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옥의 명작 따라잡기

앞·옆·위·아래… 모든 것을 담은 한 장

입력 : 2014.03.06 05:23 | 수정 : 2014.03.06 08:59

다양한 시점에서 대상 관찰해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그려낸 피카소
多각도로 인물 촬영 후 조합한 호크니… 이런 기법을 '입체주의'라고 불러요
한쪽 면만 보는 편견 벗어나게 해줬죠

스페인 출신 화가 파블로 피카소는 '현대미술의 황제'라는 찬사를 받아요. 피카소는 왜 이토록 높이 평가받을까요? 그가 현대미술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에요. 대표적으로는 1907년경 프랑스 화가 조르주 브라크와 함께 '입체주의'라는 혁신적 미술 운동을 처음으로 시작했다는 업적이 있지요. 입체주의란 어떤 대상을 입방체(立方體) 형태로 표현한 미술을 말해요. 3차원 대상을 평면(2차원)인 캔버스에 입체적으로 그렸다는 뜻이지요. 피카소 그림을 감상하면 입체주의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작품 1의 여성은 시인 폴 엘뤼아르의 아내인 누쉬예요. 피카소는 아름다운 누쉬의 모습을 이상하게 표현했네요. 오른쪽 눈은 측면, 왼쪽 눈은 정면, 코와 입도 정면의 코와 입, 측면의 코와 입을 하나의 얼굴에 모두 그렸거든요. 그는 왜 누쉬의 얼굴을 변형해 그렸을까요? 정면, 측면, 반측면 등 여러 시점에서 바라본 누쉬의 모습을 그림 한 점에 한꺼번에 표현하기 위해서였어요.

피카소 이전 화가들은 사진을 찍을 때처럼 특정한 시점(일시점)에서 대상을 관찰하며 그림을 그렸어요. 그러나 한 시점에서 대상을 바라보고 그리면, 보이지 않는 부분을 표현할 수가 없어요. 화가가 그리고자 하는 대상은 입체(立體)이기 때문이지요. 피카소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모두 그리기 위해 여러 시점(다시점)에서 대상을 바라보았어요. 그리고 각각의 시점에서 바라본 모습을 그림 한 점에 전부 담았지요. 피카소의 입체주의 그림은 미술의 전통에 도전하여 현대미술의 영역을 넓혔으며, 미술계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어요. 그리고 피카소의 혁신적 기법을 본받은 예술가 집단이 생겨났습니다. 바로 입체주의 예술가들이에요. 그럼 입체주의가 동시대 예술가들에게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주었는지 직접 확인해볼까요?

(사진 왼쪽)작품 1 파블로 피카소, ‘누쉬 엘뤼아르의 초상’, 캔버스에 유채, 1937년. (사진 오른쪽)작품 2 장 메챙제, ‘티 타임(Tea Time)’, 패널에 유채, 1911년 작품 사진
(사진 왼쪽)작품 1 파블로 피카소, ‘누쉬 엘뤼아르의 초상’, 캔버스에 유채, 1937년. (사진 오른쪽)작품 2 장 메챙제, ‘티 타임(Tea Time)’, 패널에 유채, 1911년.
작품 2는 프랑스 화가 장 메챙제가 차를 마시는 젊은 여자 모습을 그린 거예요. 이 그림을 보면 장 매챙제가 피카소의 기법을 본떴다는 점을 한눈에 알 수 있지요? 오른쪽 얼굴은 측면, 왼쪽 얼굴은 정면이거든요. 재미있게도 찻물이 담긴 찻잔과 찻잔 받침까지 옆에서 바라본 형태와 위에서 비스듬히 내려다본 형태를 모두 표현했군요. 장 메챙제는 입체주의에 매혹되어 입체주의를 연구한'입체주의에 대하여'라는 책도 펴냈답니다.

영국 출신의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도 피카소의 영향을 받았어요. 호크니는 피카소에 대한 존경심을 보여주고자 입체주의 기법의 핵심인 다시점을 응용한 '포토콜라주(photo-collage)'라는 기법을 개발했습니다. 포토콜라주란 사진 2점 이상을 오려 붙이거나 여러 사진을 조합하는 특수 기법을 말해요. 작품 3이 바로 포토콜라주 작품이지요. 마치 피카소의 입체주의 그림을 사진 한 장으로 보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지 않나요? 이 작품의 모델은 호크니의 어머니예요.

작품 3 데이비드 호크니, ‘Mother I’, 포토콜라주, 1985년 작품 사진
작품 3 데이비드 호크니, ‘Mother I’, 포토콜라주, 1985년.

호크니는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여러 시점에서 어머니를 촬영한 사진들을 사진 한 장에 재조합했어요. 덕분에 특정한 시점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인물의 각 부분을 한꺼번에 볼 수 있지요. 왜 얼굴의 특정 부분은 크게 보여주고 어떤 부분은 겹치거나 어긋나게 보이도록 했을까요? 인물을 여러 시점에서 촬영하여 재구성했다는 점과 이동 시점을 활용했다는 두 가지를 강조하기 위해서였어요.

작품 4 주도양,‘Flower 8’, C-Print, 2008년 작품 사진
작품 4 주도양,‘Flower 8’, C-Print, 2008년.

피카소의 다시점을 한 단계 발전시킨 호크니의 포토콜라주 작품은 우리나라의 젊은 예술가인 주도양의 창작혼을 자극했어요. 주도양은 다시점과 이동 시점을 연구해 특유의 기법인 원형 시점을 개발했습니다. 원형 시점이란 360도로 몸을 돌려가면서 대상을 바라보는 시점을 말해요. 작품 4는 원형 시점으로 바라본 동네 풍경을 사진 한 장에 모두 담은 거예요. 마치 투명한 유리구슬 안에 또 다른 세상이 들어 있는 것 같네요. 이 작품은 과연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궁금하지요? 주도양 작가는 우선 특정한 장소를 선택해 몸을 360도로 돌려가며 풍경을 촬영했어요. 그리고 풍경을 찍은 사진들을 각각 오려내고 붙이는 등 정교한 디지털 작업을 거쳐 원형으로 만들었지요. 이 작품은 사진 총 35장을 조합해 완성했답니다. 그는 관객들에게 실제로 풍경을 바라볼 때와 같은 느낌을 주고자 이렇게 360도로 회전하는 사진 기법을 개발했다고 해요. 이런 생각은 다음과 같은 작가의 말에서도 잘 드러나지요. "사람들은 풍경을 바라볼 때 한곳만 바라보지 않아요. 위아래, 앞, 옆, 뒤로 온몸을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바라보지요. 내가 실제로 보고 경험했던 자연 풍경을 관객들에게 최대한 보여주려고 원형 시점을 선택한 겁니다."

입체주의 그림은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꿔 주었어요. 우리는 한쪽 면만을 보고 전체를 보았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이나 일에 대해 편견을 갖거나 잘못된 판단을 내리지 않도록 입체주의 예술가처럼 다양한 시점으로 세상을 보는 훈련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여러분도 피카소처럼 위·아래·앞·옆·뒤 등 전체를 볼 수 있도록 노력해 보세요.

[함께 생각해봐요]

피카소의 그림은 참 독특하지요? 여러분도 피카소처럼 가족·친구의 초상화를 그려보세요. 그러기 위해서는 가족·친구의 모습을 앞·뒤·옆·위·아래에서 골고루 살펴봐야겠지요? 이렇게 그린 초상화는 정면 모습을 담은 그림과 어떤 점이 다른지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명옥 | 사비나 미술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