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세상
지금 행복하다면, 타인의 고통에도 관심 가져보세요
입력 : 2014.10.08 05:35
| 수정 : 2014.10.08 09:02
[35] 알베르트 슈바이처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
가난·질병·무지에 고통받던 아프리카… 유럽인, 미개하다고 여겨 침략 정당화
봉사하며 살고자 의학 공부한 슈바이처… 유럽인으로서 책임 느껴 아프리카로 가 자선이 아닌 속죄로 선행하자고 주장
여러분은 슈바이처 박사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나요? 위인전을 읽은 친구들은 아마 아프리카에서 의료 봉사를 펼친 사람으로만 알고 있을 거예요.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52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기도 했지요. 놀라운 사실은 그가 서른 살이 되어서야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의학 공부를 시작했다는 점이에요. 의학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는 뛰어난 신학자이자 철학자였으며, 파이프오르간 연주자였답니다. 정말 여러 방면에서 재능을 발휘한 엘리트였지요. 신학자로서 대학에서 강의하며 책을 쓰고, 음악가로서도 한창 명성을 쌓을 때 새로운 도전을 한 것이에요. 스물한 살 때 '서른 살까지는 학문과 예술에 전념하고 그 뒤에는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데 모든 재능을 바치며 살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7년간 신학 강의와 의학 공부를 병행한 끝에 의사가 되어 아프리카로 떠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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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이병익
우리는 의학의 진보로 병과 고통을 치유하는 다양한 지식과 수단을 가지고 있으므로 부자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헤아릴 수 없이 부유한 이익을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저편 식민지에는 가난한 나사로인 유색인종이 있다. 그들은 우리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병과 고통에 지배당하면서도 그것과 맞설 수단이 전혀 없다.
슈바이처가 아프리카에 온 1913년 무렵, 아프리카 사람들은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었어요. 더구나 당시 유럽 각국이 아프리카의 풍부한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는 바람에 아프리카 사람들의 삶은 더욱 비참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슈바이처는 더 다양한 지식과 부를 가진 유럽인이 아프리카인의 고통을 외면한 채, 오로지 자신들의 부를 축적하기 위해 잔혹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꼈어요. 그는 유럽인이 약자의 처지를 헤아리지 못하고,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일을 저지른다고 생각했지요.
랑바레네에 도착하여 진료실을 갖추기도 전에 슈바이처는 집 앞 노천에서 몰려드는 환자들을 진료해야 했어요. 서둘러 마련한 첫 진료실은 어느 선교사의 닭장을 고쳐 만든 것이었지요. 의료 기구와 약품도 책과 오르간 연주회를 통해 얻은 수입으로 마련했습니다. 약병과 붕대 하나마저 귀했기 때문에 환자들도 치료가 끝나면 약병을 반드시 돌려주어야 할 정도였지요. 슈바이처는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수면병, 각종 궤양, 한센병, 말라리아, 이질 등 아프리카에 널리 퍼진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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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른 살에 의학 공부를 시작한 슈바이처 박사는 질병으로 고통받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돕는 데 평생을 바쳤어요. /위키피디아
아프리카 사람들은 슈바이처를 '오강가'라고 불렀습니다. 병을 고쳐주는 그를 주술사로 여긴 것이지요. 그들은 병이 자연적 원인으로 생긴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당시 아프리카인은 위생 상태가 나쁜 환경에서 불합리한 관습에 얽매여 살고 있었거든요. 유럽인은 이러한 아프리카인을 야만적이고 미개하다고 여기며 자기들과 같은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대우하지 않았어요. 따라서 침략은 정당하며, 심지어 침략이 아프리카 발전에 도움을 준다고 주장하였지요.
슈바이처도 이 책에서 아프리카인의 무지와 비합리적 관습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유럽인처럼 그러한 이유로 아프리카인을 함부로 대하지 않아요. 오히려 아프리카인을 가난과 질병에 빠트린 것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지요. 그리고 자신처럼 고난에서 구제된 사람은 고난 속에 있는 사람을 구제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슈바이처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타인의 고통에 관심을 가져본 일이 있는지, 오로지 나만의 행복을 위해 살고 있지는 않은지 묻고 있습니다.
우리와 우리 문화는 커다란 죄를 안고 있다. 그곳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푸는가, 베풀지 않는가 하는 문제는 전혀 우리의 자유가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그들에게 하는 선행은 자선이 아니라 속죄인 것이다.
[함께 생각해봐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행복한 삶이란 어떤 것인가요? 슈바이처처럼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삶도 행복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