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여행
개항 직후 인천에 모여든 화교들이 '자장면' 처음 만들었죠
입력 : 2014.03.19 05:51
| 수정 : 2014.03.19 08:57
[74] 인천 차이나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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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장면을 처음 팔았다는‘공화춘’의 1955년 모습이에요. 지금은 자장면박물관이 됐지요. /조선일보 DB
이곳에 화교가 살기 시작한 것은 1882년 임오군란(壬午軍亂)이 일어났을 무렵이에요. 임오군란을 진압하려고 청나라 군대가 들어왔는데 이때 상인들도 함께 들어왔지요. 처음에 40여명에 불과하던 상인이 이듬해인 1883년 인천 개항과 더불어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인천이 조계(★) 지역이 되면서 그 수가 급증해 불과 10년도 채 안 된 1890년에는 무려 1000여명에 이르렀습니다. 이곳에 청나라 관청까지 들어설 정도로 화교가 늘었지요.
인천은 개항 직후 청나라뿐만 아니라 일본, 러시아, 미국 등 강대국들이 몰려들던 지역이었어요. 특히 인천과 뱃길이 열려 비교적 오가기 쉬웠던 중국 산둥 지역 사람들이 많이 건너왔다고 해요. 그들은 주로 인천항을 통해 들어오는 많은 물자를 나르는 짐꾼이나 인력거꾼으로 일했지요. 1905년 '공화춘'이라는 음식점에서 산둥 지역 사람들이 먹던 작장면 춘장에 캐러멜 소스를 섞어 팔기 시작했답니다. 이것이 바로 자장면의 시작이었어요. 공화춘 건물은 현재 '자장면박물관'이 되었습니다.
지하철 1호선 종점인 인천역에 내리면 차이나타운이 곧장 눈에 들어옵니다. 아주 커다랗고 화려한 중국식 대문 패루(牌樓)가 우리를 반기거든요. 문 안에 들어서면 곳곳에 걸린 홍등과 고소한 냄새가 일품인 중국식 빵, 속이 꽉 찬 월병, 화덕에 구워 파는 각종 만두 요리가 즐비해요. 가게마다 화려한 색상을 뽐내는 중국 전통 의상 치파오가 걸리고, 중국 전통 차와 찻잔이 가득해 순식간에 중국으로 날아온 듯한 느낌이 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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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교중산학교 뒷담을 따라 삼국지 내용을 담은 벽화가 이어진다고 해요. /인천 차이나타운
★화교(華僑): 외국에서 사는 중국 사람.
★조계(租界): 주로 개항장에 외국인이 자유로이 통상 거주하며 치외법권을 누릴 수 있도록 설정한 구역.
[임오군란은 왜 일어났나요?]
임오군란은 구식 군대의 군사들이 1882년 일으킨 변란이에요. 당시 구식 군대의 군사들은 신식 군대인 별기군과 비교해 심한 차별 대우를 받았고, 급여도 1년 이상 밀려 큰 불만을 품었어요. 이들의 불만을 잠재우고자 정부가 밀린 급여 일부를 지급했는데, 부패한 관료들의 횡포로 지급받은 쌀에 모래가 섞이고, 그 양도 절반이나 모자랐지요. 이에 분노한 군사들이 봉기하여 고위 관료를 죽이고 일본 공사관을 습격하면서 임오군란이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조선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기회를 엿보던 청나라가 군대를 파견하면서 결국 임오군란은 실패로 돌아갔어요. 이후 조선은 청나라의 내정간섭을 받고, 일본군의 서울 주둔까지 허용하게 되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