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세상

원수에게 복수할 것인가, 원수를 용서할 것인가

입력 : 2014.09.17 05:10 | 수정 : 2014.09.17 09:10

[32] 알렉상드르 뒤마 '몽테크리스토 백작'

억울한 누명 쓰고 감옥에 갇힌 당테스
탈옥 후 복수에 몰두하다 회의 느껴 마지막 복수 상대를 죽이지 않고 용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이 분쟁처럼 전쟁은 복수의 악순환 낳기 쉬워요

다음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어떤 행동을 할까요? 모든 걸 다 바쳐 사랑했지만 결국 애인에게 배신당한 여자,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아들…. 다들 예상했나요? 이들은 자신의 원수를 상대로 화려한 복수극을 펼칩니다. '복수(復讐)'는 최근 소설·드라마·영화 등에서 가장 사랑받는 소재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러한 복수극에도 원조 격인 이야기가 있답니다. 1845년 프랑스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가 펴낸 '몽테크리스토 백작'이에요. 이 소설은 나폴레옹이 프랑스 황제 자리에서 물러나 귀양을 떠난 시기를 배경으로 설정하여 당시 역사적 사실과도 잘 맞물려 있어요.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주인공 에드몽 당테스는 성실한 항해사였어요. 파라옹호의 새로운 선장으로 지명되어 기뻐하던 당테스는 연인인 메르세데스와의 약혼을 서둘러요. 하지만 곧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 때문에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됩니다. 파라옹호의 회계원이었던 당글라르, 당테스의 이웃집에 사는 재봉사 카드루스, 메르세데스의 사촌이자 그녀를 짝사랑한 페르낭이 바로 그들이었어요. 이들은 당테스를 나폴레옹 지지파인 보나파르트 당원으로 몰아가는 편지를 써 그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웁니다.

이 편지를 받은 검사 빌포르도 당테스가 무죄임을 알지만, 자신의 미래에 위협이 될까 봐 그를 감옥으로 보내지요. 공정한 조사나 재판조차 받지 못한 채 외딴섬의 감옥에 갇힌 당테스의 억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몽테크리스토 백작 일러스트
그림=이병익

#이야기 하나

여러분은 '적법절차의 원칙'이라는 말을 들어봤나요? 적법절차의 원칙은 국가나 공공기관이 국민에게 공권력을 행사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법의 원리를 말해요. 또한 공권력 행사를 가능하게 만드는 법률의 내용 역시 정당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요. 공권력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지만, 이러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남용될 경우 개인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당테스 역시 공권력이 잘못 행사된 탓에 최소한의 보호조차 받지 못했어요. 무죄를 입증할 단 한 번의 기회도 얻지 못했으니까요. 적법절차의 원칙은 이러한 위험을 줄이기 위해 존재합니다. 쌩쌩 달리는 공권력이 안전 불감증에 걸리지 않고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것과 같지요.

억울함에 목숨을 끊을 생각까지 하던 당테스는 감옥에서 파리아 신부를 만납니다. 당테스의 이야기를 들은 신부는 그에게 일어난 일들을 논리적으로 연결하여 그가 감옥에 오게 된 이유를 밝혀주지요. 당테스는 복수를 다짐하며 감옥에서 반드시 살아 나가겠다는 의지를 불태웁니다.

그러던 어느 날 파리아 신부는 당테스에게 몽테크리스토 섬에 숨겨놓은 보물에 대해 알려주고 지병으로 숨을 거둬요. 당테스는 신부의 시신을 자신과 바꿔치기하여 탈옥에 성공하지요. 그리고 보물을 찾아 백만장자인 몽테크리스토 백작으로 변신하여 자신을 모함한 사람들에게 복수하기 시작합니다. 그 과정에서 재봉사 카드루스가 먼저 죽고, 페르낭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요. 검사 빌포르는 가족이 한 명씩 희생되자 결국 미쳐버리지요. 피도 눈물도 없이 복수를 감행하던 당테스는 조금씩 회의를 느끼기 시작해요. 복수에 몰두하다 자신의 인격마저 잃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혼란스러워진 것이에요.

#이야기 둘

복수는 개인뿐 아니라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도 발생합니다. 특히 서로에게 무력으로 공격을 퍼붓는 전쟁은 복수를 부르기 쉽지요. 최근 지구촌의 모습을 한번 살펴볼까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를 폭격하여 수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어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의 사령관은 부인과 7개월 된 아들을 잃었지요. 이 사령관은 장례식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을 맹세했다고 해요. 또 미국이 이라크의 이슬람근본주의 반군(IS)을 향해 공습을 시작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IS는 미국인 기자를 참수하는 영상을 유튜브에 공개하였어요. 만약 여러분이 이런 상황에 놓였다고 생각해 보세요. 누군가에 의해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다면 상대를 증오하는 마음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거예요. 복수의 악순환을 끊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습니다. 제삼자가 용서를 강요할 수도 없지요. 이렇듯 전쟁은 증오심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를 더 많이 만들어냅니다.


복수심에 사로잡혔던 당테스는 결국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당테스는 마지막 복수 상대인 당글라르를 계략에 빠뜨려 빈털터리로 만들어요. 하지만 끝내 그를 죽이지 않고 이렇게 말합니다.

"당글라르씨, 나는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아니오. 나는 당신 때문에 신세를 망친 사람이지. 당신은 내 아버지를 굶어 죽게 했소. 그래서 나 역시 당신을 굶겨 죽이려고 했지만, 당신을 용서하기로 했소. 왜냐하면 나 역시 신에게 용서를 받아야 할 사람이기 때문이오. 내가 누군지 궁금하오? 나는 바로 에드몽 당테스요!"

당테스는 복수 대신 '용서'를 택한 것이에요. 복수심으로 죄를 저지르며 추악하게 변해가던 그는 스스로 신에게 용서를 구하지요. 죄를 뉘우치지 않는 가해자들을 보며 복수를 선택했지만, 어느 순간 복수가 자신을 집어삼키고 있음을 깨달았는지도 모릅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끝까지 복수했어야지!' 혹은 '그래도 용서했으니 잘됐어' 등 다양한 반응이 나올 거예요. 하지만 복수나 용서라는 결과에 집중하기보다는, 복수하면서 변해가는 당테스의 마음과 결국 용서를 선택하게 된 과정을 이해해 보려는 노력이 더 중요하답니다.

[함께 생각해봐요]

만약 여러분이 당테스였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그 이유와 선택에 따르는 대가가 무엇일지도 같이 생각해 봅시다.

박혜강 | 한우리독서토론논술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