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갔어요

과학기술, 예술가의 상상력을 자극하다

입력 : 2014.05.08 05:28 | 수정 : 2014.05.08 09:05

[87] 스팀펑크아트 展

서로의 영역 풍성케 하는 기계·예술… 한때 기계 발달로 예술 사라질까 걱정
연약한 인형에 달린 쇠로 만든 날개, 천공의 성처럼 떠 있는 베네치아 광장… 하늘을 나는 인간의 상상을 담았죠

한때 예술이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처음 기계가 등장하고, 기계로 만든 물건이 인류의 생활에서 점차 많은 부분을 차지하면서 그런 우려가 나타났지요. 약 200여년 전 전동장치로 공장을 돌리고, 증기기관을 이용하여 기차와 배를 움직이는 모습에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는 한편 가슴 벅찬 감동을 느끼기도 했어요. '와~ 기계가 사람 대신 세상을 움직이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요.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시무룩해지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사람의 영혼이 깃든 아름다운 예술품은 보기 어렵겠구나' 하면서 말입니다. 예술 작품만큼은 오직 사람에게서 탄생하고, 사람 손끝의 따스한 체온이 묻어 있어야 한다고 믿었거든요.

예술품은 예술가와 영혼을 나누어 가진다고들 하지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조각가 피그말리온은 자기가 만든 조각상을 어찌나 아끼고 사랑했는지, 어느 날 그 작품에 정말로 영혼이 깃들게 됩니다. 조각상이 진짜 사람으로 변한 것이지요. 1818년에 영국 소설가 메리 셸리는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작품을 썼는데, 프랑켄슈타인은 피그말리온과 정반대되는 내용이에요. 주인공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납골당, 도살장, 그리고 해부실에서 버린 살과 뼈를 모아 인간을 창조하는 실험을 합니다. 그러나 실험 결과는 끔찍했어요. 영혼 없는 추악한 괴물을 만들어낸 거예요. 피그말리온은 예술가가 느낀 기쁨과 사랑이 생명력이 되어 조각상에 전해지지만,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달랐어요. 그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 과학적 창조 행위에 대해 스스로 긍지를 가질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보고도 기쁘기는커녕 끔찍해서 도망가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과학 실험실의 창조 행위가 예술적 창조 못지않게 기쁨을 주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기계의 발달로 예술이 궁지에 몰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다 쓸데없는 걱정이 되었지요. 기계와 예술품은 잘 어우러져 서로 영역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고 있으니까요. 자, 기계적인 상상이 깃든 예술 작품을 구경해 볼까요?

작품 1~4.
작품 1을 보세요. 연약해 보이는 인형이 쇠로 만든 기계 날개를 달고 있네요. 기계 시대의 천사는 깃털로 된 날개가 아니라, 전동장치를 장착한 날개로 날아오르나 봐요. 쇠로 된 날개는 인형의 새하얀 피부, 하얀 면 잠옷과 뚜렷한 대조를 이루어요. 기계 날개는 단단하고 차갑습니다. 단단해서 믿음직하지만, 차가워서 섬뜩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요. 훨훨 날고 싶은 인간의 꿈을 이뤄줄 것이라는 믿음과 희망을 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과 어울리지 않는 차갑고 낯선 분위기가 숨어 있어요.

작품 2는 기계로 만든 인간의 모습이에요. 머리 위에 탑을 쌓은 것처럼 보이는 이 사람은 아마도 과학자인 모양이에요. 아는 것이 워낙 많아서 두뇌에 지식의 탑이 세워질 정도인가 봅니다. 그런데 이 탑 모습은 1563년 네덜란드 화가 피터르 브뤼헐이 그린 작품 3과 아주 비슷해요. 브뤼헐은 성서에 나오는 바벨탑 이야기를 소재로 작품 3을 그렸어요. 옛 사람들은 하늘이 무한하지 않고 천장처럼 닿을 수 있는 끝이 있다고 생각했나 봐요. 그래서 하늘 끝까지 올라갈 수 있는 탑을 쌓기 시작했는데, 이 탑 이름이 바로 바벨탑이에요. 하지만 아무리 높이 쌓아도 하늘 끝, 즉 무한의 진리에는 도달하지 못했어요. 너무 욕심을 부린 탓에 그토록 높이 쌓았던 바벨탑이 무너져 산산이 흩어지게 되었다지요. 작품 2를 그린 화가는 그림 속의 천재 과학자에게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말라고 경고하고자 옛 성서의 바벨탑 모습을 끌어다 놓은 것 같습니다.

작품 4는 상상 속 장면이에요. 지붕이 둥근 성당이 있는 베네치아 광장이 땅에서 뽑혀 하늘에 떠 있어요. 천공의 성처럼 둥둥 떠다니는 것 같지요. 이렇게 떠 있는 성에 산다면 얼마나 흥미진진할까요? 어디로 가고 싶으면 성 전체를 움직여 그곳으로 날아가면 되니까요.

기계와 기술 덕분에 예술가들은 재미있는 상상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되었어요. 게다가 많은 상상이 실제로 현실에서 이루어지고 있지요. 이렇게 예술적 상상력이 있기에 위대한 과학도 가능한 것 아닐까요?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02)730-4360


[함께 생각해봐요]

‘스팀펑크(Steampunk)’는 인류 문명이 18~19세기의 증기기관을 바탕으로 발전했다고 가정하여 만든 공상과학 장르를 말해요. 여러분이 한 번쯤 봤음 직한 영화 ‘황금나침반’,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 등이 스팀펑크의 영향을 받았지요. 스팀펑크 작품 속 사회가 지금 사회의 모습과 다른 점을 찾아보세요.


이주은 | 교수(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