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세계사
공자·노자·장자… 전쟁이 키운 사상가들
입력 : 2014.05.16 05:36
| 수정 : 2014.05.16 08:59
[제자백가]
전쟁으로 혼란했던 춘추전국시대… 강하고 부유한 나라 만들기 위해서 국적·신분 구분 없이 인재 발굴했죠
유가·도가 등 새 학풍 만든 '제자백가'… 후대 중국 사회에도 많은 영향 줬어요
어제는 스승의날이었어요. 우리나라 스승의날은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이 태어난 날이지요. 다른 나라들도 교육 발전을 위해 힘쓴 사람이 태어난 날이나 숨진 날을 스승의날로 정하여 기념하고 있어요. 최근 중국에서는 공자가 태어난 9월 28일을 스승의날로 정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사마천이 쓴 역사책 '사기(史記)'에 따르면, 공자는 제자를 3000명 거느렸다고 해요. 제자가 아주 많았다는 의미이지요.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교육했고, 제자의 특성에 따라 방법을 달리하여 가르쳤던 공자의 교육법은 오늘날에도 귀감이 됩니다. 그런데 공자가 활동하던 시기, 중국에는 공자 말고도 수많은 선생님이 있었어요. 오늘은 '춘추전국(春秋戰國)'이라고 하는 시대에 중국에서 어떤 선생님들이 활약했는지 살펴보기로 해요.
춘추전국시대는 기원전 770년부터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기원전 221년까지 매우 혼란했던 시기를 말해요. 중국 역사상 가장 긴 분열의 시대였지요. 이 시기에는 수십 나라가 중국을 차지하고자 서로 다퉜답니다. 춘추시대에는 제(齊), 진(晉), 초(楚), 오(吳), 월(越) 등 다섯 나라가, 전국시대에는 제(齊), 초(楚), 진(秦), 연(燕), 위(魏), 한(韓), 조(趙) 등 일곱 나라가 세력을 떨쳤지요. 그런데 이 나라들이 끊임없이 전쟁을 하려면 많은 것이 필요했어요. 강한 군대와 많은 식량, 새로운 무기 그리고 지략을 갖춘 지도자 등 무엇 하나 빠짐없이 갖추어야만 강한 나라가 되어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 시기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어요. 당시 정치 상황은 매우 혼란했지만, 혼란한 만큼 많은 분야에서 큰 발전을 이루었거든요.
춘추전국시대는 기원전 770년부터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기원전 221년까지 매우 혼란했던 시기를 말해요. 중국 역사상 가장 긴 분열의 시대였지요. 이 시기에는 수십 나라가 중국을 차지하고자 서로 다퉜답니다. 춘추시대에는 제(齊), 진(晉), 초(楚), 오(吳), 월(越) 등 다섯 나라가, 전국시대에는 제(齊), 초(楚), 진(秦), 연(燕), 위(魏), 한(韓), 조(趙) 등 일곱 나라가 세력을 떨쳤지요. 그런데 이 나라들이 끊임없이 전쟁을 하려면 많은 것이 필요했어요. 강한 군대와 많은 식량, 새로운 무기 그리고 지략을 갖춘 지도자 등 무엇 하나 빠짐없이 갖추어야만 강한 나라가 되어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 시기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어요. 당시 정치 상황은 매우 혼란했지만, 혼란한 만큼 많은 분야에서 큰 발전을 이루었거든요.
- ▲ 공자는 3000명의 제자를 두었는데, 제자의 특성에 따라 교육법을 달리하여 가르쳤다고 해요. /Corbis 토픽이미지
한편 각 나라의 제후들은 국적과 신분을 따지지 않고 인재라고 여겨지는 학자를 받아들여 벼슬을 주었어요. 신분보다는 능력이 중요한 사회였지요. 많은 학자가 강하고 부유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이 나라 저 나라를 찾아다녔습니다. 학자와 선생님에게는 존경한다는 의미로 '자(子)'라는 칭호를 주었는데, 이때 공자(孔子), 맹자(孟子), 노자(老子), 장자(莊子), 묵자(墨子), 한비자(韓非子) 등 여러 선생님이 등장했답니다. 그리고 이들이 제자들을 이끌며 새로운 학풍을 만드는 것을 '가(家)'라고 하였어요. 이 시기에 많은 선생님이 여러 가지 학풍을 만들면서 동양 사상이 크게 발전하였다는 의미로 '제자백가(諸子百家)'라는 말을 쓴답니다.
'이 혼란한 세상을 어떻게 다스리면 좋을까요?'라는 제후들의 물음에 학자들은 마치 새들이 울듯이 앞다투어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공자는 "사람에게는 저마다 어울리는 일이 있습니다. 왕은 백성을 덕으로 다스리고, 신하는 왕을 충성으로 섬기며, 백성은 자신이 맡은 바를 다하면 됩니다.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가르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요.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며,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합니다"라고 말하며 유가 사상을 이끌었어요. 도가 사상을 주장한 노자와 장자는 "인간이 만든 도덕이나 법은 백성을 힘들게 합니다. 가만히 두어도 질서가 있는 자연처럼 인간도 자연의 모습 그대로 두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라고 주장했지요. 엄격한 법을 강조한 한비자는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다니요? 안 됩니다. 부강한 나라가 되려면 신분을 막론하고 엄격한 법을 정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누구나 처벌이 무서워 법을 지킬 테니까요"라고 말했고요.
- ▲ (위 왼쪽)춘추전국시대는 기원전 770년부터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기원전 221년까지를 말해요. 이 시기에는 여러 나라가 중국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다퉈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했어요. (위 오른쪽 사진)춘추전국시대에 통용된 농기구 모양 화폐인 포전이에요. (아래 사진)중국 엄성춘추놀이공원에 재현된 제자백가 모습이에요. 춘추전국시대에는 유가, 도가, 법가 등 새로운 학풍이 많이 등장하여 동양 사상을 크게 발전시켰지요. /조선일보 DB·바이두
이 사상들은 훗날 중국에 큰 영향을 끼쳤어요. 유가는 유교로 발전하여 중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와 일본의 통치 질서와 생활 윤리에 영향을 미쳤어요. 도가는 도교로 변화되어 마음의 위로와 안식을 주는 종교로 거듭났지요. 법가는 이후에도 사회의 규범과 법률을 만드는 데 기여했답니다. 중국 사상의 중심이 된 많은 선생님이 등장했던 춘추전국시대. 여러분이 만약 춘추전국시대의 제후였다면 어떤 선생님의 사상을 받아들였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