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 탐방

1400개 분수로 꾸민 화려한 정원… 루이 14세의 절대 권력 드러내

입력 : 2014.10.22 05:34 | 수정 : 2014.10.22 09:02

[2]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지난 9일 프랑스 작가 파트리크 모디아노(Patrick Modiano)가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노벨상은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상인 만큼 이번 모디아노의 수상을 많은 프랑스인이 기뻐하였어요. 프랑스는 '문화·예술의 나라'라는 별명답게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나라(총 15명)이기도 하답니다. 특히 수도인 파리(Paris)는 오래전부터 유럽은 물론 전 세계 예술·문화·관광·패션의 중심이 되었지요. 17세기 파리 남서쪽 외곽에 지어진 베르사유 궁전은 이러한 프랑스 문화의 정수(精髓)가 담긴 곳이에요. 유럽에서 가장 웅장하고 화려한 건축물로 손꼽히며, 197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어요.

16세기경 프랑스에서는 유럽의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절대왕정 시대가 열립니다. 자신을 '태양왕'이라고 칭한 루이 14세(1638~1715)는 프랑스 절대왕정을 대표하는 인물이지요. "짐은 곧 국가다"라는 말을 남긴 그는 유럽에서 가장 긴 기간(72년) 재위하며, 상공업을 장려하고 강력한 군대를 키워 프랑스를 유럽 최강의 국가로 이끌었습니다.

베르사유 궁전과 정원 사진
베르사유 궁전은 루이 14세의 절대적 권력을 상징해요. 당시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과 정원을 본 다른 나라 왕과 왕족들은 크게 감탄하며 궁전의 모범으로 삼았대요. /토픽이미지

그런데 당시 재무장관이던 니콜라 푸케의 초대를 받아 '보 르 비콩트(Vaux-le-Vicomte)' 성을 방문한 루이 14세는 무척 자존심이 상했어요. 푸케의 성이 왕궁보다 더 크고 화려하였기 때문이에요. 얼마 후 루이 14세는 자금 횡령 등의 죄목으로 푸케를 파면하고 감옥에 가두었어요. 그러고는 1661년 보 르 비콩트 성의 건축가와 정원 조경사를 고용하여 파리 남서쪽의 베르사유에 그보다 훨씬 더 크고 화려한 성을 지으라고 명령하지요. 오랜 공사 끝에 1690년경 전체 길이가 680m에 이르는 대궁전이 완공되었습니다.

1400개의 분수가 설치된 정원은 그 규모가 얼마나 컸던지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 보는 법'이라는 안내 책자가 나올 정도였어요. 17개의 대형 거울과 유리창으로 꾸며진 '거울의 방'은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며, '전쟁의 방'에는 말을 타고 적을 물리치는 루이 14세의 모습이 담긴 부조가 있지요. 이처럼 궁전 내부는 루이 14세의 절대적 권력을 보여주는 각종 장식품으로 꾸며졌어요. 베르사유 시가지도 궁전을 중심으로 개조되었고요. 루이 14세는 이 궁전을 통해 자신의 절대적 권위와 부(富)를 유럽 전체에 과시하고자 했어요. 그 바람대로 베르사유 궁전과 정원은 유럽 여러 나라가 궁전의 모범으로 삼을 만큼 선망하는 건축물이 되었답니다.

프랑스 지도

하지만 이 화려한 궁전은 무거운 세금과 배고픔에 시달리던 프랑스 백성에게는 분노의 대상이 되었어요. 결국 1789년 프랑스혁명이 일어나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는 베르사유 궁전에서 끌려나와 단두대에서 처참한 최후를 맞았지요. 100여년간 절대왕정의 상징이었던 베르사유 궁전은 국민의 고통을 외면한 권력의 끝을 생생하게 보여주며 인류 역사에 큰 교훈을 남겼습니다.

[1분 상식] '절대왕정'이란 무엇인가요?

왕이 국가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아무런 제약이나 구속 없이 마음대로 그 권력을 운용하는 정치체제를 말해요. 16~18세기 중세 봉건사회에서 근대 시민사회로 넘어가던 과도기에 유럽 여러 나라에서 나타난 정치체제이지요. 이 시기 왕들은 ‘왕권은 신이 내린 것이므로, 백성은 이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한다’는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을 내세웠어요. 왕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자 관료제를 시행하고, 국왕의 직속 부대인 상비군을 두었어요. 관료제와 상비군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돈이 필요하였는데, 이를 위해 시민계급의 상공업 활동을 장려하는 경제정책을 추진했습니다.

김양희 | 대교 교육개발센터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