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옥의 명작 따라잡기

나무, 작품의 중심에 뿌리내리다

입력 : 2014.03.20 05:36 | 수정 : 2014.03.20 09:09

나무에 깃든 영혼 담아낸 프리드리히, 색 이용해 인간의 감정 표현한 보나르
몬드리안은 변치 않는 본질 탐구 위해 꽃·이파리 없앤 기본 형태만 그려냈죠

나무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는 산문집 '나무'에서 나무에 대한 사랑을 이렇게 고백했어요. '나는 나무가 크고 작은 숲에 종족을 이루고 사는 것을 숭배한다. 나무들이 홀로 서 있을 때 더욱 숭배한다. 그들은 마치 고독한 사람들과 같다. 고난과 시련 때문에 세상을 등진 사람들이 아니라 위대하기에 고독한 사람들 말이다.' 이런 헤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듯 18세기 독일의 화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는 초원 한가운데 선 커다란 참나무 한 그루를 그렸어요.

작품1 -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외톨이 나무’ 사진
작품1 -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외톨이 나무’, 1822년
작품1을 보세요. 프리드리히는 왜 숲에서 떨어져 나와 홀로 선 참나무를 눈에 띄게 크게 그렸을까요? 이 나무는 평범한 나무가 아니거든요. 현실의 나무이면서 우주적 생명력을 상징하는 성스러운 나무이기도 하지요. 그림을 자세히 보면 목동(牧童)이 참나무에 기대어 휴식을 취하고 있고, 한 무리의 가축이 나무 주변 목초지에서 풀을 뜯고 있어요. 또 멀리 지평선에 마을과 교회의 첨탑이 아주 작게 보여요. 나무는 지구 상의 생명체를 보호하는 수호신과 같은 신성한 존재지만 인간은 작고 연약한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화가의 마음은 "내 예술의 목표는 공기, 물, 바위, 나무들을 실제와 똑같이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풍경 속에 깃든 영혼을 표현하는 것이다"라는 말에서도 잘 드러나지요. 미술 전문가들은 프리드리히의 그림을 가리켜 '영혼의 풍경화'라고 불러요. 대자연 속에 깃든 초자연적인 힘을 풍경화의 형식을 빌려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작품2 - 피에르 보나르, ‘꽃이 핀 아몬드 나무’ 사진
작품2 - 피에르 보나르, ‘꽃이 핀 아몬드 나무’, 1946~7년.
그런가 하면, 20세기 프랑스 화가 피에르 보나르에게 나무는 색채의 효과를 실험하는 도구였어요. 보나르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그린 작품2는 '색채의 마술사'라고 불린 보나르 화풍의 특징을 잘 보여주지요. 대상의 윤곽선을 선명하게 그리지 않고 자유로운 붓질로 물감 덩어리를 뭉갠 것처럼 흐릿하게 표현한 기법이 보나르 화풍의 특징이에요. 이 그림에서도 하늘과 땅, 나무의 형태가 분명하지 않고 빨강, 파랑, 노랑 등 원색들이 뒤섞여 있어요. 강렬한 색들이 나뭇가지에서 활짝 피어난 흰색에 가까운 분홍색 꽃을 돋보이게 합니다. 보나르는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형태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데생이나 특정한 주제가 아니라 색이라고 믿었어요. 색은 매우 강력한 힘을 가졌기에 인간의 감정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색채 연구에 몰두했어요. 아몬드 나무를 그린 이 풍경화는 보나르가 뛰어난 색채 심리학자이며 색채 이론가였다는 사실을 알려준답니다.

작품3 - 피터르 몬드리안, ‘회색나무’ 사진
작품3 - 피터르 몬드리안, ‘회색나무’, 1911년.
20세기 네덜란드 화가 피터르 몬드리안에게 나무는 세상 만물의 본질을 탐구하는 교재였어요. 작품3은 몬드리안이 과수원에 있는 사과나무를 수년에 걸쳐 그린 연작 중 한 점이에요. 그는 왜 사과나무를 그리고 또 그렸을까요? 나무의 본질, 즉 나무의 기본 구조와 형태를 그림에 표현하기 위해서였어요. 몬드리안은 세상 만물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겉에 드러난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똑같은 나무도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을 보이듯이 말입니다. 봄에는 여린 새순이 돋고 여름에는 무성한 초록색 이파리가 몸체를 가리고 가을에는 고운 단풍으로 물들고 겨울에는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지요. 그러나 사계절이 바뀌어도 나무의 본질은 변하지 않아요. 여기서 말하는 본질은 나무의 기본 구조와 형태에 해당하는 몸체와 가지를 말합니다. 몬드리안은 나무의 본질을 가리는 꽃이나 무성한 이파리 등을 제거하고 기본적인 구조와 형태만을 표현하기 위해 사과나무를 집중적으로 그렸던 겁니다.

작품4 - 이명호,‘ Tree #8’ 사진
작품4 - 이명호,‘ Tree #8’, 2007년.

나무 연작하면 떠오르는 또 한 사람의 예술가가 있어요. 한국의 젊은 예술가 이명호예요. 그가 나무 연작을 창작한 방식은 매우 흥미롭답니다. 작품4를 보세요. 그는 야산이나 들판에 선 평범한 나무들을 오랫동안 관찰한 다음 그중 한 그루를 선택해요. 그리고 붓과 물감으로 캔버스에 나무를 그리는 대신 나무 뒤편에 커다란 흰 캔버스를 세우고 나무와 캔버스를 사진으로 찍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평범한 나무도 예술 작품처럼 특별한 나무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과 예술 작품이 탄생하기까지는 많은 노력과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예요. 이 작품 속의 나무는 들판에 선 평범한 나무들과 전혀 다를 것이 없었어요. 그러나 흰 캔버스를 배경으로 만들어주자 아름다운 한 폭의 풍경화에 나오는 나무처럼, 예술 작품의 주인공으로 변신했지요. 좀 더 쉽게 설명한다면 이명호 작가는 영화감독, 나무 연작을 창작하는 과정은 한 편의 영화를 찍는 과정에 비유할 수 있겠어요.

나무는 지구에 산소를 공급하고, 홍수를 막아주는 등 우리에게 무척 고마운 존재예요. 더불어 예술가에게는 창작의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 된다니 나무를 더욱 아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함께 생각해봐요]

봄이 오면서 겨우내 앙상했던 나무의 모습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어요. 여러분은 등·하굣길에 수많은 나무를 만나지만, 아마 대부분은 무심히 지나쳤을 거예요. 여러분에게 나무는 어떤 존재인가요? ‘나무’에 대해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해 보고, 오늘 만난 나무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을 골라 그 모습을 그려보세요. 위에 나온 화가들처럼 자기만의 생각을 담아 그린다면 더욱 좋겠지요?

이명옥 | 사비나 미술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