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 문화의 시작
조선시대에는 옷 입고 목욕했답니다
입력 : 2014.10.21 05:47
| 수정 : 2014.10.21 09:23
로마의 대형 공중탕은 사교 장소, 마사지·운동·수영·독서까지 가능
삼국시대, 불교 들어오며 목욕 유행
조선 때 유교로 인해 공중탕 소멸, 옷 벗는 것을 천하게 여기게 됐어요
목욕하면 더러운 몸이 깨끗해질 뿐 아니라 마음마저 상쾌해져요. 그래서 아주 먼 옛날부터 사람들은 목욕을 즐겼답니다. 목욕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남겼어요.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시체나 미친 사람을 보면 몸이 불결해진다고 여겨 몸을 씻었다고 해요. 또한 고대 이집트 벽화에서도 목욕하는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지요.
옛날 사람들의 목욕 흔적은 목욕탕 유적을 통해서도 찾을 수 있어요. 기원전 1800년경 메소포타미아에 지어진 궁전 유적에서 목욕탕 흔적이 발견되었어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유적에서도 목욕 시설이 많이 발견되고요. 고대 그리스는 시내 곳곳에 목욕을 위한 분수와 목욕탕을 지었는데, 특히 운동 연습을 하던 격투기장 근처에 공중목욕탕이 많았지요. 고대 그리스인은 더운물로 목욕하면 나태해진다고 생각하여 주로 식사 전에 찬물로 목욕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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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정서용
이렇게 거대한 목욕탕을 만들기 위해 로마는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수로를 따로 건설해야 했어요. 로마는 기원전 3세기경부터 대형 수로를 건설하였지요. 이를 통해 공중목욕탕과 공공건물, 주택 등에 물을 공급하였어요. 2세기 초 트라야누스 황제 때에는 수로 9개를 통해 로마에 매일 300만리터의 물을 공급하였습니다. 당시 로마 시민의 1인당 물 소비량은 오늘날 4인 가족의 소비량과 맞먹을 정도로 많았다고 해요. 또한 로마인은 자신들이 점령한 지역에도 목욕탕을 지었는데, 특히 온천수가 솟는 곳에 목욕탕을 세우고 자주 방문하였어요. 목욕을 뜻하는 영어단어 'bath'도 로마인이 목욕을 즐긴 영국의 온천도시 '배스(bath)'에서 유래하였어요.
그러다가 중세시대 유럽에 흑사병이 퍼지면서 공중목욕탕이 문을 닫기 시작했어요. 목욕탕에서 나오는 수증기가 병균을 번식시키고 수증기와 목욕물을 통해 병이 옮는다고 믿었기 때문이에요. 15세기가 되자 공중목욕탕 대부분이 문을 닫았고, 사람들은 목욕 자체를 꺼리게 되었어요. 그래서 중세 유럽 사람들은 목욕하지 않아 무척 불결했지요. 귀족도 마찬가지였고요. 귀족들은 씻지 않은 몸에서 나는 냄새를 지우기 위해 향수를 사용하기 시작했답니다. 18세기에 이르러서야 과학이 발달하면서 목욕이 몸에 이롭다는 사실이 알려졌지요. 이제는 거꾸로 질병을 막기 위해 목욕을 권장하였어요. 다시 공중목욕탕이 생겼고 부자들의 집에는 개인 욕실이 등장하였어요. 상수도 시설이 발달하고, 따뜻한 물을 쓸 수 있는 설비까지 보급되면서 목욕이 생활의 일부로 자리 잡았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에 불교가 들어오면서 목욕 문화가 유행하기 시작했어요. 목욕은 불교에서 지켜야 할 규범 중 하나였기 때문이에요. 신라의 절에서는 커다란 공중목욕탕을 마련하였고, 신라 귀족은 집 안에 목욕 시설을 설치했지요. 고구려 왕족들도 목욕탕에서 친지·친구와 어울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요. 고려 사람들은 목욕을 더 좋아하여, 중국 송나라 사신이었던 서긍이 쓴 '고려도경'이라는 책에는 '고려 사람은 하루에 서너 번 목욕한다'는 내용이 나올 정도예요.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유교의 영향으로 목욕 문화가 변하였어요. 공중목욕탕이 사라졌고, 옷 벗는 것을 천한 행동으로 여겨 옷을 입은 채 목욕하였지요. 그래도 깨끗한 몸을 선호하였기 때문에 목욕을 즐기는 사람이 많았어요. 일부 부유층은 정방(淨房)이라는 목욕 시설을 집 안에 갖추었고요. 왕들도 병을 고치기 위해 온천을 찾아 목욕하곤 했습니다.
'목욕재계(沐浴齋戒)'란 사자성어가 있어요. 목욕으로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가다듬는다는 뜻이지요. 우리 조상은 제사나 중요한 일을 앞두고 목욕을 하였는데, 몸뿐 아니라 마음도 깨끗하게 한다는 의미였답니다. 여러분도 겉모습만 신경 쓰지 말고, 마음마저 올바르게 가꾸는 태도를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