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세계사

중국은 6월, 캐나다는 11월… 나라별로 달라요

입력 : 2014.05.09 05:27 | 수정 : 2014.05.09 09:09

[세계의 어린이날]
아동을 '어린이'로 높여 부른 방정환, 사회가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1923년 5월 1일 어린이날 제정·기념… 2년 뒤엔 전 세계가 기념일로 만들어
광복 후 5월 5일로 변경, 올해 92주년

소파(小波) 방정환 선생 사진
우리나라의 ‘어린이날’을 만든 소파(小波) 방정환 선생이에요.
"얘들아, 축하해!"

지난 월요일(5일)은 어린이날이었어요. 아침 일찍 엄마께서 예쁘게 포장된 선물 상자를 저희 남매에게 안겨 주셨습니다. 저는 포장을 풀면서 누나 것을 힐끔힐끔 쳐다봤어요. 누나는 뭘 보냐는 듯이 인상을 쓰더니 선물을 들고 홱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답니다.

"엄마, 누나는 중학생이니까 이제 어린이가 아니잖아요?"

누나가 사라지자 저는 엄마께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투정 부렸어요.

"저한테만 선물을 줄 수 없으니까 누나도 끼워 주신 거죠? 그런데 설마 제가 중학교 들어가면 둘 다 안 주실 거예요?"

걱정스러운 듯한 제 질문에 아빠께서 피식 웃으며 대답하셨습니다.

"우리 아들은 아무래도 어른이 되려면 한참 멀었는걸. 중학생이 아니라 고등학생, 대학생이 되어서도 어린이날 선물을 받아야겠어!"

그러자 엄마께서 덧붙여서 말씀하셨어요.

"사람들은 보통 초등학생을 어린이로 여기지만, 우리나라 아동복지법에는 '만 18세 미만'을 아동의 기준으로 정해 놓았단다. 하지만 엄마한테 너희는 언제까지나 어린이 아니겠니? 선물은 얼마든지 줄 테니 바르게만 자라다오."

엄마 말씀을 듣고 보니 생각나는 게 있었어요.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갔을 때 할머니께서 아버지더러 '우리 새끼, 우리 새끼' 하시면서 마치 아이처럼 대하던 모습이지요.

"엄마 아빠가 어릴 때도 어린이날이 있었어요?"

"그럼! 엄마는 시골에서 학교 다녔는데 어린이날이 되면 학교에서 사탕도 주고, 신나는 놀이도 해서 그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아참, 그렇구나! 소파 방정환 할아버지가 어린이날을 만드셨다고 했지!"

엄마 말씀을 듣고 생각해 보니 우리나라에 어린이날이 만들어진 지도 벌써 100년이 다 되어 가네요. 방정환은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던 천도교 교주 손병희의 사위였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아동을 '아이' '애' '어린애' 등으로 부르면서 어른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로만 여겼대요. 그런데 3·1운동 이후 방정환 같은 분들이 우리 사회가 아동을 보호하고 민족의 대들보로 잘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아동을 높여 부르는 말로 '어린이'를 쓰기 시작하고, 1923년부터 어린이날을 제정해 행사를 가졌답니다. 그때는 어린이날이 5월 1일이었다가 해방 후에 5월 5일로 바뀌었어요.

지난 5일 어린이날 서울 강북구 북서울꿈의숲에서 즐겁게 노는 어린이들의 사진
지난 5일 어린이날 서울 강북구 북서울꿈의숲에서 즐겁게 노는 어린이들의 모습이에요. 우리나라에서는 1923년부터 어린이날을 제정해 기념했어요. /김지호 객원기자
"그런데 다른 나라에는 어린이날이 없어요? 중국에 간 형식이가 이메일을 보냈는데, 거기는 5월 5일이 어린이날 아니래요."

"어린이날은 나라·문화권에 따라 다른데, 우리나라와 일본은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정했단다. 그런데 일본은 3월 3일을 따로 '여자 어린이의 날'로 정해 기념한다는구나."

그러자 아빠께서 대답을 이어가셨어요.

"중국은 어린이날이 없는 게 아니라 6월 1일을 '국제아동절'로 정하여 기념하고 있지."

아빠 말씀에 따르면, 1925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아동 복지를 위한 세계 회의'에서 처음으로 전 세계가 어린이날을 정해 기념하기로 했대요. 우리 민족이 어린이날을 제정한 것보다 2년이나 늦었군요! 우리나라는 나라를 빼앗긴 상황에서 민족의 미래를 이끌 어린이의 소중함을 더 일찍 깨달은 것 아닐까요?

"중국의 어린이날인 6월 1일은 1949년 구소련(현재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민주여성연맹이사회가 정한 날이야. 세계적으로 이날을 어린이날로 정한 나라가 가장 많다고 해."

6월 1일을 어린이날로 기념하는 나라는 40개국이 넘는다고 해요. 그다음으로 많은 날은 11월 20일이에요. 1954년 유엔총회에서 이날을 세계 어린이의 날로 정했는데, 캐나다, 필리핀 등 10개국 정도가 이날을 어린이날로 기념한대요. 그런데 갑자기 아까 자기 방으로 들어갔던 누나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방문을 열고 나왔어요.

"엄마, 이 소설 너무 슬퍼요!"

누나는 오늘 선물로 받은 책 '올리버 트위스트'를 읽다가 나온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저는 선물 상자를 뜯다 말았군요. 제 상자 안에도 초콜릿과 함께 어린이용 '올리버 트위스트'가 들어 있었어요.

영화 ‘올리버 트위스트’ 한 장면 사진
영국 작가 찰스 디킨스는 1838년 출간한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를 통해 당시 영국 사회의 불평등한 계층화와 산업화의 폐해를 비판했어요. 사진은 영화 ‘올리버 트위스트’ 한 장면이에요. /Sony Pictures
"이 소설에 나오는 올리버가 너무 불쌍해요. 고아로 태어난 어린이한테 이런 고생을 시키다니, 영국도 옛날엔 나쁜 나라였네요!"

'올리버 트위스트'는 영국 작가 찰스 디킨스가 1838년에 쓴 장편소설이에요. 영국 런던의 뒷골목에서 힘겹게 자라는 고아 소년의 성장 과정을 통해 당시 영국의 어두운 모습을 비판한 명작이지요. 작가인 디킨스도 어릴 때 구두약 공장에서 일하면서 어렵게 자랐다고 해요.

"옛날에는 영국 같은 선진국에서도 어린이를 보호하지 않고 하루 10시간 넘게 강제 노동을 시키는 일이 많았단다. 그런 과거가 있기 때문에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 어린이날을 정하여 지키라고 하는 거야."

아빠 말씀을 들으니까 옛날 어린이들이 무척 불쌍해졌어요. 하지만 이 세상에는 아직도 어린이한테 강제로 일을 시키거나 심지어는 총을 들고 싸우게 하는 나쁜 어른이 많답니다. 2013년 기준으로 5~14세 사이 어린이 1억 5300만명이 힘든 노동에 시달린다고 해요.

"엄마 아빠!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고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선물 투정하지 않고 말 잘 듣는 어린이가 될게요."

갑자기 철든 소리를 하는 저를 보며 엄마 아빠는 환하게 웃으시고, 누나는 영문을 몰라 한참 동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답니다.

강응천 | 세계사 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