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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한 성품처럼… 고양시 산길 끝에 소박하게 자리

입력 : 2014.06.11 05:27 | 수정 : 2014.06.11 09:08

[86] 최영 장군 묘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

황금을 돌같이 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버지의 유언을 평생 가슴에 품고, 정말 황금을 돌같이 여기며 산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최영 장군(1316~1388)입니다. 그는 고려 최고의 관직인 문하시중까지 올랐으면서도 평생을 청렴하게 살아 백성의 존경을 받았어요.

최영 장군이 살던 시대는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 고려 말은 홍건적(紅巾賊)과 왜구가 침입하고, 중국에서 원나라가 망하고 명나라가 세워지면서 나라 안팎이 혼란하여 왕권마저 흔들리던 시기였지요. 어려서부터 체격이 좋고 용감했던 최영 장군은 왜구와 홍건적을 무찌르는 데 큰 공을 세워 고려 우왕의 신임을 받았습니다. 그는 고려의 충신으로 이름 높은 정몽주를 비롯하여 훗날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 정도전 등과 함께 고려를 이끌었지요. 하지만 서로 생각이 달랐던 이들은 결국 '요동 정벌'을 계기로 갈라서고 말아요.

(왼쪽 사진)조선 후기에 그려진 최영 장군 초상이에요. (오른쪽 사진)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최영 장군 묘는 평생 청렴하게 산 장군의 성품처럼 소박한 모습이에요.
(왼쪽 사진)조선 후기에 그려진 최영 장군 초상이에요. (오른쪽 사진)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최영 장군 묘는 평생 청렴하게 산 장군의 성품처럼 소박한 모습이에요. /문화재청·임후남 제공
새로 세워진 명나라가 고려에 철령 이북의 땅을 내놓으라고 요구하자, 최영 장군은 이 기회에 명나라의 요동을 쳐서 고구려의 옛 땅을 되찾자고 주장합니다. 이미 홍건적 등 외적을 물리친 경험이 많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요동 정벌의 책임자로 임명된 이성계는 요동 정벌을 반대합니다. 우왕의 명령으로 어쩔 수 없이 전쟁터에 나간 이성계는 결국 위화도라는 섬에서 군사를 되돌리지요. 이 사건이 조선 건국의 발판이 된 '위화도 회군'(1388년)이에요.

개성으로 돌아온 이성계는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요동 정벌을 위해 많은 군사를 이성계에게 내준 우왕과 최영 장군은 이를 막을 도리가 없었지요. 이성계에 의해 유배를 떠난 최영 장군은 결국 1388년에 처형당하고 맙니다. 죄목은 '무리하게 요동을 정벌하려고 하고, 왕의 말을 우습게 여기며 권세를 탐한 죄'였습니다. 평생 나라를 위해 강직하게 살아온 그는 자신의 죄명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내가 죄 없음은 하늘이 알고 있다. 내 평생 탐욕을 가졌다면 내 무덤에 풀이 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풀이 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최영 장군의 묘에는 오랫동안 풀이 자라지 않았다고 전해져요. 물론 600여년이 지난 지금은 풀이 무성하지요.

최영 장군 묘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대자산 자락에 있어요. 최영 장군 묘를 찾아가는 길목에 아주 큰 묘역이 있어서 헷갈리기 쉬운데, 그곳은 조선 태종의 넷째 아들이자 이성계의 손자인 성녕대군의 묘랍니다. 성녕대군은 우리가 잘 아는 세종대왕의 동생으로, 열네 살 어린 나이에 홍역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해요. 최영 장군 묘는 이곳에서부터 마을 길을 지나, 걷기 좋은 산길을 따라 올라가야 나옵니다. 평생 황금 보기를 돌같이 여긴 장군의 성품처럼 참 소박한 모습이지요. '최영 장군 묘'라는 비석 뒤로는 최영 장군의 아버지이자 고려 후기 문신인 최원직의 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1분 상식] '홍건적(紅巾賊)'이란 누구를 말하나요?

중국 원나라 말기, 차별받고 가난했던 한인과 남인들이 머리에 빨간(紅) 두건(巾)을 두르고 일으킨 반란을 ‘홍건적의 난’이라고 합니다. 홍건적은 한때 중국 내에서 세력을 크게 키웠으나, 내부 분열을 겪으며 통일 정권을 이루지 못했어요. 원나라 군대에 쫓기던 이들은 1359년과 1361년 두 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략했다가 최영·이성계 등 고려 장수에게 격파당해 괴멸하지요. 그러나 홍건적 장수였던 주원장은 살아남아 세력을 키운 뒤 훗날 명나라를 세웁니다. 고려는 홍건적을 크게 물리쳤지만, 두 번의 전쟁을 치르느라 나라 힘이 약해져 결국 멸망의 길을 걷고 말아요.


임후남 |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