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세상
경쟁 벗어나 이웃들과 '식구' 되어 볼까요?
입력 : 2014.05.21 05:44
| 수정 : 2014.05.21 09:12
[15] 사상가 '묵자'
중국 춘추전국시대 사상가 '묵자'
각자 이익만 챙겨 나라 혼란하다 생각… 서로 사랑하고 나누어야 한다고 했죠
경쟁으로 공동체 정신 사라지는 요즘 남 배려하고 함께하는 마음 필요해요
인류는 항상 지금보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어요.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답니다. 하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좋은 생각과 행동 또는 사물을 가다듬고 키워나가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나쁜 생각과 행동 또는 사물을 억누르거나 하나씩 없애 나가는 방식이에요. 물론 착한 마음을 기르고 세상에 이로운 물건을 많이 만들며, 악한 마음을 갖지 않고 세상에 해로운 물건을 없앤다면 세상이 몇 배 더 살기 좋아질 테지요.
중국 춘추전국시대에도 마찬가지였어요. 춘추전국시대란 기원전 770년경부터 약 500년간 여러 제후국이 서로 중국을 통일하기 위해 다투던 시기를 말해요. 각국의 제후는 부유하고 강한 나라를 만들고자 애쓰며, 훌륭한 인재를 등용하려고 노력했어요. 이때 제자백가(諸子百家)라는 일련의 사상가들이 등장하여 제후들에게 어지러운 세상을 헤쳐나가는 방법을 제시했답니다. 제자백가란 셀 수 없이 많은 사상가와 그 제자를 가리키는 말로, 공자(孔子)·노자(老子)·한비자(韓非子) 같은 사람들을 가리켜요. 이 가운데 어떤 사상가는 강력한 군대와 엄격한 법질서로 다른 나라를 제압하자고 주장하고, 어떤 사상가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백성을 아껴야 한다고 주장했지요. 당시 숱한 전쟁으로 백성의 삶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기 때문이에요. 여러분이 제후였다면, 이런 경우에 어떻게 했을까요? 강한 힘으로 빨리 통일을 이루어 정치적 안정을 이룰 것인가요, 아니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평화로운 방법으로 전쟁이 사라지게 할 건가요?
중국 춘추전국시대에도 마찬가지였어요. 춘추전국시대란 기원전 770년경부터 약 500년간 여러 제후국이 서로 중국을 통일하기 위해 다투던 시기를 말해요. 각국의 제후는 부유하고 강한 나라를 만들고자 애쓰며, 훌륭한 인재를 등용하려고 노력했어요. 이때 제자백가(諸子百家)라는 일련의 사상가들이 등장하여 제후들에게 어지러운 세상을 헤쳐나가는 방법을 제시했답니다. 제자백가란 셀 수 없이 많은 사상가와 그 제자를 가리키는 말로, 공자(孔子)·노자(老子)·한비자(韓非子) 같은 사람들을 가리켜요. 이 가운데 어떤 사상가는 강력한 군대와 엄격한 법질서로 다른 나라를 제압하자고 주장하고, 어떤 사상가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백성을 아껴야 한다고 주장했지요. 당시 숱한 전쟁으로 백성의 삶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기 때문이에요. 여러분이 제후였다면, 이런 경우에 어떻게 했을까요? 강한 힘으로 빨리 통일을 이루어 정치적 안정을 이룰 것인가요, 아니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평화로운 방법으로 전쟁이 사라지게 할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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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이병익
만일 세상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게 할 수 있다면 나라와 나라 사이에 전쟁이 사라질 것이고, 가정과 가정 사이에 다툼이 사라질 것이며, 도적이 사라지고, 임금과 신하, 그리고 부모와 자녀 사이에 효도와 자애가 충만할 것이다(使天下兼相愛 國與國不相攻 家與家不相亂 盜賊無有 君臣父子 皆能孝慈).
그런데 '차별 없는 사랑'이라는 말은 사람들의 비판을 받기 쉬운 말이었어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과 내 가족이 물에 빠졌을 때 여러분은 누구를 먼저 구할까요? 며칠 동안 굶주린 상태에서 빵을 얻는다면 싫어하는 사람에게 선뜻 그 빵을 나눠 줄 수 있을까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먼저 나눠 주려고 하지 않을까요? 인간은 대체로 자기와 친한 사람, 혹은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부터 챙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에요. 여러 사상가는 이러한 인간의 이기적 본성을 들어 묵자를 비판하였습니다.
#이야기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전쟁은 없지만, 그 대신 사람들 사이에 너무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는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고 차별 없이 사랑하라'는 말을 따르기가 참 어렵답니다. 만약 여러분이 취직 시험을 치를 때, 취업을 절실하게 원하는 옆 사람을 위해 면접을 대충 본다면 오히려 '바보'라고 손가락질당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이렇게 경쟁이 치열한 사회가 결코 바람직하다고는 볼 수 없어요. 개인만 중시하는 이기적인 생각이 너무 강해지면 공동체 정신이 무너지기 때문이지요. 학생들이 학교 성적을 잘 받기 위해 수행평가를 남의 손에 맡기는 등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편법을 쓰는 사람들도 많아질 거예요. 내 이익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의 삶은 어찌 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늘어나지요. 개인의 힘으로는 이런 상태를 바꾸기 어렵다고 해서 그대로 두고 보아서도 안 됩니다. 묵자가 춘추전국시대를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고심했듯 우리도 왜 우리 사회가 이러한 모습이 되었는지를 돌이켜 봐야 하지요. 나만을 위하는 생각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한 때입니다.
묵자가 주장했던 차별 없는 사랑을 실천하기가 어렵다면, 우선 내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하는 마음'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한국은 전통적으로 가족을 지칭할 때 '함께 밥을 먹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식구(食口)'라는 말을 썼어요. 친척이나 혈육뿐만 아니라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웃이나 지나가는 손님도 기꺼이 환영했습니다. 밥을 함께 먹으며 마음도 나눌 수 있었지요. 소소하지만, 다른 사람과 친근감을 나눌 수 있는 방법이었어요. 낯선 사람도 함께 밥을 먹으면 정을 나눌 수 있고, 그렇게 만나 대화를 나누다 보면 서로를 이해할 가능성도 커지거든요.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사랑할 수는 없더라도 주변의 여러 사람을 '식구'처럼 대한다면, 치열한 경쟁에서 벗어나 조금 더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요? 공동체가 커다란 식구처럼 살아간다면, 묵자가 원하던 세상과 다르지 않을 거예요.
[함께 생각해봐요]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손해를 보지 않고, 홀로 성공하여 번듯하게 사는 사람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어요.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내가 조금 손해 보더라도 남을 배려하며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