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세상

자유의지 없는 삶… 과연 '인간다운 삶'일까?

입력 : 2014.06.25 05:36 | 수정 : 2014.06.25 09:15

[20]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유전자 조작된 인간 만드는 미래
예술 사랑하고 신을 숭배한 야만인 존은 인간성 잃은 문명 세계 대신 원시 선택
유전공학 크게 발달한 요즘… 윤리의식·인간의 존엄성 잃지 말아야

지난 2006년 서울대 수의대팀이 탄생시킨 세계 최초의 복제 암캐 보나·피스·호프의 사진.
지난 2006년 서울대 수의대팀이 탄생시킨 세계 최초의 복제 암캐 보나·피스·호프의 모습이에요. 과학자들은 유전공학 기술이 발달하면 머지않은 미래에 복제인간도 만들어질 수 있다고 예상하지요. /이태경 객원기자

요즘 남아메리카의 브라질에서는 전 세계인의 축제, 월드컵 축구 대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역대 최다 우승국인 브라질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 마치 그들에게는 축구를 잘하는 유전자라도 있는 듯하지요. 최근 미국에서는 '스포츠 유전자(The sports gene)'라는 책이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았어요. 이 책의 저자는 오랜 시간 꾸준히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스포츠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타고난 유전자의 역량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유전공학이 눈부시게 발달하면서 생명체의 다양한 특성이 유전자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 밝혀졌어요. 각종 질병을 치료하는 기술을 중심으로 인간의 유전자 연구가 크게 주목받고 있지요. 그런데 유전자 연구에는 언제나 '윤리성' 문제가 제기됩니다. 최근 일본 연구진은 '인공 자궁'에서 염소를 열흘 동안이나 생존시켰다고 해요.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요즘, 일부 과학자들은 인공 자궁이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합니다. 여기에 유전자 조작 기술이 더해지면 축구 천재, 음악 천재, 공부 천재를 만들어낼지도 모를 일이지요. 그런데 이러한 미래가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요? 아기를 '출산'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 자궁에서 '출고'하는 시대가 정말 인류의 유토피아(낙원)일까요? 1932년 출간된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를 보며 함께 생각해봐요.

'멋진 신세계'가 그리는 사회는 과학기술이 극도로 발달한 문명 세계예요. 이 사회의 구성원은 알파·베타·감마·델타·엡실론의 다섯 계급으로 구성되었어요. 최고 지배층인 알파 계급은 뛰어난 지능과 일정한 자유의지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가장 낮은 계급 엡실론은 지능도 낮고 자유의지도 없는 상태이지요. 이들은 인공 부화를 통해 계급별로 표준화되어 대량생산됩니다.

"아기들은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책과 꽃에 대한 '본능적' 증오심을 가지고 성장할 것입니다. 영구불변하게 심어준 조건반사인 것입니다. 그들은 평생 책이나 식물로부터 안전할 것입니다." (중략) "우리는 대중이 전원을 증오하도록 훈련합니다"라고 소장은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동시에 전원의 스포츠를 사랑하도록 훈련합니다. 그런데 전원의 스포츠에는 반드시 복잡한 장비를 사용하도록 마련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대중은 운송 기관뿐 아니라 공업 제품을 소비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러한 전기 쇼크가 행해지는 것입니다."

기사 관련 일러스트
그림=이병익

'멋진 신세계' 속 사회에서는 이렇게 수면 교육, 조건반사 교육을 통해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를 아이들에게 주입합니다. 효율적이고 안정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지요. 사회 구성원은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며 갈등 없이 풍요롭고 안전하게 살아갑니다. 얼핏 보면 이곳이 정말 멋진 세계라는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독일 철학자 칸트는 "이성적 존재라면 자신과 타인 모두를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로 대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이 말에 따르면, 인간이 사회의 필요에 의해 '제조'되고 자율성과 자유의지를 제거당한 채 로봇처럼 살아가는 모습은 결코 존엄하고 이성적인 인간의 모습이 아니지요.

이렇게 평온하기만 한 '멋진 신세계'에 어느 날 야만인 '존'이 나타납니다. 존은 인공 배양실이 아닌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어요. 그가 살던 야만인 보호 구역은 거칠고 지저분하며 무질서한 곳입니다. 존은 야만인 보호 구역을 방문한 문명인 버나드를 따라 문명 세계로 오게 됩니다. 그러나 멋진 곳으로만 생각하던 문명 세계의 실체를 알고는 큰 충격을 받지요.

"인간들은 행복해. 그들은 원하는 것을 얻고 있단 말일세. 얻을 수 없는 것은 원하지도 않아. 그들은 잘살고 있어. 생활이 안정되고 질병도 없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행복하게도 격정이니 노령이란 것을 모르고 살지. 모친이나 부친 때문에 괴로워하지도 않아. 아내라든가 자식이라든가 연인과 같은 격렬한 감정의 대상도 없어. 그들은 조건반사 교육을 받아서 사실상 마땅히 행동해야만 되는 것을 하지 않을 수 없어. 뭔가가 잘못되면 '소마'가 있지."

존은 야만인의 세계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으며 예술의 위대함을 동경하고, 신을 숭배하며 타인에게 우정과 사랑을 느끼던 인물이에요. 그가 보기에 문명인들은 쾌락을 주는 물질적 조건에 안주하면서 인간성을 상실한 바보였지요. 결국 그는 총통에게 안락함 대신 신과 자유와 선을 원한다며 자신에게 불행해질 권리, 온갖 고민에 시달릴 권리를 달라고 요구하며 문명 세계를 떠납니다. 원시적인 삶일지라도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고자 한 것이지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도 혹시 '멋진 신세계' 속 문명 세계를 향해 가는 것은 아닐까요?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깊이 고민해 보세요.

[함께 생각해봐요]

존 스튜어트 밀은 "배부른 돼지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배고픈 사람이 되는 것이 낫고, 만족한 바보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낫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멋진 신세계’의 내용과 관련지어 생각해 보세요.

최혜정 | 한우리독서토론논술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