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옥의 명작 따라잡기

재난과 자연재해의 두려움 그림에 담다

입력 : 2014.05.01 05:29 | 수정 : 2014.05.01 06:05

1816년 '메두사號 참사' 그린 제리코… 승객의 안전 회피하고 도망간 선장이 대형 참사 부른다는 사실 일깨워주죠
조난사고 당한 사람 구조하는 영웅적인 인간상 그려낸 화가 호머… 따뜻한 인간애 본받자는 메시지 담아

세월호 침몰 사고는 우리 국민에게 큰 슬픔을 안겨주었어요. 우리는 이 비극적인 사고를 통해 재난이 얼마나 무서운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온 나라가 희생자를 추모하며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하자는 데 뜻을 모으고 있지요. 미술에도 재난이나 자연재해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 있어요. 화가들은 왜 이러한 주제를 선택했을까요? 이러한 작품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명화를 감상하며 알아보도록 해요. 19세기 프랑스 화가 테오도르 제리코는 인간의 잘못이 대형 참사를 부른다는 사실을 일깨우고자 그림 1을 그렸습니다.

뗏목에 탄 사람들이 저 멀리 보이는 배를 향해 애타게 구조요청 신호를 보내고 있어요. 이 그림은 화가의 상상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1816년 7월 2일 프랑스의 메두사호가 아프리카 세네갈로 항해하던 중 난파된 사고를 바탕으로 그린 거예요. 침몰 당시 배 안에는 승객이 400여명 타고 있었대요. 배가 풍랑을 만나 침몰하자 선장과 세네갈 총독, 고위 공무원 등 250여명만 6개의 구명보트에 나누어 탔어요. 구명보트가 부족했기 때문이지요. 나머지 승객은 임시로 만든 뗏목에 타야만 했어요. 구명보트는 뗏목을 밧줄로 묶어 앞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림 1~4.
그런데 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선장이 자신만 살기 위해 뗏목에 연결된 밧줄을 끊어버리는 비정한 짓을 저질러요. 뗏목에 탄 150여명은 12일 동안 바다를 떠다니다가 대부분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아르고스호에 의해 이들이 구조되었을 때는 15명만 살아있었는데, 그중 5명은 그 다음 날 세상을 떠났다고 해요. 생존자 중 한 사람이었던 의사 앙리 사비니가 당시 상황을 글로 써서 신문에 발표하여 메두사호의 진실이 세상에 알려졌지요. 이 사건은 프랑스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어요. 귀족 출신의 선장이 항해 지식이나 경험이 거의 없어 많은 희생자가 생겼다는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거든요. 제리코는 무능하고 비겁한 선장이 비극적인 사고의 원인이라는 사실에 분노했어요.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간의 잘못에 의한 참사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실화보다 더 실화 같은 그림을 그렸던 거예요.

영국의 화가 윌리엄 터너는 자연재해의 무서움을 풍경화를 통해 보여줬어요. 그림 2는 세찬 눈보라와 성난 파도에 의해 침몰하기 직전의 증기선을 그린 거예요. 하늘의 먹구름, 눈보라, 파도, 증기선은 구별하기조차 어렵지만, 그림을 자세히 보면 소용돌이 한가운데 가느다란 배의 돛대와 꼭대기에 달린 작은 깃발을 발견할 수 있어요. 터너는 바다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리지 않고 거대한 소용돌이처럼 표현했습니다. 대자연의 강력한 힘을 나타내기 위해서였지요.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그림 속에서 세찬 눈보라와 소름 끼치는 파도소리, 절망과 공포에 떠는 사람들의 비명을 들을 수 있을 거예요. 거친 바다를 실제로 경험한 적이 없었던 터너는 67세에도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큰 모험을 했어요. 날씨가 궂은 날, 해풍에 날아가지 않도록 배의 갑판 기둥에 몸을 묶은 채 4시간 동안 항해했다고 해요. 위험을 무릅쓰고 폭풍과 파도를 체험했기 때문에 대자연의 위력을 느끼게 하는 걸작을 창조할 수 있었지요.

일본의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도 자연의 절대적인 힘을 그림 3에 담았어요. 거센 파도가 생선을 운반하는 3척의 배를 덮친 모습이지요. 동서양 미술사를 통틀어 이렇게 파도를 크고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로 묘사한 작품은 찾아보기 어려워요. 호쿠사이는 왜 파도를 입을 크게 벌리고 먹잇감을 덮치는 괴물처럼 표현했을까요? 그리고 일본에서 가장 높은 산인 후지산을 수평선 너머에 아주 작게 그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쓰나미처럼 강력한 파도의 힘을 강조하기 위해서예요. 해양 국가에 사는 일본인에게 바다는 생명의 터전이면서 태풍이나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가 자주 발생하는 죽음의 공간이기도 해요. 호쿠사이는 사랑과 두려움의 대상인 바다에 대한 이중적인 감정을 이 그림을 통해 보여주었어요.

그런가 하면, 미국 화가 윈슬로 호머는 바다에서 조난사고를 당한 사람들을 구조하는 숨은 영웅을 그렸어요. 그림 4는 구조요원이 침몰한 배에서 한 여성을 구하는 장면을 그린 겁니다. 거센 파도가 목숨을 위협하는데도 구조요원은 죽음을 겁내지 않고 생존자를 구하고 있군요. 호머는 자연재해에도 굴복하지 않는 영웅적인 인간상을 보여주고자 이 그림을 그렸어요. 지금 이 시각에도 세월호 침몰 사고 현장에는 한 명이라도 더 구조하기 위해 차갑고 험한 바다로 뛰어드는 숨은 영웅들이 있어요. 호머는 이 그림을 통해 정의감에 불타는 이름 없는 영웅들이 보여주는 따뜻한 인간애를 본받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재난이나 자연재해를 주제로 한 미술작품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하면 현명하고도 지혜롭게 행동할 수 있을까'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하지요.


[함께 생각해봐요]

자연의 강력한 힘은 때로 우리 삶을 위협하지만, 대자연은 모든 지구 생명을 탄생시키고 보살피는 어머니 같은 존재입니다. 이러한 자연의 따뜻한 보살핌을 담은 풍경화를 찾아보세요. 화가들이 이렇게 서로 다른 자연의 모습을 그림에 담아낸 이유는 무엇인지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명옥 | 사비나 미술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