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세상
누구나 알을 깨는 성장통 겪으며 자라나죠
[8] 헤르만 헤세 '데미안'
1차대전 참혹한 광경 목격한 헤세… 수많은 악행 저지른 '인간 본성' 연구
선과 악이란 두 본성 그대로 인정하고 조화롭게 극복하는 것 보여주려 했죠
청소년기에 내면의 갈등 극복하면서 더 나은 사람으로 성숙하게 돼요
어떤 친구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위험한 질주를 합니다. 어떤 친구들은 밤늦게까지 귀가하지 않고 놀이터 등에 모여 어슬렁거리기도 하고요. 폭력을 써서 친구들을 괴롭히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요즘 뉴스에 오르내리는 청소년들의 일탈 행동이에요. 최근에는 이것이 심해져 청소년 범죄로까지 이어지면서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청소년이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며 성실하고 건전하게 살아간다면 참 좋을 거예요. 하지만 청소년기에는 좋은 경험에서뿐만 아니라 나쁜 경험에서도 배우는 것입니다. 어떻게 실수 한 번 없이, 나쁜 짓 한 번 하지 않고 사람이 성장할 수 있을까요? 청소년기에 겪는 이러한 아픔을 우리는 '성장통'이라고 부릅니다.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청소년기에는 불만과 좌절에 휩싸여 과격한 감정을 드러내거나 심한 정서적 갈등을 겪어요. 정신적으로 방황하고, 일탈을 꿈꾸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청소년기의 모든 비행이나 일탈 행동이 다 이해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우리에게 청소년기의 진정한 성장통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는 소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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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이병익
1919년 출간된 '데미안'은 주인공인 싱클레어가 여러 사람을 만나고 수많은 사건과 맞닥뜨리며 참된 인간으로 성장하는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청소년기의 성장소설인 동시에 '한 인간의 자기완성' 또는 '인류의 정신적 성숙'이라는 좀 더 큰 주제까지 담고 있지요.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광경을 목격한 헤르만 헤세는 인간이 저지른 수많은 악행을 보며 '인간의 본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어요. 전 유럽을 폐허로 만들고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 앞에서 과연 어떤 희망을 찾을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인간을 선한 존재라 여길 수 있었을까요? 청소년 권장 도서 목록에 빠짐없이 이름을 올리는 '데미안'을 어른조차 쉽게 읽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신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헤세는 가족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철학, 종교, 문학과 같은 인문학에 심취하였고, 동양 사상도 깊이 이해하였어요. '싯다르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유리알 유희' 등의 대표작에서도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을 느낄 수 있지요. 헤세는 선(善)과 악(惡)이라는 이원성이 인간 내면에 공존한다고 이해하고, 이 두 가지 본성을 조화롭게 이끌어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서유럽 문명이 몰락하고 인간의 고귀함이 파괴되는 전쟁에서도 인간이 더 나은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지요. 전쟁의 상처를 안은 젊은이들이 무의미한 삶 속에서 길 잃고 헤맬 때 '데미안'은 한 길잡이가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하여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삭스다."
새로 태어나고자 기존 껍질을 깨야 한다는 말은 눈앞에 펼쳐진 괴로운 현실 앞에 무릎 꿇은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일으켜 세울 힘을 주었습니다. '아프락삭스'는 신(神)인 동시에 악마이며,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를 동시에 지닌 존재예요. 전쟁 후 새로 태어나야 했던 사람들은 인간이 가진 악한 면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선하고 밝은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자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책을 통해 인간답지 못한 짓을 저지른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서로를 신뢰하며 새 세상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자는 의지를 굳건히 다질 수 있었어요.
#이야기
지연이는 TV에서 '새 학년 서열 싸움'이라는 뉴스를 보았어요. 한창 새 친구를 사귈 이맘때 오히려 학교 폭력이 늘었다는 얘기였지요. 신체적 폭력은 물론 SNS를 동원한 언어폭력까지 행사한다는 이야기에 '나에게 저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나' 싶어 무섭기까지 했습니다. 따돌림을 놓지 않으면 자신이 당할까 봐 가담하는 친구도 있고, 아무 생각 없이 친구들을 따라 하는 경우도 있다는 말에 지연이는 고개가 끄덕여졌어요. 학교에서도 그런 사례를 종종 보았거든요.
선과 악, 밝음과 어둠의 세계 속에서 방황한 싱클레어처럼 청소년기는 자신이 누구이고 어떤 삶을 살아갈지를 고민하는 시기입니다. 어른들의 걱정이 잔소리처럼 들리고, 그저 즐겁게 자기 마음대로만 살고 싶지요. 하지만 청소년기는 '나다운 모습'을 형성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힘든 경험과 좋은 경험을 모두 거치면서 '더 나은 나'를 만들어야 해요. 학교에서 누군가를 괴롭혀야 다른 친구들 위에 군림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친구를 괴롭히는 데 동참하지 않으면 자신이 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느낀 학생들도 있을 거예요. 나와 다른 친구를 괴롭히는 것보다 서로를 이해하고 손잡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일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청소년기에는 자기 마음속의 갈등을 이겨내는 성장통 속에서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이를 갈고 닦아 자기만의 빛나는 보석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싱클레어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악의 세계를 방황하다 데미안을 만나면서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요. 이후 데미안에게서 주체적 사고와 행동을 배웠고, 피스토리우스에게 자기 내면을 보는 법을 배웠습니다. 모든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지만, 싱클레어는 자아 발견의 여정을 포기하지 않았죠. 소설에서는 이러한 자아 형성의 정점을 에바 부인과 만나는 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남성과 여성의 인격을 모두 갖춘 알 수 없는 신비로움을 띤 에바 부인은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조화로움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에바 부인을 만난 싱클레어는 어느덧 자신이 점점 더 성숙한 단계에 이르고 있음을 직감하지요.
"그러나 나는 열쇠를 발견했고, 때때로 어두운 거울 속, 운명의 형상이 졸고 있는 그곳, 나 자신의 내부에 완전히 들어가기만 하면, 단지 그 어두운 거울 위에 몸을 굽히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이제 완전히 데미안과 같은, 내 친구이자 지도자인 데미안과 같은 나 자신의 모습을 그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함께 생각해봐요]
여러분 곁에는 지금 어떤 사람들이 있나요? 그리고 여러분의 내면은 어디를 향하고 있나요? 미래에 무슨 직업을 가질 것인지보다 ‘어떤 사람’이 될지 고민한 적이 있나요?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진정 자신을 위한 일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