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세상

군중심리에 휩쓸리지 말고… 자신의 판단 돌아보아요

입력 : 2014.10.01 05:36 | 수정 : 2014.10.01 09:06

[34] 크리스토프 마르틴 빌란트 '당나귀 그림자에 대한 재판'

당나귀 그림자 값 때문에 시작된 재판… 시 전체가 편 갈라 싸우다 당나귀 처형
사소한 이익 다툼으로 갈등 깊어지자 책임 떠넘기는 어리석은 대중을 풍자
바른 민주주의는 소수 의견 존중하고 선동·군중심리에 휘둘리지 말아야

만일 여러분이 뜨거운 날씨에 길을 걷다 지쳐서 나무 그늘에서 잠시 쉬고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갑자기 나무 주인이 나타나 '이 나무의 주인은 나이고, 당신은 허락 없이 이 나무 그늘에 앉아서 쉬었으니 그 값을 내야 한다'고 말하면 어떨까요? 황당한 요구인 것 같기도 하고, 나무 그늘의 사용료를 지불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나요? 하지만 그늘은 태양이 있어야만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늘의 소유권이 나무 주인에게 있다는 주장이 옳다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 그늘이 누구의 소유라고 생각하나요?

오늘 살펴볼 작품에 이와 비슷한 갈등이 등장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압데라'라는 도시에 한 치과의사가 살고 있었어요. 어느 날 이웃 마을에 왕진 갈 일이 생겼는데, 하필 평소 타던 암탕나귀가 새끼를 낳은 터라 당나귀몰이꾼인 안트락스의 당나귀를 빌려야 했습니다. 치과의사는 당나귀몰이꾼과 함께 황무지를 지나다가 날씨가 너무 더워 잠시 당나귀를 세우고 그 밑에 드리워진 그늘에 앉아 쉬었지요.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어요. 당나귀몰이꾼이 치과의사에게 "당신에게 당나귀를 빌려주었지만 그림자까지 빌려주지는 않았으니, 그 값을 내라"고 따진 것이에요. 치과의사는 이에 맞서 "내가 하루 동안 당나귀를 빌렸으니, 당나귀가 만든 그림자 역시 내 소유"라고 주장합니다. 과연 누구의 말이 옳을까요?

기사 관련 일러스트
그림=이병익

결론을 내지 못한 두 사람은 결국 재판관을 찾아갑니다. 두 사람의 주장을 들은 재판관은 서로 조금씩 양보하게 한 뒤, 치과의사에게 약간의 성의 표시를 하라고 권해요. 그런데 이때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두 명의 변호사가 각자 치과의사와 당나귀몰이꾼의 변호를 맡겠다고 나서면서 논란에 불을 지핍니다. 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일반시민까지 가세하여 시 전체가 치과의사 편을 드는 '그림자당'과 당나귀몰이꾼을 지지하는 '당나귀당'으로 나뉘어 걷잡을 수 없는 갈등에 휩싸여요. 두 개 당으로 나뉜 시민은 전쟁도 불사하겠다며 벼랑 끝 대치를 이어갑니다.

그런데 이 진흙탕 싸움은 의외로 허무하게 마무리돼요. 재판정으로 문제의 당나귀를 끌고 오던 중, 한 시민이 당나귀를 보며 외친 말 한마디 때문입니다.

"빌어먹을 당나귀! 이놈 때문에 우리가 모두 이 꼴이 되고 만 게 아닌가? 우리에게 이 골치 아픈 사건을 떠맡기기 전에 이놈이 늑대에게 잡아먹혀 버렸더라면 좋았을걸! 훌륭한 압데라 시민이라면 모두 당나귀에게 오시오! 이놈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놈의 꼬리털 하나라도 남겨놓지 맙시다!"

성난 군중은 달려가 당나귀를 갈기갈기 찢어버렸고, 갈등의 원인인 당나귀가 사라졌으니 재판도 종결되었다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당나귀 그림자 때문에 시 전체가 얼마나 쉽게 파멸할 수 있는지를 후손에게 길이길이 알리기 위해 당나귀 동상을 세우면서 이야기가 끝이 납니다.

이 작품의 작가 크리스토프 마르틴 빌란트는 1733년 독일에서 태어났어요. 초창기에는 종교적인 작품을 주로 썼지만, 계몽주의 문학을 접하면서 풍자와 해학이 담긴 글을 많이 남겼지요.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빌란트에 대해 "그는 인간의 속물근성, 앞뒤가 꽉 막힌 옹졸함, 얼치기 교양의식, 다수라는 이름을 빌린 세속성 등을 거부하였다"고 회상하기도 했어요. 빌란트는 '당나귀 그림자에 대한 재판'에서 압데라 시민이 벌인 싸움의 시작과 끝을 통해 우리 모습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사람들은 이 작품을 읽으며 처음에는 압데라 시민의 우둔함을 비웃어요.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이 도시에서 벌어진 일이 현재 우리 사회에서도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사소한 일로 벌어진 재판이 시 전체를 양분하고 시민전쟁으로 치닫다가, 당나귀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것으로 자신의 잘못을 덮어버리는 인간의 우둔함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이야기

오늘날 사회 갈등과 경제 손실을 가져오는 주된 원인 중 하나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행동하고, 군중을 현혹하는 정치 행태입니다. 이를 가리켜 '중우정치(衆愚政治)', 즉 어리석은 무리의 정치라고 하지요.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플라톤은 중우정치를 가리켜 다수의 난폭한 민중이 이끄는 정치라는 뜻의 '폭민정치'라고 부르기도 했어요. '다수결의 원리'를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단점을 지적하는 용어로 쓰이기도 해요. 다수결의 원리는 더 많은 사람이 원하는 쪽으로 의사를 결정하기 때문에, 몇몇 선동가와 군중심리에 의해 다수가 현명하지 못한 판단을 내리면 중우정치가 되는 것이에요. 중우정치는 사회에 경제적 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사회·문화 등 전 분야에서 나라의 모든 에너지를 낭비하는 주범이 됩니다. 따라서 민주주의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더라도 충분한 토론으로 상호 설득 과정을 거쳐야 하며,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소수 의견을 존중하는 등 다양한 대책이 필요하지요.


빌란트는 이 작품에서 시민이 당나귀를 처형하는 과정을 아주 우스꽝스럽게 표현했어요. 하지만 이런 장면 속에서 우리는 대중의 어리석음이 불러올 수 있는 문제점을 간파해야 합니다. 작품 속 압데라 시민의 모습을 보면 실소를 금할 수 없지만, 정작 이러한 사회나 조직에 속한 사람들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스스로 깨닫기 어렵지요. 어쩌면 빌란트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가 몇 발짝 물러서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기를 원했는지도 모릅니다. 압데라 시민이 벌인 웃지 못할 재판은 바로 우리의 자화상일 수도 있으니까요.

[함께 생각해봐요]

우리나라나 세계 역사 속에서 벌어진 ‘중우정치’의 사례를 찾아보세요. 또한 민주주의가 ‘중우정치’로 변질하지 않으려면 사회 구성원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여러분의 생각을 정리하여 보세요.

유회명 | 한우리독서토론논술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