의 영향으로 여자가 학문을 갈고닦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했지요.

우리나라 최초의 여학교인 이화학당 사진
1886년 선교사인 스크랜턴 부인이 우리나라 최초의 여학교인 이화학당을 세웠어요.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역사관
1886년 선교사 스크랜턴 부인이 우리나라 최초의 여학교인 이화학당을 열었을 때도 학생 모집이 무척 어려웠다고 해요. 하지만 학생 1명으로 시작한 이 학교는 점차 학생이 증가하였고, 다른 여학교도 생겨났지요. 이렇게 여학생이 늘자, 학교에서는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라는데, 남자 선생님과 여학생이 한 교실에서 마주 보며 수업해도 되느냐'며 걱정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웃지 못할 지침이 생겨났답니다. '남자 선생님이 교실 앞에 와서 헛기침하면, 여학생들은 일제히 고개를 운동장 쪽 창밖으로 돌린다. 선생님이 칠판을 향한 채 헛기침을 하면 학생들은 고개를 돌려 앞을 본다. 선생님은 칠판만 보며 수업하고, 학생들은 선생님의 뒤통수를 보며 수업을 듣는다.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이 다시 기침을 하고, 학생들이 운동장을 바라보는 사이 문을 열고 나간다.' 어때요? 선생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하는 정말 신기한 수업이지요?

광복 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는 처음부터 여성이 교육받을 권리와 정치에 참여할 권리를 인정했어요. 교육받은 여성이 늘면서 여성의 지위도 함께 올라가고, 남자만 할 수 있던 일에 여성이 도전하는 일도 많아졌답니다.

여성이 교육받고 정치에 참여하며 남성과 동등한 인권을 누리게 된 역사는 그리 길지 않아요. 아직도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에서는 여성이 교육의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종교적 이유나 가난 때문에 교육받지 못하는 어린이도 많고요. 어린 소녀 말랄라처럼 우리가 꿈꾸고 행동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어요.

공미라 세계사 저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