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1400년 전 김유신도 축구 시합한 것 아시나요
입력 : 2014.06.16 05:38
| 수정 : 2014.06.16 09:10
고대 동양서 주로 즐겼던 축국… 가죽 공을 발로 차는 놀이로 오늘날 축구경기와 비슷해요
축국으로 김춘추의 처남 된 김유신… 훗날 김춘추의 아들(문무왕)과 삼국통일 하죠
지난주 금요일, 남아메리카 브라질에서 월드컵 축구 대회가 개막했어요. 우리나라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축구 강국으로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4강에 오르는 놀라운 성적을 거둔 바 있어요. 이번 대회에도 본선에 올라 지난 남아공월드컵에 이어 16강 진출을 기대하지요.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약 1400년 전 우리나라에서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건이 된 축구 시합이 열렸다는 것을 아나요? 삼국시대 사람들이 축구를 했다는 것도 믿기 어려운데, 역사적인 축구 시합이라니…. 진짜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요? 그렇다면 삼국시대의 역사적인 축구 시합을 구경하러 625년 무렵의 경주로 떠나 볼까요?
◇김유신과 김춘추가 벌인 '축국' 시합
"춘추공이 공을 잡았다! 어서 가서 막아라!"
"아니, 막지 마라! 춘추공은 유신공이 막을 것이다."
"아무나 막으면 되지, 춘추공의 공격을 왜 꼭 유신공이 막아야 한단 말인가?"
"우리 편 작전이야. 다 숨은 뜻이 있지."
◇김유신과 김춘추가 벌인 '축국' 시합
"춘추공이 공을 잡았다! 어서 가서 막아라!"
"아니, 막지 마라! 춘추공은 유신공이 막을 것이다."
"아무나 막으면 되지, 춘추공의 공격을 왜 꼭 유신공이 막아야 한단 말인가?"
"우리 편 작전이야. 다 숨은 뜻이 있지."
- ▲ /그림=이창우
◇김춘추와 문희의 만남
김유신은 김춘추와 축국을 하던 중에 일부러 헛발질하는 척하며 김춘추의 옷끈을 밟아 떨어뜨렸다고 해요. 그리고 무척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김춘추에게 말했지요. "제 실수로 그만 옷끈이 떨어지고 말았으니 제 집에서 꿰매 드리겠습니다."
김유신은 괜찮다며 사양하는 김춘추를 집으로 데려갔어요. 김유신은 보희와 문희라는 두 누이동생을 불러 김춘추에게 소개하고는 언니인 보희에게 옷끈을 꿰매게 했어요. 그러나 보희는 오빠의 속셈을 알아차리고는 이를 거절하지요. 김유신은 하는 수 없이 문희에게 김춘추의 옷끈을 꿰매달라고 부탁해요. 문희는 오빠의 말에 따라 실과 바늘을 가지고 나와 옷끈을 달아줍니다. 김춘추는 바느질하는 문희를 보고 한눈에 반했나 봐요. 그 뒤로 김유신의 집에 자주 드나들었다고 하니까요.
◇축국, 오늘날의 축구와 비슷해요
- ▲ /그림=이창우
◇김유신과 김춘추의 축국, 왜 역사적 사건일까?
김유신이 김춘추와 축국을 하며 옷끈을 밟아 떨어뜨린 것은 그를 누이동생과 맺어주기 위해서였어요. 김유신의 작전대로 김춘추와 김유신의 누이동생 문희는 사랑에 빠졌고, 문희는 김춘추의 아이를 임신하게 돼요. 그 후 김춘추는 문희를 정식 부인으로 맞이한답니다. 누이동생을 김춘추와 결혼시키고 김춘추와 인척 관계를 맺어 가문의 명예와 세력을 높이려던 김유신의 계획이 성공한 것이에요. 어쩌면 나중에 성골이 사라지면, 진골인 김춘추가 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고요.
김유신은 여러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며 강한 군사력을 손에 넣습니다. 그리고 김춘추는 김유신의 도움으로 진덕여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라 신라 제29대 왕인 태종무열왕이 되지요. 김유신의 여동생 문희는 문명왕후가 되었고요. 물론 김유신은 가문의 명예를 높이고 엄청난 권력을 손에 넣습니다. 그리고 문희가 임신하여 낳은 김춘추의 아들이 바로 김유신과 함께 삼국통일을 이룬 신라 제30대 왕 문무왕이에요. 어때요? 김유신과 김춘추의 축국 시합을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부를 만하지요?
[함께 생각해봐요]
김유신은 왕위에 오른 적이 없음에도 훗날 ‘흥무대왕(興武大王)’으로 추존될 정도로 신라 역사에서 큰 업적을 쌓았어요. 신라의 삼국통일 과정에서 김유신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탐구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