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세계사

우리 동네 주인은 '나'… 지방자치의 시작이죠

입력 : 2014.05.30 05:32 | 수정 : 2014.05.30 09:17

[지방자치]

주민이 지역 일에 참여하는 지방정부, 각 지방 통합하고 이어주는 중앙정부
약한 나라 침략해 탄생한 로마제국… 지방을 속주 삼아 통제해 반발 사기도
지방 의미하는 영어 단어 'province'… 속주 뜻하는 라틴어 'provincia'서 유래

학교에서 돌아오는데 스피커를 단 차가 거리를 달리며 한바탕 연설을 쏟아냈어요.

"돌아오는 6월 4일은 우리 지역의 일꾼을 뽑는 전국 동시 지방선거 날입니다!"

그 말을 듣고 학교에서 '지방자치'에 대해 배운 게 생각났지요. 그리고 그 순간 다른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지방'과 '지역'은 어떻게 다를까요? 학교에서는 '지방자치'란 자기가 사는 '지역'을 주민 스스로 다스리는 제도, 즉 자기 지역의 일을 지역 주민이 스스로 결정하고 처리하는 제도를 말한다고 배웠거든요. 그렇다면 왜 '지역자치'라 하지 않고 '지방자치'라고 할까요? 궁금증이 생긴 저는 집에 오자마자 국어사전을 들고 '지방'과 '지역'을 찾기 시작했어요. 먼저 '지방'을 찾았더니, 제 생각보다 훨씬 많은 말이 있네요! '지방산과 글리세롤이 결합한 유기 화합물' '종잇조각에 지방문을 써서 만든 신주(神主)'처럼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말도 있고, '길가에 움푹 패어 있어 빠지기 쉬운 개울'처럼 처음 듣는 말도 있어요.

그렇다면 '지방자치'의 '지방'은 무슨 뜻일까요? '서울 이외의 지역'이라는 짧은 풀이도 있고, '중앙의 지도를 받는 아래 단위의 기구나 조직을 중앙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이라는 긴 풀이도 있습니다. 사전을 찾을수록 궁금증이 풀리기는커녕 더 커지기만 하네요.

지난 9일 서울 종로구청에서 열린 사전투표 체험 모습이에요.
다음 주 수요일(6월 4일)에 전국 동시 지방선거가 시행돼요. 지방선거는 주민이 직접 해당 자치단체의 장(長)과 지방의회 의원을 뽑는 선거이지요. 사진은 지난 9일 서울 종로구청에서 열린 사전투표 체험 모습이에요. /성형주 기자
"엄마, 사전을 찾아보니 '지방'은 '서울 이외의 지역'이라는 뜻인데, 왜 서울에서도 지방선거를 해요?"

엄마는 호기심 박사인 아들을 기특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대답하셨어요.

"그럴 때 '서울'이라는 말은 우리가 사는 '서울특별시'라는 지역을 말하는 게 아니라 '수도(首都)', 그러니까 청와대와 중앙정부, 국회의사당 등이 있는 한 나라의 중심을 뜻하는 말일 거야."

엄마 말씀도 어렵긴 하지만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중앙정부에 대해서는 서울시도 부산시나 경기도, 제주도처럼 그 밑에 있는 지방자치단체라는 말이지요. '지역'은 그냥 지도 상의 어떤 지점에 있는 곳을 객관적으로 가리키는 말인데, '지방'이란 단어에는 중앙정부 아래에 있다는 뜻이 담긴 것이에요.

그때 마침 아빠께서 회사에서 돌아오셨어요. 저는 기다렸다는 듯이 아빠께도 질문 공세를 퍼부었지요.

"아빠, 다 똑같은 땅인데 왜 어디는 서울(수도)이 되고, 어디는 지방이 되었어요?"

아빠께서도 아주 기특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저를 보시며 대답하셨어요.

"아주 오랜 옛날, 사람들이 작은 마을을 이루고 살 때는 서울과 지방의 구분이 없었을 거야. 당시 사람들에게는 자기가 사는 마을이 전부였을 테니까. 그러다가 마을과 마을이 합해져 큰 고을이 되고, 고을과 고을이 모여서 나라를 이루었단다. 그러면서 나라 전체를 이끌고 갈 중심이 필요해졌지. 그게 바로 한 나라의 서울, 즉 수도였던 거야."

먼 옛날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도, 중국 등지에서 문명이 발생했을 무렵, 사람들은 신전을 중심으로 도시를 이루었어요. 이 도시는 주변 마을을 아우르는 중심이 되었고, 도시와 마을이 모여 하나의 국가를 이루게 되었답니다.

"문제는 국가가 만들어질 때 모든 마을이나 고을이 자발적으로, 그리고 평화적으로 합쳐지지는 않았다는 거야. 때로는 전쟁을 벌여 다른 고을을 통합하기도 했고,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침략하여 정복하기도 했지. 그러면 정복당한 나라가 정복한 나라의 지방이 되었단다."

그런 정복 활동이 이어지면서 로마제국이나 중국 한(漢)나라 같은 커다란 제국이 생겨났어요. 로마제국의 황제는 수도인 로마에 자리 잡고 여러 지방을 속주(屬州)로 삼아 다스렸지요. 속주를 라틴어로 '프로빈키아(provincia)'라고 하는데, 이 말이 오늘날 지방을 뜻하는 영어 단어 'province'의 유래랍니다. 프랑스에는 그 말이 그대로 남아 '프로방스'라고 부르는 지역이 있대요.

프랑스 프로방스 지역에 있는 로마 원형 극장이에요.
프랑스 프로방스 지역에 있는 로마 원형 극장이에요.‘ 프로방스(Provence)’란 이름은 로마제국의 속주를 뜻하는‘프로빈키아(provincia)’에서 유래했대요. /Corbis 토픽이미지
"강제로 통합된 지방 사람들은 중앙정부에 강하게 저항하기도 했어. 그래서 옛날 큰 나라의 지도자들은 지방을 통제하는 갖가지 방법을 고민했단다. 중국에서는 지방을 다스리는 데 두 가지 방법을 사용했지. 하나는 황제의 친·인척에게 지방을 나눠주어 다스리게 하는 봉건제, 또 하나는 중앙에서 직접 관리를 파견해 다스리는 군현제였단다."

뒤늦게 학원에서 돌아와 아빠 말씀을 듣던 누나가 물었어요.

"옛날에는 황제나 왕이 나라를 다스렸지만, 지금은 민주주의 시대잖아요?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 시대가 아니니까 중앙과 지방의 구분도 없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나라가 잘 운영되려면 지방과 지방을 이어주고 통합하는 중앙, 즉 수도의 기능은 꼭 필요하단다. 하지만 수도가 명령하고 지방은 따르기만 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어긋나는 게 분명하지. 그래서 지방자치를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한단다. 중앙의 지시와 감독만 받는 것이 아니라 각 지역 사람들이 자기 지역의 주인이 되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게 바로 지방자치 제도거든."

아, 이제 제 의문은 다 풀렸어요. 지방자치가 왜 중요한지도 알게 되었고요. 저랑 누나는 투표할 수 없지만, 이제부터 우리가 동네와 학교의 주인이라는 생각으로 주변에서 필요한 게 무엇인지 꼼꼼히 살펴야겠어요. 역사 속에서 서울과 지방은 지배하고 저항하는 관계로 서로 미워할 때가 적지 않았다는데, 그건 너무 끔찍한 일 아닐까요? 서로 존중하고 평화롭게 화합하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강응천 | 세계사 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