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세계사

이순신처럼 뛰어난 영웅, 영국에도 있어요

입력 : 2014.08.08 05:43 | 수정 : 2014.08.08 06:20

[트라팔가르 해전과 넬슨 제독]

20세에 최연소 함대장 된 넬슨 제독… 외눈·외팔로 트라팔가르 해전서 승리
프랑스 나폴레옹의 침략 막아내며 이순신 장군처럼 역사의 흐름 바꿔

방학을 맞은 여름 극장가에 '이순신' 열풍이 불고 있어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대승을 거둔 명량해전을 소재로 한 영화 '명량'이 개봉되었기 때문이에요. 이순신 장군은 '살려는 자 죽을 것이요, 죽으려는 자 반드시 살 것이다'라는 각오로 전쟁에 임하며 진정한 리더십을 보여주었지요. 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수군이 계속해서 승리를 거두고, 육지에서는 관군과 의병이 활약한 덕분에 조선은 왜군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탁월한 전술로 세계 해전사에 유례가 없는 승리를 거둬 크게 존경받지요. 당시 전쟁에 진 일본에서는 에도막부가 수립되었고, 중국에서도 명나라가 무너지고 청나라가 세워져 새로운 시대가 펼쳐졌답니다. 그런데 영국에도 이순신 장군처럼 탁월한 전술을 펼쳐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사람이 있어요. 바로 허레이쇼 넬슨(Horatio Nelson·1758~1805) 제독이에요.

영국 화가 윌리엄 터너가 그린‘트라팔가르 해전’모습이에요.
영국 화가 윌리엄 터너가 그린‘트라팔가르 해전’모습이에요. 영국은 넬슨 제독의 뛰어난 전술 덕분에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를 물리쳤지요. /위키피디아
좁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프랑스와 영국은 옛날부터 서로를 눈엣가시로 여겼어요. 오랫동안 전쟁과 동맹을 반복했지요. 1789년 프랑스에서 자유와 평등을 외치는 시민혁명이 일어나자 영국은 상황을 예의주시했어요. 그런데 프랑스에 공화정이 수립되고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처형당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영국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유럽 여러 나라가 동맹을 맺고, 프랑스 혁명의 확산을 막기 위해 전쟁을 벌인 것이에요.

이 전쟁으로 프랑스에서 새롭게 등장한 인물 중 보나파르트 나폴레옹(1769~1821)이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나폴레옹은 정복 전쟁을 일으켜 유럽 여러 나라를 휩쓸었지요. 그리고 쿠데타를 통해 '통령'의 자리에 오르더니, 1804년에는 국민투표로 황제가 되었어요. 이제 막 황제의 자리에 오른 나폴레옹은 영국을 통째로 삼키고 싶은 야심으로 가득 찼어요. 그때까지 나폴레옹의 손안에 들어오지 않은 유럽 국가는 영국뿐이었거든요.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고 말한 나폴레옹에게도 영국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어요. 당시 영국은 강한 해군을 보유하였고, 정해진 신호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전술과 뛰어난 지도자가 있었지요. 특히 영국 해군 최고의 영웅 허레이쇼 넬슨이 있었어요. 그는 12세에 해군에 입대하여 산전수전을 다 겪고, 20세에 최연소 함대장이 된 인물이에요. 프랑스군과 격전을 벌이던 중 총탄 파편에 맞아 오른쪽 눈을 실명했고, 오른쪽 팔마저도 잃었지요. 하지만 그에게는 누구도 꺾을 수 없는 강한 의지가 있었어요. 침침한 눈으로 지중해를 샅샅이 뒤져 나폴레옹 부대를 나일 강에서 격퇴한 일도 있었지요. 그에게 한쪽 눈과 팔이 없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트라팔가르 해전 장소.
1805년 10월, 스페인 남서쪽의 트라팔가르 앞바다에 정박한 넬슨의 함대에는 '영국은 그대가 임무를 다하기를 기대한다'고 적힌 깃발이 펄럭였어요. 이곳은 프랑스·스페인 연합군이 대서양에서 지중해로 이동하는 길목이었지요. 넬슨은 외눈을 치켜뜨고 적군을 맞이할 채비를 시작했어요. 백전백승의 넬슨이었지만 '배 27척으로 33척의 적군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몰려왔지요. 그는 함대를 과감히 둘로 나누었어요. 자신이 이끄는 15척과 부사령관 콜링우드가 이끄는 12척으로 말이에요. 당시 해전은 바다 위에서 함선들이 서로 포를 쏘고 대열을 다시 맞추는 방식으로 치러졌는데, 둘로 나뉜 넬슨 함대는 함선의 양측에 있는 포를 쏘아서 적군의 배열을 끊었어요. 그리고는 뱃머리를 힘차게 돌려 접근한 후 다시 공격했죠. 아무도 예상치 못한 긴박한 공격으로 바다 위는 아수라장이 되었어요.

갑판 위가 흥건히 피로 물들 무렵, 넬슨이 적의 총탄에 맞아 쓰러졌어요. "놈들이 드디어 나를 잡는 데 성공했군. 총알이 내 등뼈를 부수고 지나갔어." 하지만 그는 고통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함대를 지휘하며, 밧줄을 새로 매라는 명령까지 잊지 않고 내렸어요. 완벽한 승리 소식을 듣고 나서야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는 임무를 완수했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생을 마감했지요.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영국은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 5척을 침몰시키고, 17척을 사로잡아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이에 대한 앙갚음으로 나폴레옹은 대륙봉쇄령을 내려 영국을 고립시키려고 하였지만, 러시아의 배신으로 실패하고 말지요. 이후 러시아를 응징하기 위해 나선 원정은 결국 나폴레옹의 몰락으로 이어졌답니다.

영국 런던 트라팔가르 광장에 있는 넬슨 제독 동상이에요.
영국 런던 트라팔가르 광장에 있는 넬슨 제독 동상이에요. /Corbis 토픽이미지
이순신과 넬슨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바탕으로 걸출한 지도력을 보여주었어요. 억울한 모함에 시달렸지만 늘 당당했고, 형편이 열악할 때에도 남을 탓하지 않았으며, 신체적으로 약해졌을 때는 정신력으로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많은 이에게 귀감이 되었지요. 시대와 처지가 다른 두 사람을 비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이순신을 알게 된 동서양의 여러 학자는 입을 모아 거북선의 원리나 해군 전술을 극찬합니다.

공미라 | 세계사 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