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세상
장 발장의 도둑질… 굶주림·혼란 판치는 사회 탓이었죠
[17] 빅토르 위고 '레 미제라블'
혁명·전쟁 계속된 1800년대 프랑스… 처벌 강화해도 생계형 범죄자 더 늘어
장 발장, 19년 형 살고 또 도둑질했죠
임무와 양심 사이에서 갈등한 자베르, 바른 '직업윤리'란 무엇인지 고민해야
최근 법무부에서는 대규모 인명 피해를 일으킨 범죄자를 더욱 엄중하게 처벌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그동안 발생한 대형 참사에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 것이 이러한 사고를 키웠다는 비판 때문이에요. 물론 이러한 지적에도 일리가 있어요. 하지만 강력한 처벌만으로 범죄를 모두 막을 수 있을까요? 범죄는 오직 개인의 도덕성이 부족한 탓에 벌어지는 것일까요?
19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다가 출소한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조카들에게 먹일 빵을 훔쳤다가 감옥에 갇혔지요. 처음에는 5년 형을 선고받았지만, 굶주릴 조카들이 걱정돼 몇 차례 탈옥을 시도하였다가 형량이 늘어난 거예요. 이 사람은 바로 소설 '레 미제라블'의 주인공 장 발장입니다. 그는 누나와 조카들을 부양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지만, 끼니조차 해결할 수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빵집에 가득 쌓인 빵을 보고는 그만 유리를 깨고 빵을 훔치고 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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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이병익
감옥에서 출소한 뒤에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어요. 이제는 범죄자의 징표인 누런 통행권까지 가지고 다녀야 했기 때문에 장 발장은 잠자리조차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거리를 헤매던 그는 결국 유일하게 친절을 베푼 미리엘 주교의 은그릇마저 훔쳐 달아나요. 절도죄로 가혹한 형벌을 받고서도 출소하자마자 다시 같은 죄를 저지른 거예요.
이 소설의 배경이 된 1800년대 프랑스의 현실은 시민에게 매우 가혹했어요. 1789년 프랑스혁명이 발발했지만, 일반 시민의 삶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지요. 국가가 혁명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처형하고 이웃 나라와 전쟁을 벌이는 동안, 시민은 굶주림과 혼란을 견뎌야만 했습니다. 장 발장이 미리엘 주교를 만난 1815년은 워털루 전투에서 패한 나폴레옹이 물러나고, 루이 18세가 즉위하여 봉건적 왕정을 지지하는 왕당파와 이를 반대하는 공화파 간의 싸움이 벌어지던 시기였어요. 이러한 혼란 속에서 시민은 굶주리다 못해 범죄를 저지르기 일쑤였고, 이를 막기 위해 국가가 강력한 처벌을 동원하면서 장 발장 같은 생계형 범죄자가 늘었지요.
국가가 범죄자를 처벌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요. 범죄자에게 합당한 죗값을 치르게 하는 것 외에도, 그를 교화하여 다시 죄를 저지르는 것을 막고, 다른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어 범죄를 예방하는 데 그 목적이 있지요. 그러나 시민이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면서도 정상적인 삶을 누릴 수 없는 사회라면, 아무리 강력한 처벌을 하더라도 범죄를 막을 수 없을 거예요.
지금 우리 사회는 장 발장이 살던 시대에 비하면 눈부시게 풍요롭고 민주적인 사회라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극단적인 양극화와 일자리 문제, 물질 만능주의와 인간소외 현상 등 사회구조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아요. 최근 경제 불황으로 '아기 분유 절도' 같은 생계형 범죄가 늘었다는 보도를 보면 이를 더욱 절실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근본적인 원인을 외면하면, 아무리 처벌을 강화해도 범죄를 줄일 수 없다는 뜻이에요.
대형 참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고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죗값을 엄히 물어야 하지만, 이와 함께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을 성찰하고 바로잡아야 해요. '안전 불감증' '생명 경시 풍조' '물질 만능주의' '직업윤리 상실' 등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사고를 일으킨 진짜 이유를 찾아 개선해 나가야 합니다.
#이야기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사람이 '직업윤리'를 강조해요.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이 비난받는 이유는 그들이 살아남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승객을 구하기 위해 그 어떤 기본적인 노력조차 하지 않고 제 몸 챙기기에만 급급했기 때문이지요. '직업윤리'란 자신에게 부과된 임무에 맹목적으로 충실한 것만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임무를 수행하다 보면 '레 미제라블'의 자베르 경감처럼 딜레마에 빠지는 경우도 종종 생기기 때문이에요. 자베르 경감은 사회질서의 수호자로서 법을 어기는 이들을 냉혹하게 심판합니다. 그것이 경찰이 지켜야 하는 직업윤리라고 생각한 거예요. 그런데 장 발장을 추적하며 이러한 생각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범죄자인 장 발장이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자 고민은 더욱 깊어져요. 자신이 '절대 선(善)'이라고 생각했던 법질서와 현실의 괴리 속에 갈등을 느낀 것이지요. 여러분이 만약 자베르 경감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자베르 경감은 범죄는 오로지 개인이 부도덕한 탓에 일어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장 발장처럼 한 번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언제든 다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악인으로 여겼지요. 그러나 범죄자였음에도 이제는 훌륭한 인격자가 된 장 발장을 통해 비록 한 번 법을 어겼더라도 자신의 양심에 따라 도덕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장 발장은 그를 당황하게 하였다. 그의 일생의 지주(支柱)가 되어 있던 공리(公理)가 하나도 남김 없이 이 사나이 앞에서 무너져 버린 것이다. (중략) 마들렌씨의 모습이 다시 장 발장의 등 뒤에 나타나, 두 모습이 서로 겹쳐 단 하나의 존경해야 할 모습으로 바뀌어 버렸다. 자베르는 무언가 무서운 것이 영혼 속에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범죄자를 존경하는 감정이었다. 범죄자에 대한 존경, 그런 것이 있을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되자 몸이 떨렸다. 그의 가장 큰 괴로움은 확신을 갖지 못하게 된 일이었다. 왠지 모르게 뿌리째 뽑혀 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가 지금까지 의존해 왔던 법전(法典)도 이제 산산이 조각난 파편이 되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자신의 임무와 양심 사이에서 고뇌하던 자베르는 결국 장 발장을 놓아주고는 자신의 임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괴로움에 자살을 선택합니다. 이처럼 '직업윤리'는 자신의 직업에 부과된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기만 하면 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에요.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사회적인 배경과 맥락 속에서 끊임없이 성찰하고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함께 생각해봐요]
미리엘 주교는 장 발장의 범죄를 덮어 주고 그에게 은촛대까지 선물합니다. 반면 자베르는 장 발장의 범죄를 밝히고, 그를 벌하기 위해 애쓰지요. 지금 우리 사회에 좀 더 필요한 인물은 미리엘 주교와 자베르 중 누구일까요?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정리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