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세상
누군가 우리 삶을 감시하고 있다면?
입력 : 2014.03.17 05:45
| 수정 : 2014.03.17 09:07
[7] 조지 오웰 '1984년'
2차대전 직후 조지 오웰이 예견한 '1984년'은 빅브라더가 지배하는 세상… 오늘날 정보통신 사회와 닮았어요
요즘 사생활·개인 정보 유출 등 문제… 사회적 심각성 알고 경각심 가져야죠
지난 1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카드사 세 곳에서 1억4000여건의 가입자 개인 정보가 유출된 사실이 밝혀져 온 국민이 불안에 떨었어요. 며칠 전에는 통신사 고객들의 개인 정보까지 대량 유출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민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하면서 우리 생활이 매우 편리해졌지만, 그만큼 개인 정보 유출과 같은 위험성도 함께 증가하고 있어요.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예측이라도 한 것일까요? 1949년 출간된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은 고도로 발달한 정보통신 기술이 오히려 사람들을 억압하는 암울한 사회의 모습을 놀랄 만큼 정확하게 그려냈습니다.
소설 속에 그려진 1984년에는 전 세계가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동아시아라는 거대한 3개의 국가로 편성됩니다.
이들은 필요에 따라 동맹을 맺기도 하지만 또 언제든 적이 되어 전쟁을 벌이기도 합니다. 전체주의 독재 체제로 유지되는 이 세계에서 전쟁은 국민을 마음대로 통제하여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아주 유용한 수단이기 때문이지요.
그중 오세아니아 '제1공대'의 중심지인 도시 런던이 이 소설의 주요 무대입니다. 도시 곳곳에는 텔레스크린과 마이크로폰이 설치되어 사람들의 행동을 감시하고 대화를 감청합니다. 국가의 우두머리인 '빅 브라더(Big Brother)'의 얼굴이 거리와 광장 곳곳에 걸리고, 얼굴 아래에는 "Big Brother is Watching You"라는 문구가 쓰여 있지요.
소설 속에 그려진 1984년에는 전 세계가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동아시아라는 거대한 3개의 국가로 편성됩니다.
이들은 필요에 따라 동맹을 맺기도 하지만 또 언제든 적이 되어 전쟁을 벌이기도 합니다. 전체주의 독재 체제로 유지되는 이 세계에서 전쟁은 국민을 마음대로 통제하여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아주 유용한 수단이기 때문이지요.
그중 오세아니아 '제1공대'의 중심지인 도시 런던이 이 소설의 주요 무대입니다. 도시 곳곳에는 텔레스크린과 마이크로폰이 설치되어 사람들의 행동을 감시하고 대화를 감청합니다. 국가의 우두머리인 '빅 브라더(Big Brother)'의 얼굴이 거리와 광장 곳곳에 걸리고, 얼굴 아래에는 "Big Brother is Watching You"라는 문구가 쓰여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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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이병익
빅 브라더가 감시하는 곳은 비단 공공장소나 거리만이 아닙니다. 집 안에 설치된 텔레스크린은 방송을 보는 도구인 동시에 사람들을 감시하는 도구이지요. 사람들은 자기 집 안에서조차 마음대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심지어 일기를 쓸 수도 없습니다. 연애는 금지되었고, 결혼도 담당 위원회의 승인이 있어야만 가능해요. 또한 결혼의 목적은 오직 당에 봉사할 아이를 낳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디에서도 빅 브라더의 눈과 귀를 피하기 어렵고,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행동을 할 때면 가차 없이 처벌받습니다. 이렇게 철저한 사상 통제가 가능한 것은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 때문이에요.
조지 오웰이 그려낸 1984년의 모습은 놀랍게도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고, 휴대폰이나 소형 카메라를 이용해 타인의 신체나 사생활을 찍어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집 안도 더는 안전지대가 아닙니다. 컴퓨터나 휴대폰에 장착된 카메라는 자신의 사생활을 노출할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습니다. 더구나 안경식 스마트 기기인 구글글라스처럼 사람의 신체에 자연스럽게 장착할 수 있는 기기들이 등장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이제 누구나 타인을 감시하는 빅 브라더가 될 수도 있지요.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수집된 개인 정보들이 기업이나 정부에 의해 사람들을 통제하고 조종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소설에서 묘사한 전자 감시 사회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지요.
#이야기
호성이는 요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호성이가 다니는 학교는 일본의 어느 학교와 자매결연을 하여 매년 일주일간 홈스테이 행사를 여는데, 올해는 그 행사가 취소되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들은 이번 행사가 취소된 이유가 일본 정치인들의 잘못된 행동으로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가 악화되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를 강제 연행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과거 우리나라 여성들을 흔히 '위안부'라고 불리는 성 노예로 동원했던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일부 정치인은 망언까지 쏟아내기 때문이지요. 호성이는 이런 일본의 태도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대체 일본은 왜 이런 주장을 거듭하는 것일까요?
이 책의 주인공 윈스턴은 오세아니아의 보도·연예·교육·예술을 관장하는 진리부의 기록국에서 일합니다. 그의 주요 임무는 과거의 기록을 조작하고 폐기하는 것이에요.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는 당 슬로건 아래 현재의 필요에 맞게 과거를 조작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식량 배급량이 줄어 사람들의 불만이 커질 때는 과거에는 배급량이 더 적었던 것처럼 기록을 바꾸고, 오히려 지금의 배급량이 더 많다고 사람들에게 선전하는 식이지요. 사람들은 이런 당의 선전에 쉽게 세뇌되어 현재 상태에 만족하며 살아갑니다.
윈스턴이 기록을 조작하고 난 후에 원래의 기록을 '기억통' 속에 던져 없애듯이 일본의 집권 세력도 과거 부끄러운 일본의 역사를 가급적 축소하거나 은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현재 일본 정권을 차지한 이들이 자신의 지지 세력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결국 일본의 역사 왜곡은 현재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과거의 사실과 사람들의 기억마저 조작하려는 시도인 셈이지요. 그러나 기록을 '기억통' 속에 던져버렸다고 해서 과거의 사실과 그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마저 없앨 수는 없습니다. 윈스턴이 빅 브라더의 눈을 피해 쓴 일기 속에는 이러한 그의 갈등과 혼란이 담겨 있었지요.
조지 오웰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9년에 이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비평가들은 당시 스탈린 치하에서 전체주의 국가로 변질하던 구소련의 모습을 비판한 작품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1984년'에 담긴 조지 오웰의 경고는 특정한 시대, 특정한 나라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권력이나 사회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또는 특정한 이익을 위해 사실과 역사를 왜곡하려는 시도가 계속되는 한 그의 경고는 여전히 유효한 것입니다.
[함께 생각해봐요]
우리는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의 소중함을 잊고 살 때가 잦습니다. 소설 ‘1984년’처럼 사람들의 사생활을 일일이 감시하고 통제하는 감시 사회가 된다면 여러분의 행동이 어떻게 달라질지 생각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