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세상

웃고 있어도 쓸쓸한 '늙은 여자'

입력 : 2014.03.03 05:33 | 수정 : 2014.03.03 09:02

[5] 박완서 '황혼'

시어머니를 '늙은 여자'라 부른 며느리, 고부 갈등 넘어 세대 간의 갈등 나타내… 소외된 노인의 모습도 보여주고 있죠
고령화 사회 되면서 늘어난 노인 문제… 모든 세대 어우러져 사는 삶 필요해요

여러분,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말을 들어봤나요? 생로병사란 '인간이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다'는 뜻이에요. 부처님은 이러한 인생의 과정을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고통'으로 여기고 여기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어요. 중국 진나라의 시황제도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불로초'를 찾아 헤맸다고 하지요. 또 미국에는 새 생명을 줄 수 있는 의학기술이 개발될 때까지 기다리고자 냉동 인간이 된 사람들도 있어요. 많은 사람이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을 피하고 싶어 하지만, 누구도 이를 비켜갈 수는 없습니다.

박완서 작가가 쓴 단편소설 '황혼'의 주인공은 '늙은 여자'입니다. 며느리로 들어온 젊은 여자는 시어머니인 늙은 여자를 단 한 번도 '어머니'라 부르지 않아요. 친구들과 얘기할 때도 '늙은 여자'라는 호칭으로 부르고, 늙은 여자에게 할 말이 있으면 아이들을 시켜 전해요. "할머니 그만 주무시라고 해라" "할머니 진지 잡수시라고 해라" 하는 식으로요. 늙은 여자는 자신을 무시하는 며느리의 태도가 너무도 황당하고 얄밉지만, 늙어서 쓸모없는 짐짝 취급을 당하는 자신의 모습이 더 견디기 어렵습니다.

[책으로 보는 세상] 웃고 있어도 쓸쓸한 '늙은 여자'
/그림=이병익
"늙은 여자는 웃으면서 일어나 앉아 거울을 본다. 거울 속의 여자는 울고 있었다. 엉엉 울고 있었다. 아무리 웃길려도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도 거울 속의 여자쯤은 자기 마음대로 될 수 있으려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여자는 자신의 웃는 얼굴을 보고 싶어 억지 미소를 띤 채 거울을 들여다봅니다. 하지만 거울에 비친 모습은 그녀를 더욱 슬프게 만들어요. 아마 여러분에게는 이런 늙은 여자의 마음이 잘 와 닿지 않을 거예요. 늙음이나 죽음 따위의 일을 고민하기에는 여러분이 아직 어리고, 한창 좋은 꿈만 꿀 나이이기 때문이지요.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여러분을 볼 때면 종종 이런 말씀을 하실 거예요. "참 좋을 때다." 매일 학교에 가고 재미없는 공부만 하는데 뭐가 좋으냐고요? 하지만 할머니, 할아버지의 말씀이 옳아요. 긴 인생을 펼쳐 놓고 보면 여러분 나이가 가장 활기차고 즐거운 시기랍니다.

'황혼'은 고부(姑婦) 간의 갈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시어머니를 '늙은 여자'로, 며느리를 '젊은 여자'로 부름으로써 주제를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내지요. 나아가 한국 사회가 가진 세대 간의 갈등과 노인 문제를 보여주려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 있어요. 35년 전인 1979년에 발표된 작품임에도 근대화를 거치면서 가족에 대한 애정과 기성세대에 대한 존경, 그리고 어른에 대한 효(孝) 문화가 사라진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잘 짚어냈어요.

지난 2011년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박완서 작가는 한국의 근대화를 그대로 체험한 분이에요. 경기도 개풍에서 태어나 서울 숙명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문과에 합격했으나 6·25전쟁으로 중퇴하였죠. 1970년 마흔 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나목'이라는 작품으로 등단하여 '엄마의 말뚝' '그 남자네 집'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등의 대표작을 남겼습니다. 분단의 체험과 소시민의 삶, 그리고 여성의 정체성에 대한 깊은 사색으로 한국 문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아요.


#이야기

노인 문제는 최근 우리나라에서 매우 중요한 사회문제로 떠올랐어요. 총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인 사회를 '고령화 사회'라고 부릅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를 보이는 우리나라는 20~30년 후면 세계 최고의 고령화 사회가 될 것으로 예측돼 많은 사람이 걱정하고 있어요. 고령화 사회에서는 일할 수 있는 젊은이의 비중이 줄고, 이들이 부양해야 할 노인 인구가 늘기 때문에 경제 발전에도 심각한 타격을 받습니다. 이웃 나라인 일본 역시 고령화 사회로 여러 가지 노인 문제가 나타나고 있어요. 특히 홀로 사는 노인이 늘면서 돌봐 줄 가족 없이 집에서 죽는 '고독사(孤獨死)'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지요. 고독사한 노인들의 장례를 치러주는 상조업체까지 생겼다고 해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일본은 노인 세대와 청년 세대가 함께 사는 공동주택을 건설하고 있어요. 공동체 생활을 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삶의 형태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박완서 작가는 6·25전쟁과 분단문제, 물질만능주의 풍조와 여성문제 등을 작품에 담아내며 우리 문단의 대표 작가로 인정받았어요.
박완서 작가는 6·25전쟁과 분단문제, 물질만능주의 풍조와 여성문제 등을 작품에 담아내며 우리 문단의 대표 작가로 인정받았어요. /주완중 기자
노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화가 가장 중요해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노인분들이 혼잣말하거나 여러분에게 자꾸 말을 거는 이유도 평소 생활에서 대화가 부족하기 때문이에요.

'황혼'에서 늙은 여자가 자꾸 명치를 주무르고 만지는 이유는 병이 들어서라기보다는 누군가의 관심이 필요해서입니다. 자기의 명치를 만져보라고 며느리의 손을 잡아끌었을 때 며느리가 기겁하며 놀라는 모습에 얼마나 쓸쓸했을까요. 과부가 되어서도 외아들을 정성껏 키워 결혼까지 시켰지만 돌아오는 것은 무관심뿐이었어요. 외아들 내외와 함께 살지만 결코 함께 사는 것이 아니었지요.

여러분은 이런 아들 내외의 태도를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늙은 여자는 거울이라도 쳐다보며 애써 자신을 위로하려 하지만 그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아요. "그러나 늙은 여자는 지금 정말 불쌍한 건 혼자 사는 여자가 아니라 자기 뜻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여자임을 깨닫는다." 이 대목은 소외된 노인들의 슬픈 자화상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함께 생각해봐요]

여러분이 훗날 늙었을 때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생각해 보세요. 가족들과 도란도란 대화하고 손자 손녀의 재롱을 보면서 즐겁게 살아갈까요? 여러분이 나이 들수록 우리나라의 고령화 문제는 점점 심각해질 거예요.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도 고민해 보세요.

김대근 | 한우리독서토론논술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