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리더
편견과 어둠 속에서도 절망 않고… 체계적인 점자 직접 만든 맹인
[31] 루이 브라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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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이 브라유 탄생 200주년 기념 점자 우표. /인터넷우체국
루이 브라유가 점자를 만들기 전까지 사람들은 시각장애인은 눈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직업도 가질 수 없어서 장애와 가난으로 힘든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았지요. 하지만 점자가 널리 쓰이면서 시각장애인은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직업을 가지고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되었어요.
4세 때 시력을 완전히 잃은 루이 브라유도 처음에는 장애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답니다. 집 안에만 틀어박혀 눈물로 시간을 보내기도 했어요. 좌절했던 그가 일어선 것은 부모님 덕분이었지요.
부모님은 어렵더라도 루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가르치며 자립심을 길러주었어요. 맨 처음에는 우물에서 가족이 마실 물을 떠 오는 일을 시켰다고 해요. 앞이 보이지 않는 루이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어렵게 길은 물을 모두 쏟기도 하고, 다치기도 했어요. 루이의 부모님은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도 루이를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도전 정신과 용기, 끈기를 심어주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루이는 장애에 굴복하지 않는 강한 마음을 갖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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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각장애인인 루이 브라유(사진 왼쪽)는 책을 자유롭게 읽고 싶어 점자를 만들었어요. 사진 오른쪽은 루이 브라유가 6개의 점을 이용해 만든 점자예요. /Corbis/토픽 이미지·위키피디아
1819년 루이는 열 살의 나이에 프랑스 파리의 왕립맹아학교에 입학합니다. 그곳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문자를 배웠지요. 하지만 당시 시각장애인이 사용하던 문자는 읽기가 매우 어려웠어요. 게다가 학교 도서관에 있는 시각장애인용 책은 14권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문자가 체계적이지 않아서 책을 만들기가 무척 어려웠거든요. 마음껏 책을 읽고 싶었던 루이는 자신이 직접 시각장애인을 위한 문자를 만들기로 결심했어요. 그는 3년간의 연구 끝에 15세 때인 1824년 점 6개로 알파벳 26글자를 모두 표기할 수 있는 점자를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점자는 이전에 사용된 문자보다 체계적이고 규칙적이어서 시각장애인이 자유롭게 글을 읽고 쓸 수 있었어요.
점자가 만들어지기 이전에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문자가 있었어요. 그것이 체계화되지 못했던 이유는 시각장애인에 대한 편견 때문이었지요. 시각장애인은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교육도 필요 없다고 여긴 것이에요. 하지만 루이 브라유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일에 도전했어요. 자신도 어둠 속 절망에 빠진 적이 있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지요. 그의 용기와 도전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의 희망이 되고 있습니다.
[1분 상식] 우리나라에는 언제 '점자'가 들어왔나요?
점자는 크고 작은 점 6개로 문자와 부호를 나타내는 것으로, 현재 표음문자를 쓰는 나라들은 이것을 자국의 문자에 맞춰 사용하고 있어요. 4개 점으로 된 '뉴욕 포인트(New York Point)'라는 점자도 있으나 현재는 루이 브라유가 만든 6점 점자가 전 세계에서 통용되지요.
우리나라에는 1880년대 그리스도교 선교사에 의해 6점 점자보다 뉴욕 포인트 점자가 먼저 들어왔어요. 이후 1920년대 중반 6점 점자가 들어오고, 제생원 시각장애인부(현 서울맹학교)의 교사·학생들이 한글 점자를 연구하여 1926년 '훈맹정음(訓盲正音)'을 발표한 것이 점자 사용의 시초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