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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맛은 장맛… 삼국시대부터 장 담궜죠

입력 : 2014.02.04 05:46 | 수정 : 2014.02.04 08:52
‘관자’라는 책에‘제나라 환공이 만주에서 콩을 가져와 중국에 보급하였다’는 내용이 있어요.
‘관자’라는 책에‘제나라 환공이 만주에서 콩을 가져와 중국에 보급하였다’는 내용이 있어요. /위키차이나
우리 조상이 음식을 만들 때 가장 기본적으로 사용한 조미료()는 장(醬)이었어요. 간장, 된장처럼 콩을 주원료로 하여 발효시켜 만든 것이지요. 국이나 찌개를 끓일 때, 나물을 무칠 때, 생선을 조릴 때 등 거의 모든 음식에 장으로 맛을 냈어요. 그래서 "음식 맛은 장맛"이라는 말도 생겨났고요.

그러다 보니 우리 조상은 장을 담그고 간수하는 일을 무척 중요하게 여겼어요. 민가()는 물론 왕실에서도 마찬가지였지요. 조선시대 허균이 지은 야사집() '성옹지소록(惺翁識小錄)'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와요.

선조 임금 때 정유재란이 일어나 전라도 남원이 왜군의 수중에 넘어가는 등 전세()가 심상치 않자 조정에서는 임금의 피란에 대해 회의를 했어요. 피란처로는 평안도 영변이 적당하다는 데 의견이 모였지요. 그러자 남자안이란 신하가 이렇게 말했어요. "그곳은 장이 시원치 못하다 하니 합장사(合醬使)를 미리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합장사로는 평안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신잡을 보내는 게 어떠할지요."

그러자 한유천이란 신하가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어요. "당치 않습니다. 신잡은 안 됩니다. '신(申)'이라는 성은 장 담그기를 꺼리는 날인 신일(辛日)과 음이 같으니, 신불합장(辛不合醬)이라 좋지 않습니다."

'합장사'란 조선 시대에 임금이 피란을 가게 되면, 피란처에 먼저 가서 장 담그는 일을 맡아 책임지는 관리를 말해요. '신불합장'이란 신일(辛日), 즉 '신(辛)'자가 들어간 날에 장을 담그면 시어진다고 하여 장 담그기를 꺼리던 일을 말하고요.

다시 말해 신잡의 성인 '신(申)'과 신일에 들어가는 '신(辛)'의 발음이 같으므로, 신잡을 합장사로 임명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에요. 우리 조상이 장 담그는 일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알겠지요?

그렇다면 우리 조상은 언제부터 장을 담가 먹었을까요? '삼국지'의 '위지동이전'에 "고구려인은 술 빚기, 장 담그기, 젓갈 등의 발효 식품을 매우 잘한다"는 기록이 있고, '삼국사기'에는 683년(신문왕 3년)에 왕비 맞을 때의 폐백 품목으로 간장과 된장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국시대에 이미 장이 사용되었던 것이지요. 장의 재료는 콩이니 콩 재배는 그보다 훨씬 앞섰겠지요?

우리 선조는 모든 음식에 장으로 맛을 냈기 때문에 장 담그는 일을 무척 중요하게 여겼지요.
우리 선조는 모든 음식에 장으로 맛을 냈기 때문에 장 담그는 일을 무척 중요하게 여겼지요. /조선일보 DB
콩의 원산지가 어딘지를 알면 여러분은 깜짝 놀랄 거예요. 중국 남부 지방이 콩의 원산지라는 주장도 있지만, 역사적인 기록이나 유적 등에 비춰볼 때 콩의 원산지는 만주 지방으로 여겨지고 있어요. 기원전 600년대의 중국 제(齊)나라 재상 관중(管仲)이 지었다는 '관자(管子)'라는 책에는 '제나라의 환공(桓公)이 만주 지방에서 콩을 가져와 중국에 보급하였다'는 내용이 들어 있어요.

또 함경북도 회령군 오동의 청동기시대 유적에서 콩이 출토되기도 했고요. 콩의 원산지로 알려진 만주 지방은 우리 조상이 세운 나라인 고조선의 영토이며 옛 고구려 땅이기도 해요. 그러니 우리 조상이 콩을 재료로 하여 장을 담가 먹은 역사가 오래된 것이지요. 그렇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콩 자급률()은 절반에 훨씬 못 미친다고 해요. 오히려 미국으로부터 엄청나게 많은 양을 수입해오고 있지요. 무척 안타까운 일이에요.


★조미료(調味料): 음식을 만드는 주재료인 식품에 첨가해서 음식의 맛을 돋우며 조절하는 물질

★민가(民家): 일반 백성들이 사는 집

★야사집(野史集): 민간에서 사사로이 기록한 역사책을 말함

★전세(戰勢): 전쟁, 경기 따위의 형세나 형편

★자급률(自給率): 필요한 물자를 자체로 공급하는 비율

지호진 |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