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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여명 살던 궁궐의 쓰레기, 누가 치웠을까… 청소담당 부서 '전연사(典涓司)'

입력 : 2014.03.04 05:39 | 수정 : 2014.03.04 09:04
지구 곳곳이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데 우주에서도 쓰레기가 골칫덩어리라고 하니 참 씁쓸하네요. 옛날에는 지금처럼 환경이 오염되지도 않았고, 사람이나 동물의 배설물까지 거름으로 재활용했으니 쓰레기 때문에 겪는 문제는 없었을 것 같지요?

하지만 옛날에도 쓰레기 처리가 문제였던 곳이 있었어요. 바로 궁궐이에요. 궁궐에는 왕과 왕비, 왕자와 공주 등 왕의 가족을 포함하여 약 3000명이나 되는 사람이 모여 살았거든요. 사는 사람이 많을수록 쓰레기도 늘게 마련이지요. 그래서 궁궐엔 쓰레기를 처리하는 일을 맡은 부서가 따로 있었어요. 과연 어떤 부서일까요?

창덕궁 선정문이에요. 조선왕조실록에 선정문이 부서지자 전연사 소속 관리가 문책을 당하다가 용서받았다는 기록이 있대요
창덕궁 선정문이에요. 조선왕조실록에 선정문이 부서지자 전연사 소속 관리가 문책을 당하다가 용서받았다는 기록이 있대요. /토픽이미지

조선 성종 때, 한 선비가 참봉이라는 관직을 얻어 궁궐에서 일하게 되었어요. 비록 종9품의 말단(★) 벼슬이었지만 궁궐에서 일한다는 기대감에 가슴이 부풀었고 자신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졌지요. 선비가 궁에 들어가 앞으로 일할 부서가 정해지길 기다리고 있는데, 누군가 그에게 다가오더니 쓴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어요. "축하하네. 자네는 전연사로 발령(★)을 받았네. 궁궐에서 정말 중요한 일을 하는 기관이니 부디 최선을 다해주게." 선비는 전연사라는 곳으로 발령받았다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전연사? 혹시 궁중의 잔치와 의례에 필요한 음악을 준비하거나 궁중 음악에 대한 일을 맡은 부서인가? 아니지, 그곳은 전악서(典樂署)가 아닌가! 그럼 전연사는 대체 무슨 일을 하는 곳이지?' 선비는 전연사에서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낸 뒤에야 자신의 발령 소식을 전해주던 관리가 왜 쓴웃음을 지었는지 깨달았어요. '전연사(典涓司)'는 궁궐의 청소를 맡은 부서였거든요.

전연사는 조선시대 궁궐의 수리와 청소를 담당하던 관청이에요. 태조 3년(1394)에 두었던 경복궁 제거사(提擧司)를 세조 12년(1466)에 전연사라고 이름을 고쳤지요. 만약 전연사에서 궁궐의 쓰레기나 오물을 말끔하게 처리하지 않았다면, 궁궐 이곳저곳은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을 거예요. 우두머리인 제조(★) 1명을 중심으로 말단인 참봉 6명까지 모두 16명의 관리가 있었으며, 남자 노비 48명이 소속되어 주어진 일을 처리했지요.

전연사는 힘든 업무가 많아 조선시대 여러 관청 중 전옥서(★), 포도청(★), 전루(★) 등과 함께 일하기 괴로운 관청으로 평가받았지만 없어서는 안 될 곳이었어요. 전연사 소속의 노비가 내의원에서 술을 훔쳐 마시다 들켜 벌을 받은 일, 창덕궁의 선정문이 부서지자 관리 소홀로 신문(★)을 받던 전연사 소속 관리가 동정을 얻어 용서받은 일 등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돼 있기도 해요. 비록 큰 권력을 행사하거나 멋진 일을 하는 부서는 아니었지만, 조선의 궁궐을 멋지고 아름답게 보존하기 위해서는 전연사의 수고가 꼭 필요했답니다.


★말단(末端): 사물의 맨 끝이나 조직의 가장 아랫부분.

★발령(發令): 명령을 내림. 또는 그 명령. 흔히 직책이나 직위와 관계된 경우를 이름.

★제조(提調): 조선시대에 당상관 이상의 관원이 당상관 이상의 관원이 없는 관아에 겸직으로 배속되어 각 관아를 통솔하던 관직.

★전옥서(典獄署): 조선시대 옥에 갇힌 죄수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청.

★포도청(捕盜廳): 조선시대 한성과 경기도의 치안과 방범을 관장한 관청.

★전루(傳漏): 조선시대 도성 안에서 물시계로 알아낸 시각을 징이나 북을 쳐서 알리던 일.

★신문(訊問): 아는 사실을 캐어 물음. 법원이나 수사기관이 어떤 사건의 진실을 알기 위해 캐묻는 절차.

지호진 |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