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갔어요

책 사이에 놓인 나를 키워준 장난감들

입력 : 2014.03.27 05:12 | 수정 : 2014.03.27 09:00

[84] Tableland 김성호 展

어른이 되어도 장난감 간직한 〈작품1〉
'책 속에 길이 있다' 연상되는 〈작품2〉
마치 책 마을을 형성한 듯한 〈작품3〉

누군가의 방에 있는 책·소품만 봐도 그 사람의 생각과 취향 알 수 있죠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에는 소년의 방이 나옵니다. 소년의 이름은 앤디예요. 앤디는 방에 들어오면 카우보이 인형 '우디'부터 꺼내요. 그리고 우주를 지키는 로봇 인형 '버즈' 등 다른 장난감 친구들을 하나씩 등장시키며 재미있게 놀지요. 이때 아래층에서 앤디를 부르는 엄마 목소리가 들립니다. 그 소리에 앤디는 장난감을 던져두고 방을 나가요. 장난감들은 잠시 앤디가 놀던 그 상태로 멈춘 듯합니다. 그러나 곧 인형의 팔다리가 움직이며 서로 재잘재잘 대화하기 시작해요. 이 장난감들은 앤디의 방에서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낸 소꿉친구나 다름없지요.

시간이 흘러 앤디는 어느덧 대학생이 돼요. 대학 기숙사에 들어가면서 꼭 필요한 짐을 챙기던 앤디는 장난감 중 누구를 챙겨 갈지 고민합니다. 하나같이 소중한 친구지만, 모두 데려갈 수는 없으니까요. 앤디의 어머니는 나머지 인형을 어린이 놀이방에 갖다줄 계획이에요. 마침내 앤디에게도 오랜 세월을 함께한 장난감들과 헤어져야 하는 시간이 왔지요. 이렇게 정든 친구를 떠나보내는 슬픔을 몇 번 거치고 나서야 우리는 비로소 어른이 됩니다.

작품 1~3.
소년은 어른이 되지만, 장난감은 변치 않고 여전히 우리의 친구로 남아 있습니다. 작품1을 보세요. 책꽂이에 쌓인 외국어로 된 미술 서적 사이로 어울리지 않게 유아용 오리 인형과 중세 기사 복장을 한 인형이 보입니다.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어른이 되고서도 어린 시절의 장난감을 간직한 모양이에요. 오리와 기사 인형은 '토이 스토리'의 인형처럼 방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깨어난 듯 보입니다. 그들은 무슨 얘기를 나누고 있을까요?

작품2에서는 표범이 책 사이로 어슬렁어슬렁 지나갑니다. 여러분은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을 아나요? 책을 읽다 보면 문제를 해결할 지혜를 얻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이 그림에는 정말로 책 속에 길이 있군요. 노란색 교통 표지판에는 순록같이 생긴 동물이 그려져 있어요. 이곳에는 순록 등 야생동물이 가끔 지나다니니 조심해서 운전하라는 뜻이겠지요. 이곳을 어슬렁거리는 표범은 순록이 있다는 표지판을 보고 사냥하러 나온 걸지도 몰라요.

이번엔 작품3을 보세요. 이 그림에서도 책장에 책이 가득 꽂혔습니다. 책 사이로 지붕도 뚫려 있고, 창문도 보이네요. 빠질 것 같은 어두컴컴한 구멍도 있고, 떨어질 것 같은 낭떠러지도 있어요. 오른쪽 위에 있는 흰 북극곰은 책 속에 푹 잠겨 잠든 듯하고요. 이 그림은 책을 벽돌처럼 아래에서 위로 차곡차곡 쌓아올린 모습 같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다본 빽빽한 아파트 단지처럼 보이기도 해요.

화가는 마치 책 속 등장인물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책 마을을 상상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책의 주인공과 그 친구들이 책 밖으로 빠져나와 노는 것 같지요.

조선시대 선비들의 방을 장식했던‘책가도(冊架圖)’예요.
조선시대 선비들의 방을 장식했던‘책가도(冊架圖)’예요. /가나아트센터
옛날 조선시대 선비들도 이런 그림을 공부방에 놓곤 했어요. 높이 쌓은 책더미와 함께 필통, 붓과 같은 문방구나 꽃병, 부채, 향로 등 일상용품을 적절히 배치한 그림인데, 이를 '책가도(冊架圖)'라고 부릅니다. 책만 수북이 쌓인 그림도 있지만, 시계나 안경, 바둑판, 악기가 곁들여져 방 주인의 취미를 엿볼 수 있는 그림도 많아요. 서민이 그린 민화풍 책가도에는 장수와 복을 비는 상징적 물건까지 등장하곤 하지요.

누군가의 방에 가보면 그 사람에게 좀 더 다가갈 수 있습니다. 책 제목만 대충 보아도 어떤 종류의 책을 즐겨 읽는지 알 수 있고, 책 사이에 놓인 장난감이나 물건들을 보면 그 친구의 추억이나 취미도 짐작할 수 있거든요. 예나 지금이나 방은 그 주인의 생각이나 추억이 담긴 물건으로 가득하지요. 혹시 오늘도 엄마가 "어휴, 지저분해. 네 방에 있는 잡다한 물건 좀 버릴 수 없니?" 하고 닦달하시지는 않았나요? 하지만 매일 혼나면서도 정든 물건을 차마 버릴 수가 없지요. 엄마는 왜 이런 마음을 몰라주실까요?

갤러리현대 본관 (02)2287-3500


[함께 생각해봐요]

방은 그 주인의 생각이나 취향을 잘 보여준다고 해요. 오늘은 자신의 방을 한번 둘러보세요. 방에 놓은 물건 가운데 여러분을 가장 잘 보여주는 물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내 생각이 담긴 물건, 혹은 소중한 추억이 깃든 물건을 찾아보세요.


[함께 그려봐요]

나무는 지구에 산소를 공급하며 홍수를 막아주는 등 우리에게 매우 고마운 존재예요. 18세기 독일의 화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는 초원 한가운데 선 커다란 참나무 그림을 통해 대자연에 깃든 초자연적인 힘을 표현했지요. 프리드리히가 그린 나무는 인간을 비롯하여 작고 연약한 지구 생명체를 보호하는 수호신과 같은 신성한 존재였어요. 여러분은 나무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나무는 여러분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나무의 모습을 그려보세요.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외톨이 나무’, 1822년(위 왼쪽).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외톨이 나무’, 1822년(위 왼쪽).
이주은 | 교수(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