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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 첫 개최지… 독립 위해 싸운 병사들과 간디의 넋 잠들어
입력 : 2014.08.13 05:51
| 수정 : 2014.08.13 09:06
[95] 인도 뉴델리
지난 9일 인도 뉴델리 국립 경기장에서 다음 달 열리는 인천 아시안게임의 성화가 채화되었어요. 지금까지 올림픽 성화가 최초 올림픽 개최지인 그리스 아테네에서 채화되던 것과 달리 아시안게임은 개최국에서 성화가 채화되었지요. 하지만 이번에는 인천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가 대회 정통성을 살리고자, 1951년 제1회 아시안게임을 개최한 뉴델리에서 성화를 채화하자고 건의했다고 해요. 이 성화는 우리나라로 들어와 강화도 마니산에서 채화된 성화와 오늘 합화되어 국내 봉송길에 오릅니다.
인도의 델리(Delhi)는 북쪽의 올드델리(Old Delhi)와 남쪽의 뉴델리(New Delhi)로 구성돼요. 올드델리는 17~18세기 무굴 제국의 수도로 번영했던 지역이지요. 그래서 이슬람교를 바탕으로 한 인도의 역사와 문화를 느낄 수 있어요. 한편 1912년 영국 통치 시절에 세워져 1931년 인도의 수도가 된 뉴델리는 근대적이고 서구적인 문물 속에 식민지 시대의 아픔을 간직하였으며, 간디를 중심으로 뭉쳤던 인도인의 독립 정신이 살아 숨 쉬는 곳이지요. 두 도시는 서로 다르면서도, 마치 하나인 것처럼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인도의 델리(Delhi)는 북쪽의 올드델리(Old Delhi)와 남쪽의 뉴델리(New Delhi)로 구성돼요. 올드델리는 17~18세기 무굴 제국의 수도로 번영했던 지역이지요. 그래서 이슬람교를 바탕으로 한 인도의 역사와 문화를 느낄 수 있어요. 한편 1912년 영국 통치 시절에 세워져 1931년 인도의 수도가 된 뉴델리는 근대적이고 서구적인 문물 속에 식민지 시대의 아픔을 간직하였으며, 간디를 중심으로 뭉쳤던 인도인의 독립 정신이 살아 숨 쉬는 곳이지요. 두 도시는 서로 다르면서도, 마치 하나인 것처럼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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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 위 사진)‘델리의 얼굴’로 불리는 인디아게이트예요. (오른쪽 사진)인도 독립을 이끈 마하트마 간디의 묘는 늘 참배객의 꽃으로 덮여 있어요. /Corbis 토픽이미지
인디아게이트 주변은 대통령궁과 국회의사당, 정부청사, 상가인 코노트플레이스가 모인 델리의 중심지예요. 밤이 되면 은은한 조명으로 아름다운 야경을 뽐내며 델리 시민의 휴식처로 자리 잡았어요. 지켜지지 않은 약속을 가슴에 안고 잠든 인도 병사들의 희생은 결국 오늘날 인도의 평화와 발전의 초석이 된 것 같지요.
세계대전 후 인도의 독립을 이끈 인물은 마하트마 간디입니다. 그의 행적은 '라지 가트(Raj Ghat)'에서 찾아볼 수 있어요. 암살당하기 전 말년의 시간을 보냈던 저택과 그가 화장된 추모 공원이 이곳에 있습니다. 간디의 생애가 담긴 사진과 초상화, 조각, 신문 기사는 물론 그가 사용한 물레 등 각종 유품까지 볼 수 있습니다. 이 전시물에는 조국의 독립과 평화를 바란 간디의 마음과 고통스러웠던 인도의 현대사가 고스란히 담겼지요. 추모 공원 잔디밭 중앙에 검고 네모난 대리석 단상으로 꾸며진 간디의 묘는 언제나 참배객의 꽃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우리 국민은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과 아시안게임이라는 큰 행사를 통해 새로운 평화와 도약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대를 안고 뉴델리에서 밝혀진 성화가 우리나라를 환하게 밝혀주길 바랍니다.
[1분 상식] '마하트마 간디'는 어떤 사람인가요?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1869~1948)는 인도의 독립운동가입니다. '마하트마'란 '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으로 인도 시인이 붙여준 별칭이에요. 그는 영국 런던에서 변호사 자격증을 딴 뒤, 의뢰받은 소송 때문에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건너가면서 인종차별 반대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인종차별에 대해 비폭력 저항 운동을 벌인 간디는 1915년 인도에 돌아와서도 비폭력 독립운동에 나섰어요. 깡마른 체구에 흰 천을 걸친 모습은 이러한 간디의 정신을 상징하지요. 1947년 인도 독립 후에는 힌두교와 이슬람교 융화를 위해 노력하다가, 1948년 어느 힌두교 광신자에 의해 암살당하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