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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성종 때 임사홍을 유배 가게 한 '흙비'가 바로 황사지요
입력 : 2014.03.25 05:31
| 수정 : 2014.03.25 09:08
1478년(성종 9년) 4월 1일에 흙비가 내렸어요. 그러자 이를 재이(★)라고 여긴 신하들이 "이는 하늘의 꾸짖음이니 임금이 근신해야 한다"고 했지요. 성종 임금도 백성에게 잘못한 점이 없는지 스스로 돌이켜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지난달에는 지진이 있었고, 이번 달에는 흙비가 내리니 생각이 깊도다." 그러면서 성종은 백성의 사정을 살피지 않고 처리한 나랏일이 없는지, 불공정하게 법을 집행하여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없는지, 어질고 훌륭한 사람 대신 간사하거나 무능한 사람을 관리로 뽑은 것은 아닌지를 살폈어요. 또한 의정부의 신하들은 물론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재이가 일어난 이유와 이를 그치게 할 방법을 토론하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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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릉(서울 강남구 선릉로)은 성종 임금의 능이에요. 성종은 황사를 재이(災굋)로 여겨 금주령을 내리기도 했어요. /문화재청
그러나 얼마 뒤 이 결정에 대해 반대 의견을 올린 신하가 있었어요. 당시 도승지(★)였던 임사홍이었습니다. 임사홍은 세 아들 중 두 아들이 왕실의 사위로, 첫째 아들은 예종의 딸인 현숙공주의 남편이었고 셋째 아들은 성종의 딸인 휘숙옹주와 혼인하였지요. 즉 예종, 성종 두 임금과 사돈지간이었어요. 그는 "예로부터 천지의 재변은 운수(★)에 있으니, 별똥별도 그 운수입니다. 흙비도 때의 운수가 마침 그렇게 된 것인데, 어찌 재이가 있는 것이겠습니까?"라고 아뢰었습니다. 흙비는 그저 운수일 뿐 괴이한 일이라고 볼 수 없으니, 갑자기 금주령을 내리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주장이었어요. 연이은 나라의 제사에서 술을 사용해야 하고, 설사 금할지라도 벼슬아치들은 적발당하지 않고 힘없는 백성만 벌 받을 것이라고도 덧붙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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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 황사가 기승을 부리고 있어요. 황사현상은 예부터 있었는데, 조선 성종 때 도승지였던 임사홍은 황사 때문에 유배를 가기도 했대요. /이태경 기자
★재이(災異): 재앙이 되는 괴이한 일.
★금주령(禁酒令): 술을 만들거나 마시는 것을 금지하는 법.
★도승지(都承旨): 조선시대 국왕의 비서기관이었던 승정원의 승지 6명 중 수석 승지.
★운수(運數): 이미 정해져 있어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하늘이 정한 운명이나 저절로 생기는 일.
[1분 상식] 갑자사화는 왜 일어났나요?
연산군(재위 1494~1506년)의 사치와 낭비로 나랏돈이 부족해지자, 연산군은 공신들의 땅 일부를 몰수하여 부족함을 메우려고 했어요. 그러자 공신들이 크게 반발했지요. 이때 임사홍이 연산군의 친어머니인 윤씨가 왕비 자리에서 내쫓겨 사약을 받은 경위를 연산군에게 일러바쳤고, 연산군은 그 일에 관련된 공신과 선비를 모조리 죽였어요.
어머니 윤씨의 원한을 푸는 동시에 자기 말을 듣지 않는 공신들을 탄압한 것이지요. 이를 ‘1504년 갑자년에 선비들이 큰 화를 입은 사건’이라 하여 ‘갑자사화’라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