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옥의 명작 따라잡기

각도가 빚어내는 미학

입력 : 2014.02.20 05:45 | 수정 : 2014.02.20 08:55

같은 얼굴도 각도에 따라 느낌 달라…
공작부부의 개성 있는 옆모습 〈그림1〉
근엄한 눈빛의 정면 초상화 〈그림2〉
동적이고 조화로운 반측면 〈그림3〉
이렇게 인물의 겉모습뿐만 아니라 정신세계까지 그림에 담아 냈죠

프랑스 파리 경시청의 관리였던 알퐁스 베르티용은 1882년 범죄자의 신원을 확인하는 데 처음으로 사진을 활용한 사람이에요. 특히 범죄자의 앞모습뿐 아니라 옆모습까지 촬영하여 신상 기록 카드를 만들었지요. 옆모습도 앞모습 못지않게 인물의 특징을 정확하게 보여준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예술가들은 베르티용보다 몇백년 전에 옆모습 그림의 효과를 알았고, 이를 초상화에 반영했답니다. 옆모습을 그린 초상화의 효과란 과연 무엇일까요? 다음 작품들을 보면서 함께 생각해 봐요.

그림1.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와 바티스타 스포르차의 초상’ 사진
그림1.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와 바티스타 스포르차의 초상’, 1465~1472년
그림 1은 15세기 이탈리아 화가인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가 그린 부부 초상화예요. 초상화 모델은 우르비노 공국의 군주였던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 공작과 아내 바티스타 스포르차입니다. 공작 부부가 마주 보는 듯한 두 점의 초상화에는 옆모습을 그렸다는 공통점이 있지요. 화가는 왜 부부의 옆모습을 그렸을까요? 두 사람이 현실의 사람이 아닌 이상적인 존재로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였어요.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부부에게 선뜻 다가갈 수 없는 거리감을 느끼는 동시에 두 사람을 우러러보는 듯한 느낌을 받거든요. 또한 옆모습을 통해 이마에서 미간, 코, 입, 턱으로 이어지는 얼굴의 특징을 도드라지게 나타냈답니다. 앞 얼굴보다는 옆얼굴에 굴곡과 명암이 또렷하게 나타나기 때문이에요. 공작의 초상화를 다시 한 번 살펴보세요. 공작의 매부리코와 굳게 다문 입술, 튀어나온 턱 끝이 실감 나게 그려졌지요? 옆모습을 그린 덕분에 공작의 개성 있는 외모를 이토록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림2. 이명기, ‘오재순 초상’ 사진
그림2. 이명기, ‘오재순 초상’, 1791년
자, 그럼 이번에는 앞모습을 그린 정면 초상화의 효과에 대해 알아볼까요? 그림 2는 조선 정조 임금 때의 화원(畵員)인 이명기가 그린 초상화입니다. 초상화의 주인공인 오재순은 대제학, 이조판서, 판의금부사 등을 지낸 조선 후기의 문신이지요.

이 그림에서 65세의 오재순은 관복을 입고 호랑이 가죽으로 장식된 의자에 앉아 근엄한 눈빛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어요.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오재순이 매우 기품 있고 인격도 훌륭한 고위 관리였다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이처럼 정면 초상화는 인물의 감정이나 성격, 사회적 지위까지 관객에게 전달해요. 즉 인물의 겉모습과 내면세계를 거울처럼 보여준다는 뜻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이러한 정면 초상화가 많이 그려졌는데, 화가들은 인물의 외모를 사실적으로 그리는 것을 뛰어넘어 그 정신까지도 그림에 담아내고자 노력했어요. 특히 인간의 정신이 가장 잘 드러나는 눈동자를 정면 초상화에서 사실적으로 표현했지요.

그림3. 레오나르도 다빈치, ‘체칠리아 갈레라니 초상화’ 사진
그림3. 레오나르도 다빈치, ‘체칠리아 갈레라니 초상화’, 1490년경
15~16세기에 활동한 이탈리아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측면 초상화와 정면 초상화의 장점을 결합한 반측면 초상화를 그렸어요. 그림 3에서 흰 담비를 안은 아름다운 여인은 이탈리아 밀라노 공국의 군주인 루도비코 스포르차의 연인 체칠리아 갈레라니예요. 여인은 덕과 순결의 상징인 흰 담비를 손으로 어루만지면서 얼굴을 왼쪽으로 살짝 돌리고 있어요.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왜 정면도, 측면도 아닌 반측면 초상화를 그렸을까요? 그림 속의 여인을 보다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였어요. 측면이나 정면 초상화에서는 인물의 자세가 굳어 있어 움직임을 표현하기가 어렵거든요. 하지만 반측면 초상화에서는 생기 있게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나타낼 수 있어요.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여인의 얼굴은 왼쪽으로, 윗몸은 그 반대인 오른쪽으로 살짝 틀어 조화로운 균형미를 보여주었지요. 이 그림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초상화 중 하나라는 찬사를 받는답니다.

그림4. 안토니 반 다이크, ‘세 가지 자세의 찰스 1세’ 사진
그림4. 안토니 반 다이크, ‘세 가지 자세의 찰스 1세’, 1635~1636년

그런가 하면 17세기 네덜란드 화가인 안토니 반 다이크는 특이하게도 한 작품 안에 인물의 정면과 측면, 반측면 모습을 전부 담아냈어요. 그림 4를 보세요. 초상화 속 인물은 영국 왕 찰스 1세예요. 반 다이크가 왕의 얼굴을 3가지 모습으로 그린 이유는 실물과 똑같이 표현하기 위해서였답니다. 당시 찰스 1세는 이탈리아의 유명 조각가인 베르니니에게 자신의 조각상을 주문했거든요. 반 다이크는 베르니니가 실물과 똑같은 조각상을 만들 수 있도록 세 방향에서 바라본 본 찰스 1세의 초상화를 그려 이탈리아로 보낸 거예요.

같은 얼굴도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는 점이 참 재미있지요? 여러분도 자신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담은 사진을 찍어보세요. 위의 그림과 같이 정면, 측면, 반측면 사진을 찍어 비교해보는 것도 좋겠어요. 아마 여러분도 몰랐던 새로운 얼굴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함께 생각해봐요]

여러분은 가족이나 친구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한 적이 있나요? 평소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라도 그 모습을 유심히 본 일은 거의 없을 거예요. 오늘은 가장 가까운 친구 혹은 가족의 모습을 앞과 뒤, 양옆에서 자세히 살펴보고, 평소 눈치 채지 못했던 그 사람의 특징을 찾아내 그림으로 표현해 보세요.

이명옥 | 사비나 미술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