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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에 의해 재건된 예수 부활의 성지 '성묘교회'

입력 : 2014.04.09 05:49 | 수정 : 2014.04.09 09:03

[77] 이스라엘 예루살렘

오는 20일은 부활절(예수 부활 대축일)입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지 3일 만에 다시 살아 돌아온 것을 기념하는 날이에요.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은 그리스도의 탄생과 부활의 역사가 담긴 곳이지요. 하지만 이곳은 기독교만의 성지가 아닙니다. 다윗왕의 도시였던 예루살렘은 유대교의 성지이며, 예언자 모하메드가 승천(昇天)한 이슬람교의 성지이기도 해요.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있는 성묘교회 내부 모습이에요.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있는 성묘교회 내부 모습이에요. 성묘교회는 그리스도의 시신이 안장되었던 자리에 세워졌다고 해요. /토픽이미지
그리스도는 로마군에 잡혀가기 전날 '마가의 다락방'에서 12 제자와 최후의 만찬을 가졌다고 전해져요. 지금까지 수많은 화가가 '최후의 만찬' 모습을 상상하여 그림으로 남겼지요. 그림 속 마가의 다락방은 제각기 다른 모습인데,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마가의 다락방은 여러 개의 기둥이 아치를 이루며 천장까지 닿아 있는 모습이랍니다. 1176년에 복원된 모습이 지금까지 전해오지요.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통치를 받을 때 건물 일부가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되기도 했어요. 현재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소유입니다.

골고다 언덕 꼭대기의 '성묘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는 그리스도가 안장되었던 묘지에 세워졌어요.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처음 지었지요. 로마 제국은 강력한 통치를 위해 그리스도교를 박해하였는데,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13년에 그리스도교를 공인하면서 로마 전역에서 벌어지던 박해도 중지되었어요. 성묘 교회 안에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과정이 상세하게 묘사된 그림이 있습니다. 그림 앞에는 그리스도의 시신을 염했던 장밋빛 석회 함이 놓였는데, 이곳을 찾은 신자들은 함에 손을 얹고 기도를 올리지요. 그리스도의 시신이 안장되었던 장소에는 동굴 형태의 작은 교회가 지어졌습니다. 허리를 굽혀야 들어갈 수 있는 낮은 동굴 문으로 들어가 '천사의 예배처'를 지나면, 그리스도의 시신이 놓였던 자리가 있습니다. 이곳은 신자들이 기도하며 밝힌 촛불로 가득하지요.

지중해 연안에 있는 예루살렘은 예부터 중동 지역과 유럽을 연결하는 관문 역할을 했어요.
지중해 연안에 있는 예루살렘은 예부터 중동 지역과 유럽을 연결하는 관문 역할을 했어요.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본래 이곳에 있던 다른 신(神)의 성전을 허물고 성묘교회를 지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교회는 십자군에 의해 다시 지어졌지만, 처음 교회가 지어진 4세기경부터 다른 종교나 그리스도교의 여러 종파가 욕심 내던 곳이었어요. 오늘날에도 로마 가톨릭교회를 비롯한 그리스도교의 여러 종파가 교회 내부를 나누어 사용하는데, 교회 열쇠는 이슬람교가 가졌다는 사실이 참 신기합니다. 예루살렘은 지중해 연안에 있어 중동 지역과 외부 세계, 즉 유럽을 연결하는 관문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비롯한 이스라엘 전체가 수천년 동안 전쟁과 종교 분쟁에서 벗어날 수 없었지요. 그런데 '예루살렘'은 히브리어로 '평화의 도시'라는 뜻입니다. 수천년간 끊이지 않는 분쟁 속에서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등 모든 종교가 원했던 것은 사실 '평화'가 아닐까요?


[1분 상식] '십자군'이란 무엇인가요?

십자군(十字軍·crusades)이란 11~13세기에 서유럽의 그리스도교도들이 성지 팔레스티나와 성도 예루살렘을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탈환하고자 8차례에 걸쳐 일으킨 대원정이에요. 당시 전쟁에 참가한 기사들이 가슴과 어깨에 십자가 표시를 하여 ‘십자군’이라고 불러요. 십자군은 결국 실패하였지만, 유럽 전역에 큰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십자군 원정 실패 후 교황권과 봉건 귀족의 지위는 떨어지고, 왕권이 강화되었어요. 상업과 도시가 발달하고, 동방무역이 활발해지면서 이슬람 문화 등 외래문화가 유입되어 유럽 문화 발달에도 큰 영향을 미쳤지요.


황수진 | 교원 올스토리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