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세상
일제강점기에도 '갑의 횡포'가 있었대요
입력 : 2014.07.09 05:40
| 수정 : 2014.07.09 08:59
[22] 채만식 '태평천하'
가난한 사람·농민 처지 생각 안 하고 높은 이자로 재산 불린 윤 직원 행동… 오늘날 '갑'이 부리는 횡포와 비슷해요
갑을 구분없이 함께 살아야 하는 사회… 상대방 이해하는 마음가짐 필요하지요
요즘에는 용돈을 벌거나 다양한 경험을 쌓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소년이 많아요. 그런데 만일 여러분이 일하는 편의점의 사장이 아르바이트 비용을 제때 주지 않거나 원래 주기로 했던 금액보다 적게 준다면 어떨까요? 아니면 일하다가 여러분이 다치기라도 했다면요? 청소년들은 나이가 적은 데다 근로기준법이나 산재보험 등 어렵고 복잡한 제도를 잘 몰라서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비단 청소년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비정규직이나 대기업에서 일을 받는 하도급업체 등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내용의 뉴스가 자주 보도되지요.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돈 많고 힘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권력과 법의 빈틈을 이용해 약자에게 부당한 일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것을 '갑(甲)의 횡포'라고 표현합니다. '갑을(甲乙)'이란 원래 계약서상에서 계약 당사자들을 이르는 말인데, 보통 상대적으로 지위가 높은 쪽을 '갑', 낮은 쪽을 '을'로 지칭한 데서 이러한 표현이 생겼습니다. '갑의 횡포'는 일제강점기에도 있었는데, 이를 재미있게 풍자한 소설이 바로 채만식의 '태평천하'예요.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돈 많고 힘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권력과 법의 빈틈을 이용해 약자에게 부당한 일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것을 '갑(甲)의 횡포'라고 표현합니다. '갑을(甲乙)'이란 원래 계약서상에서 계약 당사자들을 이르는 말인데, 보통 상대적으로 지위가 높은 쪽을 '갑', 낮은 쪽을 '을'로 지칭한 데서 이러한 표현이 생겼습니다. '갑의 횡포'는 일제강점기에도 있었는데, 이를 재미있게 풍자한 소설이 바로 채만식의 '태평천하'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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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이병익
"화적패가 있너냐아? 부랑당 같은 수령(守令)들이 있너냐? 재산이 있대야 도적놈의 것이요, 목숨은 파리 목숨 같던 말세(末世)넌 다 지내 가고오…. 자 부아라, 거리거리 순사요, 골골마다 공명헌 정사(政事),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 남은 수십만 명 동병(動兵)을 히여서, 우리 조선놈 보호히여 주니, 오죽이나 고마운 세상이여? 으응? 제 것 지니고 앉아서 편안허게 살 태평세상, 이걸 태평천하라구 허는 것이여 태평천하!"
우리나라의 자본주의는 자발적으로 싹트기 전 일제에 의해서 타율적으로 들어와 비정상적으로 형성되었어요. 이러한 상황에서 윤 직원은 경찰서 무도장(武道場)을 지어 주는 등 일제에 아첨하며 많은 토지와 부를 축적한 지주가 되었지요. 그는 돈을 빌리러 온 사람들에게 높은 이자를 받고, 소작농에게도 자기 마음대로 더 높은 도조(賭租)를 받아 챙기지요. 돈을 빌리러 온 사람이나 소작농의 처지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어요. 윤 직원은 일제의 비호 아래 약자들에게 '갑의 횡포'를 부리며 더 많은 돈을 벌지요.
어찌 보면 윤 직원은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고, 땅이 필요한 농민에게 땅을 빌려준 것이니 별문제 없어 보일 수도 있어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지요. 하지만 당장 돈이 필요한 사람은 이자가 아무리 높더라도 돈을 빌릴 수밖에 없어요. 농사를 지어야 겨우 먹고살 수 있는 농민은 지주가 높은 도조를 요구하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가진 자의 횡포이지요. 채만식은 당시 자본주의의 병폐와 지주들의 만행을 윤 직원의 모습을 통해 풍자하여 보여줍니다.
#이야기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70%가 자신을 '을'로 여긴다고 해요. 어떤 사람은 자신이 '갑'에게 당한 최악의 횡포로 '상사가 자기 아들의 과학 숙제로 병아리의 탄생을 찍어 오라고 하여 양계장까지 달려갔던 일'을 꼽았어요. 하지만 이러한 갑의 횡포가 항상 통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작년에는 한 대기업의 영업직원이 대리점 주인에게 욕설을 하는 녹음 파일이 공개되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일었지요. 이 사건으로 대기업이 대리점에 제품을 강매해 온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결국 이 회사는 법적 제재를 받고, 이미지도 크게 실추되었어요. 이를 계기로 '을'을 보호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되고, 사회 곳곳에서 갑과 을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기 때문이지요.
소설 '태평천하'에서 윤 직원은 누가 봐도 '갑'의 위치에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작가는 윤 직원과 같은 인물이 등장하게 된 사회적 배경을 꼬집고 있어요. 윤 직원으로 대표되는 자본가의 모습을 통해 일제강점기의 왜곡된 한국 사회를 풍자한 것이에요. 그리고 윤 직원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던 '수퍼 갑', 즉 일제의 정책을 우회적으로 비판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윤 직원 역시 일제의 정책에 희생당한 '을'이기 때문입니다.
현대 사회에도 갑을 관계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상대적으로 누군가가 힘과 권력을 더 가질 수밖에 없기에 어쩔 수 없이 '갑'이 존재하지요. 하지만 이 세상에는 '갑'만 존재하지도 않고, 평생 '을'로만 사는 사람도 없습니다. '갑'과 '을'의 위치는 한순간에 바뀔 수도 있어요. 그렇기에 우리는 '갑'과 '을'이 조화롭게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지요. 여러분은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을 아나요?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해 본다'는 뜻의 사자성어예요.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면, 상대방의 생각이나 처지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역지사지'는 힘과 권력을 남들보다 조금 더 가진 '갑'에게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요?
[함께 생각해봐요]
여러분 주변에서 일어나거나 언론을 통해 접한 ‘갑의 횡포’에는 무엇이 있나요? 그리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