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치아 개수가 많아 왕이 된 사람이 있다고요?
음력 8·15일에 노래·춤 즐기게 하고 가난하고 병든 백성 아낀 유리왕
덕 많은 사람은 이 많다는 풍습 따라 신라 왕 되어 지혜로운 정치했어요
올해 브라질월드컵에서 화제가 된 사건 중 하나는 이른바 '핵 이빨' 사건일 거예요. 우루과이 대표팀의 골잡이인 루이스 수아레스 선수가 경기 중에 상대팀 선수의 어깨를 물어뜯는 황당한 반칙을 저지른 것이지요. 비신사적인 행동에 전 세계가 비난을 보냈고, 국제축구연맹은 '국제대회 9경기 출전 금지'와 '4개월간 선수 자격 정지'라는 징계를 내렸어요. 수아레스 선수는 16강전에 출전하지 못했고, 우루과이는 콜롬비아에 져서 탈락하고 말았지요. 이를 잘못 사용하는 바람에 홍역을 치른 것이에요. 그런데 우리 역사에는 이 덕분에 왕이 된 인물도 있답니다. 바로 신라의 유리왕이에요. 유리왕이 왕위에 오른 것과 이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요?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1990년 전으로 역사 여행을 떠나 볼까요?
◇"둘 중 나이 많은 사람이 왕위를 이어라."
신라의 제2대 왕인 남해 차차웅이 죽음을 앞두고, 큰아들 유리와 사위인 탈해를 불렀어요. '차차웅'이란 당시 왕을 일컫는 호칭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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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이창우
"아무래도 내가 올해를 넘기기가 어려울 것 같구나. 내가 죽은 뒤에 너희 둘 중에 나이가 많은 사람이 왕위를 잇도록 하여라."
엄연히 큰아들이 있는데, 남해 차차웅은 왜 아들과 사위를 불러 둘 중 나이가 많은 사람이 왕위를 잇도록 했을까요? 아마도 사위인 탈해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었나 봐요. 탈해는 남해 차차웅이 나라를 다스릴 때 큰 힘이 되어준 인물이거든요. 탈해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 남해 차차웅은 그를 '대보(大輔)'라는 오늘날의 국무총리나 수상과 같은 높은 벼슬에 앉히고, 그에게 나랏일을 맡겼지요. 그래서 능력이 뛰어난 탈해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겸손하고 마음이 너그러운 유리는 이런 아버지의 뜻을 이해하여 탈해에게 왕위를 양보하려고 했어요.
◇"이가 많은 사람을 왕으로 결정하면 어떨까요?"
그런데 탈해는 유리에게 다음과 같은 제안을 했어요. "덕과 지혜가 많은 사람은 이가 많다고 하니, 둘 중 이가 많은 사람이 왕위를 잇도록 결정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탈해의 말에 신라의 신하들이 모두 찬성했어요. "좋습니다. 이가 많은 사람을 지도자로 뽑는 것은 예로부터 내려온 풍습이기도 합니다." 유리도 탈해의 제안에 따를 수밖에 없었지요.
두 사람이 떡을 깨물어 떡에 새겨진 잇금, 즉 잇자국을 세어본 결과 유리가 탈해보다 이가 많았어요. 그래서 유리가 남해 차차웅의 뒤를 이어 신라 제3대 왕인 유리 이사금이 되었습니다. '이사금'은 '차차웅'처럼 신라에서 사용하던 또 다른 왕의 호칭이에요. '삼국사기'에는 '화랑세기'를 쓴 신라 역사가인 김대문의 말을 인용하여 '이사금은 잇금, 즉 이의 자국을 뜻하는 말'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잇금으로 왕을 정한다는 뜻으로, 신라에서는 유리왕 때부터 왕을 '이사금'이라고 불렀다는 것이지요.
◇"자식 없는 노인에게 양식을 나눠주어라"
탈해보다 이가 많아 왕위에 오른 유리왕은 어떤 임금이었을까요? 당시 백성이 부른 노래로 짐작해 볼 수 있어요. 유리왕은 나라 안을 두루 돌아보다가 한 노파가 굶어 죽는 것을 보고 이를 자신의 탓으로 여겨 마음 아파했대요. 그래서 관리를 불러 '홀아비, 과부, 고아, 자식 없는 노인과 늙고 병들어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양식을 나누어 주어 부양하게 하라'는 명령을 내렸어요. 그러자 이웃 나라의 백성 중에도 이 소문을 듣고 신라로 옮겨 오는 사람이 많았으며, 신라 백성은 '도솔가(兜率歌)'라는 노래를 지어 불렀대요.
또 유리왕은 나라를 이루는 여섯 개의 부(部)를 두 편으로 나누어 음력 7월 16일부터 한곳에 모여 옷감을 짜는 길쌈 시합을 하게 했어요. 음력 8월 15일에 그 결과를 심사하여 진 쪽에서 술과 음식을 차려 대접하고, 노래와 춤, 여러 가지 놀이를 벌였지요. 이를 '가배(嘉俳)'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추석'이 되었어요. 이때 진 쪽에서 한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며 "회소, 회소!" 탄식하는 소리를 내었는데, 그 소리가 슬프고도 우아하여 훗날 사람들이 이 곡에 노랫말을 붙여 불렀다고 해요. 이것이 '회소곡(會蘇曲)'이지요.
◇"탈해를 왕위에 오르게 하라"
두 노래를 통해 유리왕은 어진 정치로 백성을 잘 보살폈으며, 문화도 크게 발달시켰음을 알 수 있어요. 또한 6부의 이름을 바꾸고, 관직의 등급을 구분하는 등 여러 업적을 쌓았지요. 유리왕은 왕위에 오른 지 34년 만에 병으로 숨을 거두며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어요.
"탈해는 신분이 임금의 친척이요, 지위가 재상에 이르렀고 공을 많이 세웠다. 나의 두 아들은 재능이 그를 따르지 못한다. 내가 죽은 뒤에는 탈해를 왕위에 오르게 하리니, 나의 유언을 잊지 마라."
이 유언에 따라 탈해는 신라 제4대 임금인 탈해 이사금이 되었습니다. 탈해의 성은 석(昔)씨로, 그는 신라 본토 사람이 아니었어요. '삼국유사'에는 탈해가 용성국(삼국사기에는 다파나국) 출신이며, 용성국은 왜국의 동북 1000리에 있는 나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석탈해라는 이름도 신라에 와서 얻은 이름이고요. 용성국이 어디인가에 대해서는 남인도의 타밀 지역, 러시아 북동부의 캄차카 반도, 울릉도 동남쪽의 오키 제도 등 다양한 주장이 있지만, 분명히 알 수는 없어요. 다만 바다 건너 외국에서 왔으나 지혜와 능력이 뛰어난 인물임은 분명해요. 그러니까 신라의 재상을 지내고, 임금 자리에까지 올랐겠지요?
[함께 생각해봐요]
신라시대에는 국가의 최고 통치자를 거서간(居西干)·차차웅(次次雄)·이사금(尼師今)·마립간(麻立干) 등으로 부르다가, 제22대 지증왕 때부터 ‘왕’이라는 호칭을 썼어요. 각 호칭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 탐구하여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