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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뇨 퍼서 논밭에 파는 일… '예덕선생전(조선 실학자 박지원이 쓴 소설)'에도 실렸죠

입력 : 2014.04.22 05:38 | 수정 : 2014.04.22 09:21
‘예덕선생전’을 쓴 박지원은 대표적인 조선 후기 실학자예요.
‘예덕선생전’을 쓴 박지원은 대표적인 조선 후기 실학자예요. /조선일보 DB
우리 땅에 '화장실'이란 말이 생겨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요. 지금처럼 화장실이 집 안으로 들어온 것도 1940년대 들어 생긴 일이지요. 세면기와 변기, 욕조로 이루어진 화장실은 1950년대부터 설치되었다고 해요. 그전에는 몸을 씻는 곳과 배설 공간이 따로 분리되어 있었지요. 그럼 화장실이 생기기 전에는 이 공간을 뭐라고 불렀을까요? 일제강점기부터 수세식 화장실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변소(便所)라는 일본식 표현이 쓰였어요. 그전에는 뒷간 혹은 측간(廁間)이라고 불렀지요.

옛날 농가에서는 화장실의 배설물과 아궁이에서 나온 재를 섞어 거름으로 사용했어요. 하지만 도성 안은 원칙적으로 농사가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화장실에서 분뇨(糞尿)를 퍼서 도성 근처 논밭에 파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있었대요. 조선 후기의 실학자 박지원이 쓴 '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이라는 소설의 주인공인 엄행수가 바로 그런 인물이지요. 이 소설은 '선귤자에게 예덕 선생이란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종본탑 동편에 살았는데 날마다 분뇨를 져 나르는 것이 생업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를 엄행수라 불렀으니, 행수란 막일을 하는 노인에 대한 호칭이고, 엄은 그의 성씨이다'라는 내용으로 시작해요. 선귤자의 제자는 사대부(士大夫) 가운데도 스승과 친하게 지내고자 하는 자가 많은데, 스승이 그들은 모른 체하고 천한 일을 하는 엄행수라는 자와 친구로 지내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해요. 그러자 선귤자는 제자에게 자신이 엄행수와 친하게 지내는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선귤자는 왕십리의 배추, 살곶이다리의 무, 석교의 가지·오이·참외·호박, 연희궁의 고추·마늘·부추·파·염교(), 청파의 미나리, 이태원의 토란 등을 아무리 토질이 좋은 밭에 심어도, 엄씨가 날라다주는 분뇨 없이는 농사가 잘되지 않는다고 했어요. 거름을 써야만 땅이 비옥해지고 많은 수확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지요. 엄행수는 이 일을 하여 일 년에 6000냥이나 되는 돈을 벌었어요. 그런데도 엄행수는 허세를 부리거나 사치하지 않고 검소하게 살았지요. 선귤자는 엄행수의 일은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향기로운 일이며, 그의 행색은 지저분할지 몰라도 삶에 대한 자세는 당당하다고 칭찬해요. 그래서 자신은 엄행수와 친하게 지내고자 노력하며, 그를 '예덕 선생'이라고 부른다고 이야기하지요.

다산 유적지(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에 있는 실학박물관이에요.
다산 유적지(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에 있는 실학박물관이에요. 실학은 조선 후기에 나타난 학문 사상으로, ‘실생활에 이용되는 참된 학문’이라는 뜻이에요. /실학박물관
실학자인 박지원은 직업이나 신분, 겉모습보다 사람의 됨됨이나 성실한 삶의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을 예덕 선생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어요. 그렇다면 박지원은 왜 엄행수를 '예덕 선생'이라고 칭했을까요? '더럽다'는 뜻을 가진 한자 '예(穢)'에 '덕(德)'이라는 글자를 더해 '비록 더러운 일을 하지만 덕이 있는 사람'이라는 뜻을 담은 것이에요.


★염교: 백합과(科)의 여러해살이풀로 주로 장아찌를 담가 먹음.

[1분 상식] '실학(實學)'이란 무엇인가요?

조선 후기에 등장한 실학은 백성의 생활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고자 한 실용적인 학문 사상을 말해요. ‘경세치용(經世致用)’ ‘이용후생(利用厚生)’ ‘실사구시(實事求是)’라는 3가지 기본 정신을 바탕으로 발달했지요. 경세치용은 ‘학문은 실생활에 적용되어 현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며, 이용후생은 ‘기구를 잘 이용하여 백성의 살림을 풍요롭게 해야 한다’는 의미예요. 마지막으로 실사구시는 ‘사실에 근거하여 진리를 탐구한다’는 뜻이지요. 정약용,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 등이 대표적인 실학자예요.


지호진 |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