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세계사

베르사유 궁전에는 화장실이 없었답니다

입력 : 2014.10.03 07:31

[왕의 화장실]

프랑스 루이 14세가 지은 베르사유 궁… 사방에 배설물 넘쳐 하이힐·향수 사용
절대권력자 '태양왕'의 변기·배변까지 귀족들이 영광으로 여기며 관리했어요
조선 왕, 의원이 변 확인하며 건강 관리

지금 이 순간, 혹시 먹고 싶은 음식이 있나요?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에요. 그런데 마음껏 먹고 마시고 난 뒤에는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본능이 또 하나 있어요. 바로 배설입니다. 그런데 문명이 발달하고 도시가 생기기 시작한 청동기 시대부터 배설은 사회문제가 되기 시작하였어요. 농촌에서는 배설물이 퇴비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도시에서는 문제가 달랐거든요.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배설물의 양도 많아지면서, 환경은 점점 비위생적으로 변하여 각종 전염병이 창궐하였어요. 심지어 중세 유럽 도시의 사람들은 집 안에 배설물을 모아두었다가 밤에 창 아래로 던지곤 했지요. 사람들은 머리에 오물을 뒤집어쓰지 않기 위해 모자를 쓰고, 길바닥에 버려진 오물을 밟지 않으려고 하이힐을 신었습니다. 지독한 냄새를 없애기 위해서 향수를 뿌렸고요. 1800년대에 유행한 콜레라를 막기 위해서 유럽 국가들이 하수 처리 시설을 개선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오늘은 왕의 은밀한 공간, 화장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게요.

우리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는 어느 날 갑자기 왕의 역할을 맡게 된 광대가 나옵니다. 처음으로 궁에 들어온 그는 화장실을 찾지 못해 쩔쩔매지요. 그때 눈치 빠른 궁녀 하나가 매화틀을 가져다줘요. 광대가 방에 앉아 매화틀에 볼일을 보는가 싶더니, 갑자기 방문이 활짝 열리며 궁녀들이 일제히 "전하, 감축드리옵니다"라고 외칩니다. 몹시 당황한 광대의 표정에 많은 관객이 배꼽을 잡고 웃었지요.

