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옥의 명작 따라잡기

그림 속 음식… 꿈과 욕망을 머금다

입력 : 2014.02.06 05:27 | 수정 : 2014.02.06 08:55

세 남자 배부르게 먹고 쓰러진 〈그림1〉, 인간의 탐욕 경계하라는 메시지
유독 케이크 그림 많은 티보作 〈그림4〉, 대량소비사회 특성을 그려냈어요
다양한 음식 그림들에는 우리 삶의 깨달음이 담겨 있지요

미술과 음식, 이 두 가지는 언뜻 보면 공통점을 찾기 어려워요. 미술은 시각, 음식은 미각의 영역이니까요. 하지만 음식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기본적으로 꼭 필요한 3가지, 즉 의(衣)·식(食)·주(住)의 하나여서 일찍부터 예술가들의 관심을 끌었어요. 그래서 음식을 주제로 한 다양한 그림이 그려졌지요. 16세기 네덜란드 화가 피터르 브뤼헐도 맛있는 음식을 그린 화가 중 한 사람이에요.

피터르 브뤼헐, 게으름뱅이 천국 작품사진
그림1. 피터르 브뤼헐, 게으름뱅이 천국, 1567년
그림1에서는 세 남자가 술과 음식을 배부르게 먹고 땅바닥에 쓰러져 잠들었군요. 브뤼헐은 왜 세 남자의 잠든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했을까요? 바로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을 배부르게 먹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어요. 당시는 지금과 달리 먹을거리가 풍부하지 않았거든요. 늘 굶주림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나라를 꿈꿨답니다. 맛있는 음식이 넘쳐나는 이 그림처럼 말이지요. 그럼 그림1 속에 얼마나 많은 음식이 나오는지 살펴볼까요? 그림 맨 왼쪽에 호두파이로 뒤덮인 지붕이 보이네요. 그 아래에서 갑옷을 입은 남자가 입을 벌리고 파이가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어요. 두 다리가 달린 반숙된 달걀, 등에 칼이 꽂힌 바비큐 통돼지, 은 접시에 누운 거위도 보이네요. 나무는 팬케이크, 울타리는 소시지, 바다는 우유로 돼 있어요. 그림 맨 오른쪽의 남자는 산처럼 쌓인 죽 속에 몸을 파묻고 있어요. 이런 음식 그림은 사람들의 배고픔을 달래주기도 했지만, 음식을 지나치게 탐하는 사람들에게 욕망을 절제하라는 교훈을 주기도 했어요. 잠든 세 남자를 바보스럽게 표현한 것 역시 식탐을 경계하라는 의미였지요.

빌럼 클라스 헤다, 호화로운 식기가 있는 식탁 작품 사진
그림2. 빌럼 클라스 헤다, 호화로운 식기가 있는 식탁, 1635년
17세기 네덜란드 화가인 빌럼 클라스 헤다는 네덜란드 가정의 아침 식탁을 그렸어요. 그림2를 보세요. 식탁에 놓인 유리잔과 빛이 반짝이는 물주전자, 매끄러운 굴의 질감, 껍질이 반쯤 벗겨진 레몬이 군침 돌 만큼 실감 나게 그려졌지요?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눈에 띄네요. 구겨진 흰색 식탁보 위에 은색 잔이 쓰러진 상태로 놓여 있어요. 이 궁금증을 풀려면 서양미술사 지식이 조금 필요하답니다. 이 정물화는 아침 식사를 표현한 그림이면서 '바니타스(vanitas)' 그림이기도 하거든요. '바니타스'란 인생의 덧없음을 뜻하는 단어로, 구약성서 전도서에 나오는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유명한 구절에서 생겨났어요. 바니타스 그림의 대가로 꼽히는 헤다는 인간은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점을 식탁에 쓰러진 은색 잔을 빌어 말한 거예요. 또한 인생은 허무한 것이므로, 지금 이 순간을 마음껏 즐기며 맛있는 음식을 먹는 행복도 누리라고 권하고 있어요.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뱃놀이 점심 작품 사진
그림3.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뱃놀이 점심, 1881년
다음으로 19세기 인상주의 화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그림을 살펴볼까요? 그림3은 여름날 프랑스 센강(江)의 사토 섬에 있는 '푸르네즈' 식당 테라스에서 사람들이 즐겁게 대화하며 점심 먹는 모습을 그린 것이에요. 그림 속 인물들은 파리 시민인 르누아르의 친구들이랍니다. 당시 파리 시민은 주말이면 기차를 타고 교외로 나가 강가에서 뱃놀이를 즐긴 후 야외 식당에서 식사하곤 했어요. 프랑스 전역에 새로운 교통수단인 철도가 개통되면서 유행한 새로운 풍습이지요. 이처럼 교외에서 여가를 즐기는 도시민의 모습은 르누아르를 비롯한 인상주의 화가들의 관심을 끌었어요. 르누아르가 유명 음식점인 푸르네즈 식당을 자주 찾은 것도 도시민의 일상에 나타난 변화를 현장에서 관찰하고 화폭에 담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그림이 걸작(傑作)으로 평가받는 이유도 근대 시민사회의 변화상을 점심 장면을 통해 잘 보여주었기 때문이에요.

웨인 티보, 케이크 작품 사진
그림4. 웨인 티보, 케이크, 1963년

그런가 하면 미국 화가인 웨인 티보는 제과점에 진열된 여러 가지 모양과 색깔의 케이크를 그렸어요. 그림 4처럼 말이지요. 티보는 특이하게도 대중이 즐겨 먹는 간식, 그중에서도 케이크를 유독 많이 그립니다. 그는 이러한 작품을 통해 오늘날의 사회가 소비사회라는 점을 강조했지요. 그림 속의 케이크는 가정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상업적인 목적으로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케이크이거든요. 또한 티보는 케이크 그림을 통해 인간의 내면에 깃든 꿈과 욕망도 보여주었어요. 입안에서 살살 녹는 케이크처럼 달콤한 인생을 살고 싶은 대중의 심리를 케이크 그림으로 나타냈지요.

이러한 음식 그림은 삶에 대한 깨달음을 주면서 우리의 눈과 혀를 즐겁게 해요. 시각과 미각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도 보여주고요. 음식 그림을 감상하다 보니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우리 속담이 왜 생겨났는지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요?

[함께 생각해봐요]

여러분은 어떤 음식을 가장 좋아하나요? 여러분도 좋아하는 음식을 보고 식탐을 참지 못해 지나치게 많이 먹어본 경험이 있나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그려보고, 음식 먹을 때의 바른 자세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세요.

이명옥 | 사비나 미술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