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여행

대굴대굴 구르며 지나는 '대굴령'… 신사임당이 울고 넘던 고개랍니다

입력 : 2014.10.29 05:54 | 수정 : 2014.10.29 09:08

[104] 대관령 옛길

옛날 어린이들도 여러분처럼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여행했을까요? 옛날에는 교통수단이 잘 발달하지 않아서 지금처럼 이곳저곳을 다니기는 어려웠답니다. 아주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길을 떠났지요. 오늘은 조선시대의 대학자인 율곡 이이가 어머니 신사임당 손을 잡고 넘었다는 대관령 옛길을 함께 가봐요.

율곡 이이는 어머니 신사임당의 친정인 강원도 강릉의 오죽헌에서 태어났어요. 여섯 살까지 그곳에서 자라다가 경기도 파주의 본가에 와서 살았지요. 이이가 어머니와 함께 본가로 올 때 대관령 옛길을 넘어야 했답니다. 대관령은 진부령·미시령·한계령 등과 함께 태백산맥을 넘는 고개예요. 지금은 잘 정비된 도로와 터널이 있어서 쉽게 대관령을 지날 수 있지만, 옛날 사람들은 굽이굽이 산길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지나야 했어요. 이곳 사람들은 대관령을 '대굴령'이라고 불렀다고 해요. 고개가 너무 험해서 오르내릴 때 대굴대굴 구르는 고개라는 뜻이었지요. 대관령이라는 이름은 대굴령을 한자로 적은 것이라고 해요. 또 대관령 옛길에는 '아흔아홉 굽이'라는 이름도 있어요. 옛날에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들이 곶감 100개를 챙겨 떠나 힘들 때마다 곶감 한 개씩을 빼먹었는데, 대관령을 넘고 보니 곶감이 딱 한 개 남았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랍니다. 이름에서도 험난한 산길이 연상되지요?

옛날 사람들은 대관령 옛길을 걸어 태백산맥을 넘었어요. 험하지만, 아름드리 소나무가 가득한 아름다운 산길이지요. /허재성 기자
옛날 사람들은 대관령 옛길을 걸어 태백산맥을 넘었어요. 험하지만, 아름드리 소나무가 가득한 아름다운 산길이지요. /허재성 기자

옛날 사람들을 힘들게 했던 이 오래된 길이 지금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트레킹 코스가 되었어요. 옛 대관령휴게소에서 내려가는 코스와 대관령박물관이나 가마골에서 올라가는 코스가 있지요. 옛 대관령휴게소 자리에는 '대관령 옛길(반정)'이라고 쓰인 커다란 비석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멀리 강릉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여요. 그 끄트머리에는 동해가 펼쳐지고요. 이곳은 '울고 넘는 고개'라는 별명도 있는데, 고향을 떠나던 신사임당도 여기서 눈물을 훔쳤다고 해요. 대관령 옛길에는 '대관령을 넘으며 친정을 바라본다'는 신사임당의 시(詩)가 적힌 시비가 있답니다. 어머니를 두고 떠나는 딸의 마음을 표현한 시이지요.

늙으신 어머님을 고향에 두고 / 외로이 서울 길로 가는 이 마음 / 돌아보니 북촌은 아득도 한데 / 흰 구름만 저문 산을 날아 내리네

대관령 옛길의 깊은 산 속에는 아름드리나무가 가득해요. 봄부터 가을까지는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고, 궁궐을 지을 때 사용한다는 금강소나무 숲이 빽빽하게 펼쳐진답니다. 한겨울 눈이 내릴 때 풍경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요. 이 길에 있는 국사성황사는 강릉 단오제가 열릴 때 산신제와 국사성황제가 열리는 곳이기도 해요. 대관령 옛길은 산길인 만큼 서너 명이 겨우 다닐 정도로 좁아요. 옛날에는 길이 더 좁아서 한 사람이 겨우 다닐 정도였는데, 조선시대 중종 때 강원도관찰사로 부임한 고형산이라는 사람이 길을 넓혔다고 해요.

올가을엔 대관령 옛길을 걸으며 엄마 아빠와 함께 더없이 멋진 추억을 만들어 보세요. 내친김에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의 생가인 강릉 오죽헌에 들러보면 더욱 좋겠지요? 

오죽헌 사진

[1분 상식] '오죽헌(烏竹軒)'은 어떤 곳인가요?

강원도 강릉시 죽헌동에 있는 건축물로, 조선 전기에 지어졌어요. 이 집에서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태어났지요. 1963년 우리나라 보물 제16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이가 태어난 방인 ‘몽룡실’〈사진〉에 이이와 신사임당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어요. 오죽헌이라는 이름은 뒤뜰에 색이 검은 대나무가 자란다고 하여 붙여졌지요. 또 오죽헌에는 1400년경 심어진 ‘율곡매’라는 이름의 매실나무가 자라는데,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매우 아끼며 직접 가꾼 나무라고 해요. 2007년 천연기념물로도 지정되었어요.

임후남 |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