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옥의 명작 따라잡기

동물 얼굴에 담아낸 인간의 본성

입력 : 2014.06.06 07:33 | 수정 : 2014.06.06 09:08

동물에 인생과 세월을 빗댄 티치아노, 인간 얼굴 특징을 동물과 비교한 르브룅
의인화로 인간 풍자한 이솝 우화처럼 삶의 교훈과 지혜를 우리에게 전하죠

고대 그리스인 이솝(Aesop)은 동물이 사람처럼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하는 '우화(寓話)'를 남겼어요. 우화란 동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인간의 어리석음을 풍자하거나, 살아가는 데 필요한 교훈과 지혜를 주는 짧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말해요. 미술에서도 인간의 본성을 동물에 비유한 작품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6세기 이탈리아 화가 베첼리오 티치아노는 인생의 3단계를 동물 세 마리에 비유했어요. 작품 1을 보세요.

그림 윗부분에 세 남자의 얼굴이 보이네요. 왼쪽부터 노인의 옆모습, 중년 남자의 앞모습, 소년의 옆모습이 있군요. 사람 얼굴 밑에는 세 동물의 머리가 보여요. 그림 왼쪽부터 늑대의 옆모습, 사자의 앞모습, 개의 옆모습이 보이지요. 왜 그림 한 점에 세 남자의 얼굴과 세 동물의 머리를 모두 그렸을까요? 인생을 현명하고 지혜롭게 살아가라는 교훈을 주기 위해서예요. 세 남자의 얼굴은 인생의 3단계인 노년기, 중·장년기, 소년기를 의미해요. 그와 동시에 과거, 현재, 미래를 상징하기도 하지요. 흥미로운 점은 인생의 3단계와 시간의 흐름을 동물 모습을 빌려 표현했다는 것이에요. 경험이 많고 신중하게 행동하는 노년기는 늑대, 삶의 에너지가 넘치는 중·장년기는 사자, 희망과 기대에 찬 소년기는 개에 비유했거든요. 그림 속에는 인간과 동물을 결합하여 초상화를 그린 작가의 의도가 적혀 있어요. 그림 맨 위에 적힌 라틴어는 '과거의 경험에서 배움을 얻어 현재에 지혜롭게 행동하면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지요.

작품 1~4.
17세기 프랑스 화가 샤를 르브룅은 인간의 성격과 행동을 동물의 얼굴과 비교한 그림을 남겼어요. 그는 인간의 얼굴에 나타난 특징을 관찰하고 분석한 다음 다양한 동물의 얼굴로 표현했지요. 인간과 당나귀의 얼굴을 비교한 작품 2는 '인간 동물 연작' 중 한 점입니다. 그는 왜 인간을 동물과 비교한 그림을 그렸을까요? 어떤 동물의 특성이 얼굴에 나타나는 사람은 그 동물과 비슷한 본성을 가졌다고 믿었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늑대 특성이 얼굴에 나타나는 사람은 성격이 어둡고 음흉한 행동을 한다고 보았던 것이지요. 이 그림은 사람의 얼굴, 행동, 성격의 특징을 파악하고 이를 동물에 비유하는 관상법을 떠올리게 하네요. "매의 눈을 가졌다"거나 "동물로 치면 돼지상이다"고 말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이 그림은 미술로 보는 동물 관상(觀相)이라고 부를 수 있겠어요.

미국 사진작가 윌리엄 웨그먼은 인간과 동물이 사이좋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고자 의인화된 개를 작품에 표현합니다. 작품 3에서 사람 모자를 쓰고 마치 패션모델 같은 자세를 취한 개는 그의 반려견이에요. 웨그먼은 1970년 미국 캘리포니아주(州)의 항구도시 롱비치 해변에서 발견한 유기견을 입양했어요. 그 개에게 미국의 유명 사진작가인 만 레이의 이름을 붙여주고, 연기 수업을 받게 한 후 사진 전문 모델로 만들었지요. 지금은 만 레이의 후손이 3대(代)째 사진 전문 모델로 활동하고 있어요. 웨그먼은 개가 네 발 달린 친구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자, 인물 사진을 찍을 때와 똑같은 기법으로 반려견을 촬영합니다. 개가 사람처럼 예술 작품의 주인공이 되는 영광을 누릴 수 있도록 말이에요. 사람들은 익살스럽고 유쾌한 감동을 안겨주는 개 초상 전문 사진가 웨그먼에게 '개의 동반자'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답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 화가 성유진도 인간을 동물에 비유하는 그림을 그립니다. 작품 4에는 고양이 인간이 등장했어요. 고양이 인간은 쓸쓸한 표정으로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네요. 의인화된 고양이는 성유진 화가의 자화상이랍니다. 왜 자신을 고양이 모습을 빌려 표현했을까요? 그녀는 대학 시절 우울증에 걸려 큰 고통을 겪었어요. 애완 고양이를 키우면 우울증을 이겨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2006년 수고양이 '샴비'를 입양했다고 해요. 샴비가 인생의 동반자가 되고부터 자기 모습을 닮은 고양이가 그림에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고양이 인간이 우울한 표정을 지은 것은 우울증을 앓았던 화가의 모습이 담겼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고양이 그림은 화가의 생활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피하지 않게 되고, 성격도 밝아졌어요. 우울증도 이겨낼 수 있었지요. 이 그림은 동물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어요.

생물학자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인간과 동물'이라는 책에서 '인간은 20여만 년 전에 태어난 막둥이지만, 동물은 수천만 년 혹은 수억 년 먼저 태어난 대선배'라고 말했어요. 인간보다 훨씬 먼저 태어나 온갖 문제에 부딪히며 이를 해결한 선배 동물에게서 '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을 구하라고 했지요. 그는 예술가들이 인간 동물을 창조한 이유를 알려준 셈이에요.

이명옥 | 사비나 미술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