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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지진계는 중국 후한 시대 '지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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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후한 시대 과학자 장형이 132년에 만든 인류 최초의 지진계 ‘지동의(地動儀)’예요. /바이두백과
우리나라의 지진 활동에 대한 자료는 1905년을 기준으로, 그 이전의 '역사지진자료'와 그 이후의 '계기지진자료'로 나뉘어요. 1905년 우리나라 인천에 처음으로 기계식 지진계가 설치되었기 때문이에요. 즉 지진계를 설치하기 전에는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 역사책에 기록된 내용으로 지진에 대한 정보를 얻었고, 설치 후에는 지진계의 기록을 분석하여 지진에 대한 정보를 얻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 지진계가 들어온 때가 1905년이라면, 지진계는 과연 언제 만들어졌을까요?
지진계란 지진이 발생하는 위치와 지진의 세기를 기록하기 위해 만든 기계예요. 근대적인 지진계는 1880년에 만들어졌어요. 영국 과학자 제임스 유잉과 토머스 그레이, 존 밀른이 일본에서 발생하는 지진과 이를 기록할 수 있는 장치를 연구하다가 지진계를 발명한 것이에요. 그 뒤로 지진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게 되었지요. 그렇다면 이보다 앞서 고대에 만들어진 지진계는 없을까요?
138년 2월, 중국 후한의 수도인 뤄양 궁궐에서 황제와 신하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요. "폐하, 장형이 만든 기구에서 구슬이 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선가 지진이 일어났다는 말이냐?" "서쪽 용의 입이 벌어지면서 청동 구슬이 떨어졌다고 하옵니다." "그렇다면 서부 지역에서 지진이 일어났다는 뜻이 아니겠느냐?" "장형이 만든 기구에 따르면 그러하옵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 황제에게 간쑤성 일대에서 큰 지진이 일어났다는 보고가 올라왔어요. 간쑤성은 뤄양에서 서쪽으로 약 1000리(★)쯤 떨어진 곳이었지요. 장형이 만든 기구가 무려 400㎞가량이나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지진을 정확히 측정한 것이에요. 이 기구가 바로 인류 최초의 지진계로 알려진 '지동의(地動儀)'예요. 장형이 132년에 만들었다고 하는데, 정확한 명칭은 '후풍지동의(候風地動儀)'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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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일 칠레에서 규모 8.2의 강진이 일어났어요. 지진은 예부터 인류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는데, 1880년 근대적 지진계가 발명되면서 지진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게 되었어요. /AP 뉴시스
지동의는 청동으로 만든 술 단지 모양이에요. 단지 둘레에 용 8마리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붙어 있고, 입에는 작은 청동 구슬을 물고 있어요. 용 아래에는 청동 개구리 8마리가 입을 벌리고 앉아 있고요. 단지 안에는 기둥이 세워져 있는데, 어딘가에서 지진이 나면 단지 안의 기둥이 쓰러지고, 그 방향에 있는 용의 입이 벌어져 청동 구슬이 개구리 입 안으로 떨어지면서 지진이 난 방향을 가르쳐 주는 것이래요. 안타깝게도 지동의의 실물은 현재 남아 있지 않아서 과학자들이 복원한 모형으로만 그 모습을 알 수 있다고 해요. 오늘날의 지진계처럼 정밀하게 측정하지는 못하지만, 무려 1882년 전에 만들어진 지진계가 있다니 참 놀랍지요?
[1분 상식] 과학자 장형은 어떤 업적을 남겼나요?
장형(張衡)은 종이를 발명한 채륜과 함께 중국 후한 시대(25~220)의 과학 발달을 상징하는 인물이에요. 지동의와 더불어 수력(水力)으로 움직이는 자동 천문 관측기인 ‘혼천의(渾天儀)’를 세계 최초로 만들었으며, ‘달은 스스로 빛나지 못하고 햇빛을 받아 빛난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어요. 또한 ‘산망론(算罔論)’이라는 책에서 원주율(π)이 ‘730/232’, 즉 ‘3.146…’이라고 계산했지요. 장형은 글과 그림에도 뛰어나 ‘이경부(二京賦)’ ‘사수시(四愁詩)’ 등의 문학작품을 남겼으며, 당시 6대 화가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고도 해요.
★리(里): 거리의 단위. 1리는 약 0.39㎞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