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갔어요

인생은 연극, 세상은 무대

입력 : 2014.04.24 05:30 | 수정 : 2014.04.24 09:22

[86] 무겁거나, 혹은 가볍거나 展
무대 위 화려한 조명 받는 스타… 그들을 응원하는 팬들의 삶을 표현한 '정연두'
집이라는 같은 무대 속에 다른 가족의 삶 담은 사진 2·3
누구의 삶이든 모두 다 무대 위에 올려진 작품이라고 '셰익스피어'는 말했죠

이번 주 토요일(26일)은 영국이 자랑하는 극작가 셰익스피어(1564-1616)가 태어난 지 450주년 되는 날이에요. 그래서일까요? '햄릿' '로미오와 줄리엣' '맥베스' 등 그의 대표 작품이 올해는 더 많은 나라에서 공연되고 있어요. 사실 셰익스피어는 배우들만 무대에 세운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무대에 세웠답니다. 그는 온 세상이 무대이며, 우리 인생은 곧 연극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셰익스피어의 이런 생각은 '맥베스'에 나오는 다음 대사에서 잘 드러나요. "인생은 다만 걸어가는 그림자일 뿐. 제시간이 오면 무대 위에서 활개 치며 안달하지만, 얼마 안 가서 영영 잊히고 마는 가련한 배우로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세상이라는 무대에 등장해 여러 역할을 연기하다가 언젠가는 무대 뒤로 사라진다는 뜻이에요. 인간의 삶을 참으로 허무하게 이해한 듯합니다. 하지만 이 말을 달리 생각해 보면, 누구의 삶이든 모두 다 무대 위에 올려진 한 편의 소중한 작품이라는 뜻으로 들리기도 해요. 또한 사람은 누구나 자기 삶의 주인공이란 뜻도 되지요.

무대를 보며 다른 사람의 삶을 떠올린 사람이 또 있어요. 미디어 작업을 하는 예술가, 정연두입니다. 사진 1을 보세요. 그는 전시장에 커다란 무대를 설치해 놓았어요. 텅 빈 무대에 불과하지만, 그곳에는 때로는 가볍고, 때로는 무거운 여러 가지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그리고 시선을 조금만 옮기면, 무대 주위에 늘어선 관객의 삶도 볼 수 있지요. 우리는 이런 무대를 보면 보통 내가 아닌 특별한 누군가를 위한 곳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그럴까요? 어느 추운 겨울날, 길거리에서 한 무리의 소녀들이 신나게 노래 부르며 춤을 춥니다. 관심 있게 지켜보는 사람도 없지만, 소녀들은 그저 춤추고 노래 부를 수 있어서 마냥 행복해요. 시간이 흐르면서 주위에 사람이 하나둘 모여들고 그들을 응원하는 팬까지 생겼지요. 그리고 어느 순간 소녀들은 유명한 가수가 되어 무대에 선 자신들을 발견합니다. 무대 아래에는 그들을 바라보는 수많은 팬이 서 있지요. 그런데 정연두 작가가 만든 사진 1 속의 무대는 유명 가수가 된 소녀들을 위한 게 아닙니다. 바로 무대 아래에서 그들을 응원한 팬들을 위해 설치한 것이지요. 분명히 그 팬들에게도 우리가 보지 못한 하나하나의 삶이 있을 테니까요. 사람은 누구나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거든요.

사진1~4.
사진 2·3을 보세요. 이번엔 어느 아파트의 거실이 무대인가 봅니다. '집'이라는 무대의 주인공은 가족입니다. 두 사진을 잘 보세요. 같은 아파트에서 찍은 사진인지 거실 크기나 창 위치가 똑같지요? 천장에 붙은 전등마저 똑같네요. 마치 같은 무대 위에 다른 배우들이 선 모습처럼 보이기도 해요. 포즈를 취한 두 가족 뒤로 커튼이 쳐 있어서, 더욱 무대 세트 같은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집의 모습이 똑같다고 해서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가족의 삶까지 똑같을까요? 무대, 즉 집의 모습은 비슷할지라도 가족의 이야기는 분명 집마다 다르고 특별할 거예요.

사진 4는 어디에서 찍은 것일까요? 언뜻 보기엔 배우들의 분장실이나 의상실 같기도 합니다. 여기는 고급 브랜드의 값비싼 옷을 파는 상점으로, 이 사진은 그곳에서 일하는 점원들을 찍은 것이에요. 아무나 살 수 없는 비싼 옷을 파는 곳이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이곳에 들어올 때 왠지 주눅이 든답니다. 노련한 점원은 그냥 구경만 하고 갈 사람인지, 정말 옷을 살 사람인지를 한눈에 알아본대요. 이 사진은 상점 문을 열고 막 가게로 들어섰을 때, 나를 향해 따갑게 쏟아지는 점원들의 시선을 포착한 거예요. 그 긴장된 순간을 정지 화면처럼 보여주는 것이지요. 내가 만일 정말로 옷을 사려고 들어왔다면, 점원보다는 어떤 옷들이 걸렸는지를 더 관심 있게 볼 거예요. 하지만 물건을 살 생각도 없이 고급 상점에 들어왔다면, 점원들의 존재와 시선이 훨씬 강렬하게 다가오지 않을까요?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장소를 지나다니지만, 매번 그 장소의 주인공으로 살지는 못합니다. 여러 사람 앞에서 내가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있는 장소가 있는가 하면, 내가 한없이 작고 초라하게 느껴지는 장소도 있어요. 하지만 한번 생각해 보세요. '명배우'라는 칭호는 매번 주인공을 맡는 배우에게만 붙는 게 아니에요. 언제, 어디서든 맡은 배역을 잘 소화하며, 스쳐 지나가는 장면에서조차 빛이 나는 배우에게 붙는 말이지요.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 오른 이상 우리도 명배우가 되어 멋진 작품을 만들어야겠지요? 세상은 무대이고, 인생은 연극이라는 말을 기억하면서 말이에요.

삼성미술관 플라토 1577-7595


[함께 생각해봐요]

여러분은 우리 인생이 한 편의 연극과 같다는 말에 동의하나요? 이 말의 뜻을 생각하며, 최근 여러분의 일상에서 인상 깊었던 경험을 하나 골라 짧은 희곡을 지어 보세요. 같은 일이라도 주인공을 달리하여 서로 다른 희곡으로 만들어 보면, 잘 몰랐던 친구들의 생각까지 깊이 이해하게 될 거예요.


[함께 그려봐요]

예부터 많은 화가가 ‘좌우대칭’을 그림에 활용했어요. 대칭 선을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에 같은 모양이 거울처럼 반복되면 균형감과 통일감이 생기기 때문이에요. 18세기 영국 화가 윌리엄 블레이크도 그리스도의 시신을 지키는 두 천사의 모습을 좌우대칭으로 그렸지요. 블레이크는 중세 기독교 교회에 설치된 제단화를 연구하며 좌우대칭이 경건하고 고요하며 장엄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해요. 여러분도 좌우대칭에 숨은 아름다움의 비밀을 찾아보세요.

(왼쪽 위)윌리엄 블레이크,‘ 그리스도의 무덤을 수호하는 천사들’, 1806년경.
(왼쪽 위)윌리엄 블레이크,‘ 그리스도의 무덤을 수호하는 천사들’, 1806년경.
이주은 | 교수(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