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세계사
드로그바(축구선수) 덕분에… 월드컵 후 평화 찾아온 코트디부아르
[코트디부아르의 전쟁과 평화]
전쟁이 일상이던 먼 옛날과 달리 평화로운 삶 바라게 된 근대 사회
2006년 월드컵 출전한 드로그바, TV서 무릎 꿇고 호소하자 내전 멈춰
- ▲ 브라질월드컵에 출전한 디디에 드로그바 선수의 모습이에요. /AP 뉴시스
지난 13일 월드컵 축구 대회가 시작되었어요. 저는 아빠와 함께 브라질에서 열린 월드컵 축구 대회 조별 예선 경기를 빠짐없이 보고 있답니다. 대회 개막 이틀 뒤 열린 일본과 코트디부아르의 대결도 지켜보았지요. 일본이 먼저 골을 넣어 앞서가고 있을 때 코트디부아르가 선수 교체를 했어요. 교체된 선수가 경기장으로 들어서자 관중석에서 큰 함성이 울렸어요.
"아빠, 저 사람이 누군데 이렇게 사람들이 좋아해요?"
"코트디부아르에서 가장 유명한 축구 선수인 '디디에 드로그바' 선수란다. 축구를 무척 잘해서 우리나라에도 팬이 아주 많아."
아닌 게 아니라 드로그바 선수가 들어가자 경기 흐름이 확 바뀌었어요. 뒤지고 있던 코트디부아르가 동점골을 넣더니 곧이어 역전 골까지 성공해 승리를 거머쥐었지요. 그러자 우리 아파트 단지의 이 집 저 집에서 환호성이 들려오는 게 아니겠어요? 일본과의 경기이다 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부 코트디부아르를 응원하고 있었나 봐요. 더구나 최근 들어 일본에서 '일본군이 위안부 동원에 관여했다'고 인정했던 고노 담화(河野 談話)의 검증 결과를 발표하여 한·일 관계가 더욱 나빠졌잖아요.
"디디에 드로그바 선수는 정말 대단하네요. 축구 실력도 좋지만 축구장 밖에서도 좋은 일을 많이 한다면서요?"
제 질문에 가만히 계시던 엄마께서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대답하셨어요.
"아까 드로그바 선수가 나왔을 때 사람들이 환호한 데는 다른 이유가 있어. 코트디부아르가 지난 2006년 월드컵 본선에 나가게 되었을 때 드로그바 선수가 TV 카메라 앞에 꿇어앉았대. 그리고 당시 끊임없이 내전을 벌이던 자기 나라 사람들에게 월드컵 기간만이라도 전쟁을 멈춰 달라고 호소했다는구나. 더욱 놀라운 것은 그 호소를 듣고 내전을 벌이던 군인과 정치가들이 정말 휴전을 했고 이듬해에는 협정을 맺어 내전을 끝냈다는 사실이야."
- ▲ 코트디부아르는 1990년대부터 군부 쿠데타가 잇따르며 혼란이 계속되었어요. 2002년부터 5년간 벌어진 내전으로 수만명이 희생되고, 70만명에 달하는 난민이 발생했다고 해요. /Patrick Robert/Corbis
코트디부아르는 아프리카 서부 기니만(灣) 연안에 있는 아름다운 나라예요. 코트디부아르(Cote d'Ivoire)라는 나라 이름은 프랑스어로 '상아 해안'을 뜻합니다. 15세기 후반부터 유럽 열강들이 코트디부아르의 해안에 몰려들어 코끼리의 송곳니인 상아(象牙)를 가져간 데서 유래한 이름이래요. 그런데 나라 이름을 왜 프랑스어로 지었을까요? 그것은 코트디부아르가 1893년부터 60년 넘게 프랑스의 식민지였기 때문입니다.
이 무렵 아프리카 국가 대부분은 유럽 열강의 식민지가 되었어요. 코트디부아르를 비롯하여 알제리·튀니지·모로코 등은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고, 수단·탄자니아·케냐 등은 영국의 지배를 받았지요. 그 밖에도 이탈리아·벨기에·스페인·포르투갈 같은 유럽 국가들이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았어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아프리카 각지에서 민족해방운동이 펼쳐지면서 1951년 리비아를 시작으로 많은 나라가 독립하였습니다.
30년 이상 장기 집권하였던 우푸에 부아니가 1993년 사망하자 당시 국회의장이던 앙리 코낭 베디에가 정권을 잡습니다. 베디에는 1995년 실시한 대선에서 96%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돼요. 하지만 그는 정치적 억압과 부정부패로 큰 비난을 받았지요. 1999년엔 참모총장을 지낸 로베르 구에이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는 등 군부 쿠데타가 이어지면서 정치·사회적 혼란이 계속되었어요. 이후 2000년 대선에서 로랑 그바그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는데, 반대파인 북부 반군이 대선 결과에 불복하면서 2002년에 본격적인 내전이 발발했다고 해요. 5년간 지속한 내전은 2007년 평화협정이 체결되면서 겨우 잦아들었습니다.
"아빠, 사람들은 누구나 전쟁보다 평화가 더 좋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이 세상에는 왜 전쟁이 끊이질 않는 걸까요?"
"오랫동안 전쟁의 역사를 연구해온 영국 역사학자 마이클 하워드는 사실 인류가 전쟁 없이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꿈꾸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라고 지적했단다."
- ▲ 상아 해안에 자리 잡은 코트디부아르의 옛 수도 ‘아비장’이에요. 아비장은 지금도 코트디부아르의 경제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지요. /Corbis/토픽이미지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쓴 '전쟁과 평화'라는 소설도 그런 깨달음에서 나온 거군요. 그렇다면 드로그바 선수야말로 평화를 발명한 사람이네요!"
그날 밤 저는 텔레비전 화면을 가득 채운 드로그바 선수가 환하게 웃는 꿈을 꾸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