(사진 왼쪽)조선시대 왕이나 왕비가 쓰던 휴대용 변기인 ‘매화틀’이에요. (사진 오른쪽)하이힐을 신은 루이 14세의 초상. 루이 14세는 작은 키 때문에 하이힐을 신었다고 하는데, 유럽의 더러운 거리 탓에 16세기경부터 하이힐이 대중적으로 유행하였대요
(사진 왼쪽)조선시대 왕이나 왕비가 쓰던 휴대용 변기인 ‘매화틀’이에요. (사진 오른쪽)하이힐을 신은 루이 14세의 초상. 루이 14세는 작은 키 때문에 하이힐을 신었다고 하는데, 유럽의 더러운 거리 탓에 16세기경부터 하이힐이 대중적으로 유행하였대요. /국립고궁박물관·위키피디아
'매화틀'은 조선시대 왕과 왕의 가족이 사용하던 일종의 휴대용 변기예요. 요즘 아기들이 쓰는 변기처럼 앞쪽이 트인 'ㄷ'자 모양의 나무틀로 만들어졌지요. 나무 위는 비단으로 덮고, 내부에는 잘게 썬 여물이나 재를 미리 뿌려 두었다고 해요. 왕이 볼일을 보고 나면 옆에서 대기하던 상궁이 명주 수건으로 뒤를 닦아주었어요. 매화틀 안에 든 배설물은 내의원으로 옮겨져 왕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데 쓰였습니다. 왕의 사생활 보호보다는 국가를 책임지는 통치자의 건강을 잘 관리하는 게 더욱 중요했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은밀한 화장실에서 큰 권력을 드러내 놓고 누린 왕이 있답니다. '태양왕'으로 불리는 프랑스의 루이 14세예요. 여섯 살에 왕이 된 그는 재상 마자랭의 도움으로 성장한 후 절대권력을 누린 것으로 유명하지요. '왕의 권력은 신(神)이 내린 것'이라는 왕권신수설을 지지하고, 상업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자 했어요. 군대를 양성하고, 유능한 관리를 임명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데 활용하였고요. 또한 그는 아버지의 사냥터가 있던 습한 땅에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을 지었습니다. 이곳에서 왕과 귀족이 함께하는 다양한 파티를 열어 자신의 권력을 보여주었지요. 축제 기간에는 약 1만명의 사람이 베르사유 궁전에 머물렀을 정도예요. 프랑스에서 유행하는 미뉴에트에 맞춰 유럽인이 춤을 추고, 프랑스 왕실의 예의를 뜻하는 에티켓이 유럽 귀족이 갖춰야 하는 교양으로 자리 잡았지요. 베르사유 궁전에서 루이 14세는 유럽 절대왕정의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모습이에요. ‘왕의 권력은 신이 내린 것’이라고 생각한 루이 14세는 베르사유 궁전에서 귀족들과 수많은 파티를 열어 자신의 권력을 보여주었어요.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모습이에요. ‘왕의 권력은 신이 내린 것’이라고 생각한 루이 14세는 베르사유 궁전에서 귀족들과 수많은 파티를 열어 자신의 권력을 보여주었어요. /토픽이미지
그런데 놀랍게도 이 화려한 궁전에는 공식적인 화장실이 없었어요. 당시 정원에 400여개의 분수를 설치하기 위해 수로를 변경할 만큼 훌륭한 기술을 지녔음에도, 수많은 사람을 위한 위생 시설은 갖추지 않은 것이에요.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휴대용 변기를 이용하거나, 숲 속 혹은 커튼 뒤에서 볼일을 봐야 했지요. 여성은 폭이 넓은 드레스로 가리고 해결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해요. 아름다운 궁전은 오염물로 넘쳤고, '쇼핀'이라는 하이힐이 유행하였어요. 쇼핀은 신발 위에 덧신처럼 신는 나막신으로, 높이가 무려 60㎝에 이르는 것도 있었지요. 하인들이 열심히 뛰어다니며 배설물을 치웠지만, 코를 찌르는 냄새까지 막을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다양한 향수를 뿌리고, 궁전 내부의 인테리어도 수시로 바꾸었습니다.

그럼에도 궁전에서 왕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은 귀족의 높은 지위를 보여주는 상징이었어요. 특히 변기 위에 앉은 왕을 만나는 것은 더없이 큰 영광이었지요. 유난히 먹을 것을 즐겼던 루이 14세는 장을 비워야 건강하다는 의사의 조언에 따라 설사약을 먹고 하루에 12번도 넘게 화장실을 다녔다고 해요. 그런데 그 화장실에서 왕을 지켜보다가 미리 준비한 부드러운 천으로 엉덩이를 닦아주는 귀족이 있는가 하면, 변의 상태를 검사하는 귀족도 있었답니다. 심지어 왕의 변기를 관리하는 관리가 되려면 많은 돈을 바쳐야 했대요. 자신이 신과 같은 권력을 가졌다고 생각한 루이 14세는 배변의 본능조차도 특별한 권위의 상징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에요.

내년부터 우리나라 초·중·고등학교 화장실을 '쾌적하고 가고 싶은 곳'으로 바꾼다는 보도가 있었어요. 학생의 정서를 고려하여 창조적인 사고가 가능한 새로운 디자인의 화장실을 만들 계획이라고 해요. 하지만 화장실 시설 개선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개인의 위생 관리 습관이에요. 3시간 정도만 손을 씻지 않아도 손에 약 26만 마리의 세균이 살게 된대요. 비누로 손가락 구석구석까지 잘 씻기만 해도 수인성 전염병의 70%를 예방할 수 있다니, 손 씻기를 더욱 잘해야겠어요.



공미라 | 세계사 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