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의 발명

조선시대 안경, 유리 대신 수정으로 만들었어요

입력 : 2014.09.02 05:50 | 수정 : 2014.09.02 09:19

구체적 기록은 1268년 이후부터 유럽·중국 노인들이 사용했대요
책이 대량 생산되자 안경 수요 늘어
조선, 임진왜란 무렵 안경 전파… 연장자·상사 앞에선 벗어야 하는 등 예절 까다로워 대중화 오래 걸려

유리로 만들어진 안경은 시력이 나쁜 사람도 세상을 잘 볼 수 있게 해주고, 강한 햇빛으로부터 눈을 보호하는 역할을 해요. 요즘에는 멋을 내기 위한 패션 도구로도 쓰이지요. 그런데 이러한 안경은 언제부터 사용되었을까요?

먼 옛날 로마제국의 네로 황제는 에메랄드를 이용해서 검투사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았다고 해요. 하지만 이때 네로 황제가 에메랄드를 오늘날의 안경처럼 사용한 것은 아니에요. 빛을 반사하는 거울처럼 사용하여 에메랄드의 평평한 면에 경기장 모습을 비춰보았다고 하지요. 한편 로마의 철학자이자 네로 황제의 스승이었던 세네카는 시력이 나빠지자 물을 가득 채운 유리 공으로 글자를 확대해서 보았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구텐베르크 인쇄술과 함께 발달한 안경

안경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1268년이 되어서야 나타나요. 영국 철학자인 베이컨이 자신의 저서에 '유리나 수정처럼 투명한 물체를 통해 글자를 보면 글자를 훨씬 잘 볼 수 있다'고 썼거든요. 1289년에 쓰인 또 다른 기록에는 '최근 발명된 안경은 시력이 약해진 노인에게 큰 축복'이라는 내용이 나오기도 해요. 1268~1289년 무렵 유럽에서 안경이 쓰였음을 짐작할 수 있지요.

[안경의 발명] 조선시대 안경, 유리 대신 수정으로 만들었어요
/그림=정서용
그런가 하면 1271년부터 1295년 사이 중국 원나라를 방문했던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보면, 중국의 노인들이 안경을 사용했다는 내용이 나와요. 그래서 중국에서 처음 발명되었다는 설도 있답니다. 13세기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유리 기술자들이 개발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요.

안경이 언제, 어디서 발명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확실한 것은 14세기 이탈리아에 안경이 있었다는 사실이에요. 1352년 이탈리아 화가 토마소 다 모데나가 그린 위고 추기경의 초상화를 보면, 그림 속 추기경이 안경을 쓰고 있거든요. 그런데 당시 유럽에서 안경이 필요한 사람은 많지 않았어요. 안경은 주로 책을 읽을 때 필요한 물건이었는데, 이 시기에는 금속활자 인쇄술이 발명되지 않아 책이 무척 귀했거든요. 나이 들어 눈이 어두워진 수도사나 학자들이 책을 읽고 글을 쓸 때 안경을 사용했지요.

하지만 1450년대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 인쇄술을 발명하면서 상황이 달라졌어요. 금속활자 인쇄술 덕분에 책이 대량으로 만들어지고 값이 싸지면서 보통 사람들도 쉽게 책을 접하게 되었지요. 이전에는 시력이 나빠도 생활에 불편함이 없었지만, 책을 읽으려면 안경이 꼭 필요했어요. 그래서 안경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고, 안경은 점차 생활 필수품으로 자리 잡게 되었답니다.

◇안경 쓰는 예절 까다로웠던 조선시대

[안경의 발명] 조선시대 안경, 유리 대신 수정으로 만들었어요
/그림=정서용
그렇다면 우리 선조는 언제부터 안경을 사용했을까요?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안경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2년 전인 1590년에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김성일의 안경이에요. 또한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에 와서 휴전 협상을 하던 명나라의 심유경과 일본인 승려 현소가 나이가 많았음에도 안경을 쓴 덕분에 글을 잘 읽어 사람들이 놀랐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요. 조선왕조실록에는 시력이 약해진 정조 임금이 책을 읽을 때 안경을 썼다는 기록이 있는데, 우리나라에 안경이 들어온 것은 그로부터 200년 전이라는 이야기도 함께 적혀 있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 안경이 들어온 시기는 임진왜란 무렵으로 짐작돼요.

우리나라에서 안경이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1600년대부터예요. 당시 우리나라는 유리 대신 수정을 가공해서 안경을 만들었어요. 안경테는 주로 동물의 뿔이나 뼈, 쇠붙이 등으로 만들었는데, 고급 안경테는 거북의 등딱지를 오려서 만들었다고 해요.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안경을 쓰는 예절이 무척 까다로웠어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안경을 벗어야 했고, 자신보다 나이가 많거나 지위가 높은 사람 앞에서도 쓰면 안 되었어요. 임금이라고 해도 공식적인 어전회의에서는 안경을 벗어야 했답니다. 1891년에는 일본 공사 오이시가 우리 관습을 무시하고 안경을 쓴 채로 고종을 만난 일에 대해 우리 정부가 일본에 정식으로 항의하였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까다로운 예절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안경이 대중화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답니다.

'몸이 1000냥이면 눈이 900냥'이라는 옛말이 있어요. 그만큼 눈이 소중하다는 말이에요. 시력을 바로잡기 위해 안경을 쓰는 것도 좋지만, 눈이 나빠지지 않도록 예방하는 생활습관을 갖는 게 더 중요하겠지요?



윤상석 | 어린이 학습 도서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