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옥의 명작 따라잡기

틀을 깨면 다른 세상이 보이죠

입력 : 2014.05.15 05:29 | 수정 : 2014.05.15 09:00

천재 예술가로 불리는 살바도르 달리, 흘러내리는 시계 그려 고정관념 깼죠
사물의 본성을 정반대로 바꾼 작품들…
일반적인 상식 무너뜨려 혼란 주지만 새로운 세상 발견하는 기쁨도 주지요

스페인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천재 예술가로 불려요. 사람들이 달리에게 천재적인 창작 비결에 대해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어요. "순진했던 어린 시절, 나는 늘 보통 사람들과 다른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는 어릴 적에 품었던 엉뚱하고 터무니없는 생각을 현실로 만들고자 했다." 달리는 자신이 남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듯 보통 사람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림들을 발표해 미술계를 깜짝 놀라게 했어요. 예를 들면 작품 1에서는 단단한 금속 시계를 부드러운 치즈처럼 축 늘어지게 변형했어요.

작품 1. 사진
작품 1. 살바도르 달리, ‘기억의 지속’, 1931년.
달리는 왜 단단한 시계를 부드럽게 표현했을까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진 생각(고정관념)을 깨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시계를 단단하고 정확한 기계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달리는 생각의 틀에 갇힌 보통 사람과 다르게 탁자나 나무에 걸쳐놓을 수 있는 부드러운 시계도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예요. 축 늘어진 시계에 대한 아이디어는 카망베르 치즈에서 가져왔어요. 달리는 수분 함량이 높고 잘 녹는 카망베르 치즈를 무척 좋아했지요. 이 그림을 그리던 저녁에도 카망베르 치즈를 먹었다고 해요. 그날 밤 그의 눈앞에 카망베르 치즈가 금속 시계 위로 녹아내리는 모습이 꿈속의 한 장면처럼 떠올랐어요. 달리에게 사물의 본성을 바꾸는 일은 정말로 신나는 경험이었지요. 그런데 이 작품을 보면 치즈처럼 부드러운 시계가 단단하고 정확한 시계보다 시간의 의미를 더 잘 나타낸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때로는 강물처럼 느리게, 때로는 화살같이 빨리 흐르는 것처럼 여겨지는 시간과 녹아내리는 치즈 사이에 공통점이 느껴지니까요. 재미있게도 달리가 생각한 부드러운 시계는 83년이 지난 오늘날 현실로 나타나고 있어요. 부드럽게 휘어지거나 탁자에 걸쳐놓을 수 있는 시계가 실제로 만들어지고 있거든요.

우리나라 예술가 노세환도 달리처럼 보통 사람들과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어요. 작품 2에서는 사과가 공중에 뜬 상태에서 녹아내리고 있습니다. 왜 아이스크림처럼 녹아서 흘러내리는 사과를 창조했을까요? 노세환은 '눈에 보이는 것만이 진실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녹아내리는 사과를 만들었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이 작품의 창작 비결도 알려주었지요. 실제 사과를 빨강 페인트통에 담갔다가 꺼내 사과에서 페인트가 흘러내리는 장면을 카메라로 촬영했다고 해요. 사진 속의 사과는 녹아내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빨간색 페인트가 굳는 과정을 촬영한 것이랍니다. 고체가 액체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액체가 고체로 변하는 것이지요. 관객은 이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사과가 녹아내린다고 착각하는 거예요. 녹아내리는 사과는 '우리가 세상을 정반대로 보거나 가짜를 진짜라고 착각하고 사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을 갖게 합니다.

작품2, 3, 4 사진들
(사진 오른쪽)작품 2. 노세환, ‘Meltdown-사과는 빨갛다?’, 2013년. (사진 왼쪽 위)작품 3. 제프 쿤스, ‘풍선 강아지’, 1994~2006년. (사진 왼쪽 아래)작품 4. 개빈 터크, ‘쓰레기’, 2007년.

미국의 미술가 제프 쿤스도 사물의 본성을 정반대로 바꾸는 작품들을 발표해 미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어요. 작품 3은 분홍색의 커다란 풍선 강아지 모양 조각품이에요. 쿤스는 파티에서 사용하는 긴 비닐 풍선을 꼬아 이 작품을 만들었을까요? 아니에요. 매우 가볍고 연약한 풍선 강아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엄청나게 무겁고 단단하답니다. 건축이나 화학공업에서 쓰이는 '스테인리스강'으로 만들었거든요. 무겁고 단단한 재료로 만든 풍선 강아지 조각은 관객을 혼란에 빠뜨려요. 우리가 일상적으로 가진 가벼움과 무거움에 대한 상식이나 지식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니까요.

영국 미술가 개빈 터크도 단단하고 무거운 것을 정반대로 가볍고 부드럽게 느껴지도록 했네요. 작품 4는 쓰레기를 담아 묶은 검은 비닐봉지예요. 지저분한 쓰레기를 담은 비닐봉지가 과연 예술 작품일까요? 쓰레기 봉지로 보이는 이 작품의 재료는 놀랍게도 값비싼 청동이에요. 청동으로 비닐봉지 형태를 만들어 검은색을 칠했지요. 왜 고급 재료인 청동을 사용해 쓰레기 봉지를 만들었을까요? 사람들이 이중적인 잣대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예요. 대부분의 관객은 비닐봉지가 조각품이라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지나쳐요. 그러다 뒤늦게 예술품이라는 사실을 알면 정반대의 반응을 보이지요. 비닐봉지에 관심을 보이며 진지하게 감상해요. 똑같은 비닐봉지인데도 어떤 때는 무시하고 어떤 때는 숭배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는 거예요. 이 작품은 '우리가 말이나 행동이 일관되지 않은 이중적 존재가 아닐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18세기 프랑스 철학자인 드니 디드로는 "천재는 사물의 본성을 바꾸는 사람"이라고 했어요. 사물의 특성이나 성질을 정반대로 바꾸는 예술 작품은 디드로의 말을 떠올리게 하지요. 가끔은 예술가처럼 사물을 거꾸로 뒤집어 보면 어떨까요?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는 기쁨을 얻게 될 테니까요.

[함께 생각해봐요]

사물을 새롭게 볼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는 ‘거꾸로 보기’예요. 어떤 건물이나 나무가 물에 비친 모습, 혹은 그림자를 통해 거꾸로 된 모양을 볼 수도 있지요. 사물을 거꾸로 보았을 때, 어떤 점이 새롭게 보이는지 여러분의 방 안에 있는 여러 가지 물건으로 시험해 보세요.

이명옥 | 사비나 미술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